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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13-19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베드로전서 1:13-19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베드로전서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 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여기에 ‘동이고’는 ‘긴 의복을 허리띠를 사용하여 졸라매는’ 이란 의미입니다. 주님은 말세에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누가복음 12: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했습니다. 이 말의 최초의 배경은 구약 [출 12:11]에 10번째 장자를 죽이는 마지막 재앙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이로 볼 때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라는 말은 택함 받은 백성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 믿고 약속의 땅으로 가기’를 준비하는 자세입니다. 장차 무슨 일을 만날지 알지 못합니다. 새로운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많은 재물에 탐욕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의 먹을 것과 의복, 살림 도구의 짐을 꾸리고, 언제든지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찌 아무런 준비 없이 구원의 강을 지날 수 있겠습니까? ○ 그들은 새로운 땅에 기대와 함께 내일 당할 일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모세와 하나님만 믿고 떠나는 것입니다. 용기와 결단이 있지 않으면 떠나지 못하는 길입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여매야 합니다. ○ 오늘 서신 속에 신자들은 로마의 핍박 속에서 얼마나 마음 졸였겠습니까? 박해를 받는 주위의 성도들을 보며 ‘신앙을 계속 간직해야 하는가’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 관리나 병정들의 협박 소리를 들으면서 믿음이 흔들리는 자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 통화시에서 한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집사님이 자꾸 뒷문을 나갔다 들어왔다 하더랍니다.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이번에는 급히 들어와서 한 목사님을 향해 공안이 오니 빨리 피하라고 알려 주며, 그 교회 집사님이 대신 강단에 섰답니다. 그렇게 한목사님은 다른 문으로 피신하였고 곧 공안이 들어와 조사하더랍니다. 물론 현지인들끼리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양이니 별일 없이 공안은 떠났고, 뒤에 한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집사님은 공안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요? 물으니 자신도 몰랐는데 밖에 솥 탄내가 나서 나가보니 아무 일이 없고, 또 솥 탄내가 나서 나가보니 아무 일이 없었는데, 또 나가면서 보니 공안이 담 너머로 오는 것을 보고 피하라 한 것이랍니다.
○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따라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늘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평온할 때뿐 아니라 풍파가 불어 불안할 때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광야와도 같은 인생길을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3]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 하였습니다. 이는 성도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받을 위로와 영광을 갈망해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갖지 못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그 구원의 자리에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바랄지어다” 했습니다. 이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위로와 ‘그 나라 그 땅’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떤 기독교인이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천국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착하게 살면 된다” 이런 마음은 천국에 대한 간절한 마음도, 확신도 아닙니다. ‘온전한 바랄지어다’ 의미는 다른 마음을 품지 말고 오로지 바란다는 말입니다. 돈도 바라고, 세상의 즐거움도 바라고, 인생의 성공을 바라면서, 천국도 바라는 것은 온전한 바람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힘과 재물, 시간이 천국을 향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왜 ‘침노’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까? 힘써 빼앗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공격하여 쟁취하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유혹이 많은 세상을 이기고 천국을 쟁취하겠습니까?
[베드로전서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4절]에서 또 다시 베드로가 성도들을 ‘순종하는 자식’이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식’은 좀 어색한 표현입니다. ‘순종의 자식’ 이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표현일 것인데, 여기서는 특별히 ‘순종하는 자식’이라 하여 히브리식 표현법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히브리식 표현법에 따르면, ‘…의 자식’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인물의 자질 및 그 사람 속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쩌다 마지못해 순종하는 자녀가 아닌 순종이 체질화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지금의 시대는 모든 권위가 부정되는 시대입니다. 학교의 선생님, 선배, 권세를 가진 자, 상사 등등 사람들은 자신의 할 일만 잘하고, 누가 누구의 말을 듣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맨토를 둔다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누구의 말을 들으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세상을 따라 사는 것이 더 편하게 보이고, 즐겁고, 신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순종을 배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 일제 치하에서 조국을 생각하며 지은 김 동명의 시 [파초의 꿈]이 있습니다.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우리 각 사람은 나를 위하여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빚진 자이며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누군가 사랑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 베드로가 공의회에 잡혀 심문을 받다가 풀려날 때 그들이 위협하며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 그때 베드로는 (사도행전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했습니다.
○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다윗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소년 다윗을 무시하고 일을 시켰지만 하나님은 그를 목동의 삶에서 들어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나라의 요구보다도, 아내의 뜻보다도, 사람들의 명령보다도, 나의 욕망보다도 우리의 순종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망에서 건저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여 사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의 근원이시며 지으신 분이십니다.
○ 사람은 결국, 누군가의 종이 되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박의 노예가 되고 어떤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에 매인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엔가 매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매이지 않은 사람은 사탄에 매여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출애굽 이후에 광야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이 배운 것은 결국 인내와 믿음 순종의 자세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지금은 환란의 시기입니다. 재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고, 나의 노력과 재능이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버려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믿음과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우리가 따르고 순종해야 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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