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2:11-21   < 그리스도 안에서 삶 >              2012. 1. 8

[갈 2: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갈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본문은 안디옥에서의 사도바울과 베드로가 충돌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유대인들이 나타나자 유대인들의 규정(죄인과 더불어 식사하지 말라는 규정)에 따라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바울은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합니다. 1) 베드로는 입으로는 이방인을 전도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했지만 이방인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이방인을 죄인 취급했습니다. 2) 정작 자신은“유대인으로 이방인들과 자신의 신분이 다르다.”하는 차별의식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지금 태도를 보면 이방인을 사랑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바울은 네가 어찌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증거 하면서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생각한 외식을 보이는가? 사람 앞에서 외식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가?

여기서 재미있는 표현의 하나는 바울이 지금 이방 갈라디아人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방 죄인'이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가 소위 말하는 <이방 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이라고 하는 너희는 어떠한가? 너희는 너희가 말하는‘이방 죄인’보다 나은 존재인가? 보라. 당신들 유대인 당신들은 이방인을 대하여 이른바 죄인이라 칭하지요. 그러나 지금 보시오 당신들의 외식하는 모습을 당신들도 아무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갈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갈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17) 의롭다함을 입은 사람이 죄를 짓고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도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입니다. 율법은 내가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저는 많은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누구에게도 신세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고,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누구보다도 자신 있고, 재능 있고… ◀  도움 받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음은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알아야 할 것은 도움 받지 않을 수 없는 존재, 결국 재능도 별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산다. 깨끗하다. 선을 행한다. 다 좋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결국 우리가 무능한 존재임을 가르쳐 줄 뿐입니다. 마치 진단을 정확하게 잘하지만 전혀 치료 할 줄을 모르는 의사와 같습니다. 한 사람이 율법을 치과의사의 거울에 비유했습니다. 작은 거울을 이마에 달고 치과 의사는 충치를 찾아냅니다. 그러나 그 의사는 거울로 충치를 치료하거나 새 이를 심어주지는 못합니다. 율법의사가 할 줄 아는 말이 꼭 한 가지 있습니다. “너의 충치는 심각하다. 죽을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하는 일은 결국 너는 흉악한 죄인이다. 결국 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알려줄 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세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말하면서 자신을 세우려 하는 것 이것이 율법적인 삶입니다.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할 때 이는 율법의 폐기를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율법은 거룩한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율법이 완성된다. 했습니다. 이제는 율법의 요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위험한 無율법주의적 사고입니다. 

죽은 것은 율법이 아니고, 바로‘나’라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 죽었다! 란 무슨 의미입니까? 율법으로 하면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에 비추어 볼 때 나는 이미 <죄인 중의 죄인> 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멀리 했으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너무 작으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나 자신을 믿고 맡기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나의 작은 꿈을 이루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나는 율법중은 기본인 10계명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이들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내도 많이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나의 형제자매들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자신이 큰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아직도 자신이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아직도 자신이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은 주님을 따를 수도, 주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롭게 되었다> 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받아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마땅히 당해야 할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나는 아무 한 일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은혜로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냥 받아주셨습니다. 그렇다고 값없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은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값어치가 없다 저평가하지(低估价值) 마십시오. 값싼 은혜를 만들지 마십시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사는 것. 이는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대속해주셨으므로 율법은 폐하여진 것이다. / 그렇기에 교회에 나가고 안 나가는 것/ 안식일이나 십일조 같은 것/ 이는 모두 율법에 속하는 것이요. 마음(성심)의 문제일 뿐, 구원과는 관계가 없는 것. 우리 하나님은 다 이해하시는 분이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니 좀 죄지었다 해도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신다. 진리로 자유를 얻었으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나요?

주의하십시오.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니 이제는 천국이고, 그래서 이제는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을 고백한 이후로 여전히 자녀를 돕기를 원하시고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시고 나의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의 관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어떤 부모에게 자식이 있어 음란과 마약을 자신의 자리를 알지 못하고 헤맨다면 통탄해 하겠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지금 하나님의 도우심에서 나를 멀어지게 하는 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는 나쁜 罪성에 길들여진(湿透) 우리를 보시면서 분해하시고 너무너무 미워하십니다. 고치시기 원하시고, 우리를 더 많이 축복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여전히 육신의 욕망을 따르면서도 나는 아무문제 없어요! 하며 살아갑니다.

괜찮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더 바르게 살지 못하는 나. 더 가까이 가지 못하는 나에 대하여 분해하고 억울해 하고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 하루는 어느 회사의 상급자가 말했습니다. 회사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너의 자녀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그 사람 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아무 문제없어요. 우리는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단절해야 합니다.


[요일 1:6,7]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산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고 말하지 맙시다.

내가 때로 좀 거짓말하고/ 주일 예배를 빠져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므로… 그렇게 심하게 말하지 말라. 내가 좀 게을러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나도 조금은 내 삶을 즐기고/ 나도 조금은 이 땅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괜찮다 말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 안에 罪性 때문에 속상해 하시고 고치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한없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뜨거운 기도가 하인스 워드를‥‥ 2006년 2월6일 미국 프로 풋볼리그 최우수 선수(MVP)로 만들었습니다. “ 아들이 곁길로 가지 않고 바르게 자라도록 키워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 이렇게 뛰어난 선수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위험한 경기 속에서 아들을 무사히 지켜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

워드 선수의 어머니 김영희(55)씨는 현재 애틀란타(亚特兰大) 존스버러 침례교회에서 매주 금요철야 예배를 드리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경기 기간이라도 꼭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립니다.

일곱 살의 워드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했습니다. 피부색이 자신과 달랐고 영어를 못해 숙제를 도와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싫었습니다. 워드의 어머니는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흑인병사 워드 시니어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1976년 워드를 낳았고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경제능력이 없고 영어도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 법원으로부터 양육권까지도 박탈당했습니다. 어찌하든 아들과 같이 살겠다는 일념으로 닥치는 대로 일하여 워드를 데리고 왔습니다. 16시간 접시를 닦고 , 호텔 청소를 하고, 잡화점 계산대에서 일했습니다.

워드가 깨기 전 밥을 차려 놓고 출근한 뒤 학교를 끝내고 돌아오기 전에 잠깐 집에 들러 저녁상을 차려 놓고 다시 일터로 가야했습니다. 워드는 집에 돌아와서는 언제든지 전자레인지로 밥을 데워 먹었습니다. 어머니의 고생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피부색이 다른 어머니가  싫었습니다. 친구들에게 혼혈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차로 워드를 태워 등교하면서 학교까지 가는데 친구들이 볼까봐 차 깊숙이 머리를 숙여 숨어 가다가 급히 차문을 열고 내립니다. 그는 내리다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시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다니 ‥‥ 그래 아무리 놀려도 나는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인이다. 그것이 내 인생이다. 그로부터 그의 인생관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고교 졸업 무렵 메이저리그 구단으로 부터 계약금 2만 5천 달러의 계약을 받았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합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는 근성, 희생정신, 성실성, 무엇보다도 사랑을 어머니로부터 배웠습니다. 어머니는 늘 워드에게 " 겸손해라."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지혜 있고, 유능하고, 재벌과 학벌. 외모.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람은 외모적인 것, 형식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추구합니다. 이런 사람을 알아주고 선택하고 대접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 심령을 감찰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길에서 마태라 하는 사람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내면의 진실성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찾아와 간구하는 불쌍한 영혼을 보셨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유혹은 인간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어찌하면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을까? 주위의 사람들에게 버림받을까봐/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 받을까 염려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외식은 곧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죄에 대하여 단호하였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주님과 더불어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은 자신을 말하지 않습니다. 나의 꿈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어지기를/ 마음을 상해할 일도 없습니다. 일이 되고 안 되든 모든 것이 주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외식입니다. 더구나 주의 일꾼이 되어 외식의 모습을 보인다면 복음에 큰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고 세워지는 것 이 모든 것이 외식입니다.

주의 일을 해도 사람에게 칭찬을 구하지 말고/ 내가 주의 일을 해도 내가 했다고 말하지 말고/ 사람의 손가락질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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