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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1:1-7 <믿는 자의 본이 되어>
데살로니가전서 1:1-7 <믿는 자의 본이 되어>
[데살로니가전서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다 죄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서 신음하다가 결국에는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영원한 고통과 사망에 내버려 두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무조건으로 택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무조건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을 어떤 자격도 없었다.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는 전혀 무관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나 나는 알지 못합니다.
[5절 a]에 보면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믿게 된 데에는 바울이 말하는 전도 외에 그 이상의 어떤 힘이 작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사람이 전하는 것이지만 사람의 언변이나 화술에 의하여 사람을 믿게 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 [고린도전서 2:4]에서도 바울은 고린도 지방에 오기 전 에덴에서의 복음 전도를 회상하며 말하기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라고 하였습니다. 에덴에서 바울은 철학자들을 만나 자신의 모든 지혜와 지식을 사용하여 아테네의 철학자들을 이겼지만 복음의 성과는 미미하였던 것입니다. ○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것, 받아들이고, 확신을 가지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다시 [5절 b]에 보면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바울의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2-10]
2.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우리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하였다.
6. 우리는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한 권위를 말하지 않고,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같이 하였다.
8. 너희를 사모하여 복음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했다.
9.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10.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너희가 증인이요.
○ 이것이 복음 전하는 자의 마땅한 자세임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당시 세계에는 많은 순회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이름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지식을 팔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전하는 지식에 일치하는 삶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자신들이 전하는 가르침대로 자신들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가진 사람들로서 세상에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 앞에서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다른 세상의 사람들보다 더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있는지~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없는데 가식적으로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믿음에 부끄럽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6절]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많은 환난 가운데서” 하였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의 불신자들이나 그리스도인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선동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였는데, 불의한 세상에서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가 환난 중에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 어떤 이들은 먹고사는 일에, 혹은 나의 만족과 꿈을 이루는 일에 환란과 고통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환란과 핍박은
[마태복음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신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나의 유익을 위한’ 환란과 고통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이 나의 짐을 대신 져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가 자기 짐을 지고 가면서 십자가의 고난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우리는 지금이 환란과 고통의 시기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는 기독교인들을 감시하고 잡아 가두는 저 북한 정권이나 이슬람이 없습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다른 고난이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저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저들은 주일에 각종 행사를 진행하면서 주일에 참여해 주기를 바라고, 함께 술자리에 술을 마시기를 바라고, 저들이 죽은 자에게 제사 드릴 때 함께 절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고개 한번 숙이는 것이 무슨 문제냐 말합니다.
○ 세상은 우리를 분주하게 만듭니다. 경쟁 세상에서 더 나은 성적과 경력을 위하여 교회 나가는 시간을 아깝다 느끼게 하고, 세상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것들이” 우리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이런 세상의 허무한 것들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여 기도하는 삶,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신학자는 말했습니다. “이 시대에 사탄은 사람들에게서 기도의 시간을 빼앗아간다. 사탄의 한 가지 관심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탄은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종교의식에 만족하게 한다. 사탄은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롱 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떤다.” 말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마음에 온갖 것 다른 것들이 차 있어서 말씀을 대하지 못하고, 기도할 마음을 갖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6절 b]에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우리는 우리가 구속받은 귀중한 은혜와 사랑을 등한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환란의 시기를 지나기를 원하시고,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을 본받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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