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1:1-12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어떤 사람은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지만 거대한 물고기 배속에서 사흘 동안 생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혹은“이스라엘로부터 수만 리 떨어져 있는 니느웨에 언어도 통하지 않았을 건데, 이스라엘 선지자의 선포를 듣고 전국적으로 울며 금식하고 회개하여 심판을 면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문학작품 <요나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 요나서가 쓰인 배경은 B.C.763년경이고 앗수르 왕국은 그후 100년 후에 멸망합니다. 앗수르는 잔인하기로 유명하였고, 철천지원수 나라, 하나님의 은총과는 거리가 먼 나라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그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십니다.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 여기서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뜻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약 안에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싫어 먼 땅 다시스로 가기 위하여 항구 욥바로 내려갑니다. 당시 다시스는 지중해 서쪽 끝에 위치한 스페인의 도시로 고대의 유명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볼 때 다시스는, 니느웨와 반대 방향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기에 가장 먼 도시였습니다. ○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 뜻과 부귀 명예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생각하는 것이 큰 축복인 것을 모릅니다. 히브리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 [1:3] 그가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다 했습니다. 멀리 다시스로 가는 배가 늘 있는 것도 아닌데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것입니다. 항해에 좋은 바람을 만납니다. 요나는 모든 일이 순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얼마든지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일이 잘 풀린다 해서 그것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용인하신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배를 타고 지중해 한가운데 갈 때까지 잠잠히 지켜보신 것입니다. 

○ 먼저 요나는 욥바로 ‘내려갔고’ 야라드 (יָרַד)했습니다. 다음에 그는 운임을 주고 배에 ‘올랐고’ 했는데 이 말도 야라드 (יָרַד) ‘내려갔고’입니다. 그리고 [1:5] 배 밑층에 ‘내려가서’라 했는데 이 역시 야라드 (יָרַד)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2:6]에 바다에 빠져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 했습니다. 이것도 야라드 (יָרַד)입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서 멀리 하나님을 떠나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의 모습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맛보고 끝에는 끝없는 수고와 고통 마지막에 사망에 이른 것과 같습니다.

○ 이를 우리는 중국말로 (任凭)이라 합니다. 내버려 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실제로 무서운 일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욥바 항구에서 요나를 막으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람은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다 이유가 있다.” 말하고 싶어 합니다.

○ [1: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 그들은 자신들이 예전부터 믿었던 地域 신들을 큰 소리로 부르면서 도움을 구합니다. 배를 가볍게 하려고 화물을 바다에 던집니다. 그러다가 배 밑창에서 잠들어 있는 요나를 발견합니다. 불신자인 선장이 선지자 요나를 흔들어 깨우고 뭐라고 말합니까?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공동번역에서는 ‘이런 판국에 잠을 자다니 하나님이 지금 선장의 입을 통하여 요나를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위험을 잊고 잠자고 있는 것, 기도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우리가 세상의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습니다. ○ 선장은 자신들 가운데 신의 노여움을 산자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장은 모든 사람을 모아 놓고 누구 때문에 이런 폭풍이 있는지 제비뽑습니다. 뽑으니까 요나가 뽑혔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제비뽑기가 ‘우연이다. 거짓이다.’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길몽을 꾸고 로또에 당첨되는 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거짓말일까요?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세상은 영으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악령과 성령이 있습니다.

○ 요나가 여기서 훌륭한 점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했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 때문이다”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희망이 있습니다.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에게도 희망이 없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에 정직하고 감정에 속임이 없는 사람이 희망이 있습니다. 자신을 변명하고 남을 속이는 사람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 요나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니느웨가 싫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싫어서 거역한 것입니다. 그는 알면서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알면서 배 밑창에 내려가 잠을 잤습니다. 그는 알고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을 알았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담대하고 분명했습니다. [1:9]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세상에는 신이라 칭하는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나무로 돌로 금붙이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神이라’ 섬기는 사람들도 있고, 동방 사람들은 상제를 섬겼고, 이슬람에는 알라가 있습니다. ○ 그러나 참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사하시려 자신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우리의 음성을 들으시는 살아계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구원을 약속하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약속을 이루시는 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그런데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제 뜻대로 살려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찾는 것을 똑같이 찾으며 살아갑니다.

[1:12]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 요나는 “알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말하지 않고  요나는 오직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져 희생함으로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죄의 댓가는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댓가인 희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사망에 이르지 않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 이로써 우리는 이 본문이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구원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와서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소서” 할 때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요나를 바다에 던진 사람이 이방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22편에 예수님의 고난을 보여주는 시가 있습니다.

[시편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마가복음 10:33]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 이는 예수님의 대속이 온 세상의 인류를 위한 代贖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장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려 하지 않고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애썼던 것입니다.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 이방인 본디오 빌라도도 그랬습니다. 빌라도의 처가 예수님의 재판석에 찾아와 말합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결국 요나서는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을 예언한 책입니다. 요나서 2장은 깊은 물 속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요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하며 기도를 마칩니다. 이는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지실 것을 서원하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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