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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0:23-33 <무엇을 하든지>
고린도전서 10:23-33 <무엇을 하든지> 2011. 12. 18
술 먹으면…
고래형 / 평상시 숙기가 많아 말도 잘 못하고 목소리도 기어들어 가는 직장동료 중에 술만 먹으면 상사를 욕하고 옆 테이블 사람들에게까지 소리 지르기 일쑤다.
과거형 / 술만 들어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왕년에 어쨌는데", 사실 왕년에 반장, 1등 한번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녹음기형 / 앵무새가 따로 없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끝장형 / 술만 먹었다하면 기본이 2차요, 아무리 사양해도 막무가내로 밀어 붙인다.
애절형 / 뭐가 그리 슬픈지… 자기 과거 얘기하면서 하염없이 눈물 흘린다.
큰대자형 / 정말 대책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바로 큰대자로 뻗는 것이다.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날 생각은 없고, 업고 갈 수도 없고…ㅠㅠ (술 먹고 처진 사람은, 왜? 그리도 무거운지?)
음주에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때로는 술 때문에 실수하고, 어쩔 수 없이 한잔하고 운전대를 잡는 경우도 생깁니다. !!! 사실 이것은 살인 행위입니다. 한잔이라고 말하지만 인간의 의지는 하잘 것 없는 것입니다.
예》 어제도 산에 갔는데 20년 노인 신자입니다. 참 성실하고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다만 술만은 끊지 못하고 있답니다. 술도 딱 한잔만 합니다. 산행을 마치고 술 한 잔 하고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 하는데 허심탄회하게 하기 어려운 말도 입을 열어 말하더라고요. 저와 이야기 하고 싶어 하고, 믿고 말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듣는 데 좀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한 소리를 되풀이하고,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 주초(酒草) 문제에 있어 한국 교회는 청교도적 계율의 전통에 따라 주초를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 주초 문제는 구원과는 관계없으나 금주와 금연은 경건의 미덕입니다. 미국의 의학 협회지를 보면 술은 연간 500만 명을 정신분열증으로 만들고 2만 명을 교통사고로 죽게 하고, 국민 병의 제1위인 정신 분열증의 원흉이며, 폐암 환자가 20년간 500퍼센트나 증가한 것은 흡연율과 정비례하고, 담배는 적어도 폐를 손상시키는 만큼 심장에도 해롭습니다. 흡연은 동맥을 상하게 하고 압축하며, 심장으로 가는 산소의 흐름을 차단시키고, 피의 응혈을 자극하고 콜레스테롤의 보호효과를 무디게 합니다. 흡연자로 인한 주변의 간접 흡연자의 심장 발작率은 30%정도라고 합니다. 암 환자의 2분의 1이 술과 담배가 원인이라고 합니다. 가정과 국민건강의 적입니다. 인류의 면허 있는 도둑놈입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술 마시면 확실히 긴장이 풀어집니다. 술 마시고 성경을 볼 수 없고 술 마시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술 마시고 교회 올수 없습니다.
[고전 10:23,24]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어떤 사람은 “누구든지 신앙의 자유가 있다. 성경에 보면 담배를 금하는 곳이 어디 있느냐? 한 군데도 없다… 술은 취하지 않을 정도로 마시면 몸에 유익하기도 하다. 담배도 그리 나쁘다 할 수 없다. 자기는 하나도 꺼리기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음식은 다 하나님이 내신 음식이다. 술도 담배도 다 유익하니까 세상에 있는 것이다.” “현 시대에는 술 담배 문제를 개방해야 한다. 술 담배 문제로 새신자가 교회 오는 데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런 풍습은 없는 것이 좋다. 그러니 먹어도 관계없다. 그런 것 가지고 교회에서 문제 삼지 말아야 더 좋다.”
그런데 때로 교인 중에는 이런 사람을 보면서 이렇게 말 합니다. "교회의 집사 중에도 술 담배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나 같은 초신자야 어떠냐?" 어떤 담대한 신앙의 소유자로 인해 형제가 실족하게 되면 이사람은 큰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덕을 세운다.' 는 말은 즉 이웃에 도움이 되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운다는 의미 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생각, 자기 욕심, 자기주장,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사람과 충돌하고 저 사람과 충돌하는 자세가 아니고, 교회의 입장,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태도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소중한 자유도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며 그러한 유익을 주고받는 사람이 많아질 때 그 사회는 참으로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 10:27-28]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불신자 중에 누가 식사 초대했을 때에 양심을 위하여 "이것이 우상제물이냐?"고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이것을 우상제물이라고 알려주면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시장에서 제사 지내고 남은 고기들을 사다가 먹을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이럴 때 그 고기를 사다가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그런 난처한 일을 당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옆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가져왔는데 이러한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성심인데… 저는 어머니가 말없이 주시더라고요. 아마 어머니는 아셨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설사하였습니다. 참 민감하지요? 한 번도 아니고…
바울은 이럴 때는 묻지 말고 먹으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합니다. 큰 문제될 것 없다. 라는 의미도 있겠지요? 혹시 누가 이의를 제기하면 또한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합니다. 먹으라는 것도 먹지 말라는 것도 그의 양심을 위함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양심은 내가 정한 양심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양심을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의 말한 양심을 좀 더 생각해 봅시다.
[행 23:1]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문제는 사람마다 양심대로 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자신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 많습니다. 거리의 사람마다 양심에 부끄럼 없이 살았다 말합니다. 그 좋은 양심은 1) 내가 생각하는 구습에 젖은 양심이 아니라. 정결한 양심, 하나님이 인정하는 양심이이 되어야 합니다. 2)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양심입니다. 내가 생각한 나의 옳고 그름에 의해 정해지는 양심이 아닙니다. 그런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합니다. 혹시 나의 행위로 저 사람이 죄에 담대해 지는 것은 아닌가? 혹시 나를 보고 저 사람이 시험에 들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바꾸고 싶어 하는 풍습이 인류를 구원하는데 중차대한 일이 아니라면, 세상의 풍습을 바꾸고 세상 사람의 의식을 바꾸기 위하여 정의의 사도가 되기보다는 현재의 세상 풍습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동대 총장 김영길 장로에게는 늘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늘 말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도 성도들 보기에도 좋지 않다. 그러면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술은 끊을 수 있지만 담배 끊으라는 말은 하지 말라. 손님을 만나 사람들과 교제할 때도, 일을 생각할 때도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담배 한다고 다 해로운 것도 아니다. 하루는 T.V를 시청하는데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가 나옵니다. 우리가 법대로 경주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합니다. 마음에 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좋지 못한 습관을 가지고 경주하러 경기장에 나가는 것은 다리에 각반을 차고 경주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그 시로 담배를 끊었습니다.
2. 교회나 이웃에 덕이 되는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고전 8:12,13]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로 실족치 않게 하리라."
예수님은 더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영국의 경험주의자 베이컨은 이 세상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거미 같은 사람, 개미 같은 사람, 꿀벌 같은 사람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보면 세 종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강도는 거미와 같은 인생입니다. 레위인은 개미와 같은 인생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꿀벌과 같은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에 주님의 교회에 꼭 필요한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전 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구원을 얻게 하는 삶을 살려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전 13:5]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사랑의 일곱 번째 특성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1) 여기서 "구한다."는 단어는 현재형으로서 끊임없이 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2) 여기서 "구한다."는 단어는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온갖 방법을 다해 챙기는 자기중심적 생각을 말합니다. 자기를 명예롭게 한다든지 아니면 자기에게 편익이나 기쁨이 되면 물 불 안 가리고 맹렬하게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자기의 유익을 구하느라 다른 사람의 유익이나 고통에 별 관심이 없는 이런 사람을 우리는 보통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분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1) 자신의 하늘 보좌를 내놓고 이 땅에서 오셨습니다. 2)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의를 포기하셨습니다. 3)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인의 모습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시려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자기의 권한을 포기하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고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 이타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기록하길,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육체를 죽여야 합니다. 온전한 사랑을 배우기 위하여 주님과 일치됨을 위하여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을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육체의 욕심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아닌가로 판단하여야 합니다. 때로 내가 계획을 세우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의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 내 욕심과 내 기쁨을 취하는 요소가 없는가를 보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꼭 맞는 사람이 되려면, 범사에 내가 영광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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