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36-50   <내게 있는 향유 옥합>                                                             2011.4.10

○ 성경에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께 부은 사건은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입니다. 공생애 2년 중간에 2번째 갈릴리 순회 전도 여행을 떠나시기 전에 가버나움에서 있었고. 두번째는 향유 옥합은 공생에 3년, 예루살렘 근처의 베다니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한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을 초대하고 씻을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통상 손님이 집에 오면 발 씻을 물을 주고, 볼에 입을 맞추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도록 했는데 시몬은 예수님께 발 씻을 물도 내오지 않았고, 볼에 입을 맞추지도 않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즉, 전혀 손님으로서 예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한 부정한 여인이 들어와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를 풀어서 발을 닦고 발에 입을 맞추고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를 발 위에 듬뿍 부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시몬은 불쾌했습니다. 초대하지도 않은 거리의 여인이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겁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니 이 여자가 왜 여기에 왔어. 더러운 여자” 그리고 “저 예수라는 사람은 선지자 맞아 저가 진정 선지자라며 자기의 발을 닦아 주는 저 여인이 어떤 여자인지 알 텐데 어떻게 저런 더러운 여자에게 발을 맡기는가!” 예수님을 판단하고 업신여겼습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할 말이 있다.”

[누가복음7:41-43]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 여기 500 데라리온과 50 데라리온은 죄의 경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느끼는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크고 작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죄용서의 대한 감격이 얼마나 크냐 작으냐에 따라서 감사의 태도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죄인임을 알지 못했고 의인으로 알았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가 네 집에 들어 올 때 네 하인 중에 어느 누구도 내 발을 닦아주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너도 나를 맞아 뺨에 키스하고 포옹하며 맞아 주지 않았고 너희들 중에 아무도 내 머리에 향유를 부은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여인을 봐라. 이 여인은 자기 눈물로 내 발을 닦고 그리고 내 더러운 발에 입을 맞추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고 그리고 값비싼 향유로 내 발을 닦아 주었다. 보라 너는 하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했다.”

○ 이 여인의 행동은 보통 사람은 도무지 행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시몬이 더러운 발에 입을 맞추기에는 그는 신분이 너무 높았습니다. "내가 어찌 당신의 발을 씻기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이 값비싼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이는 그녀가 예수님을 아주 귀한 분으로 여겼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 앞에 빚진 자입니다. 그 빚은 돈으로 계산할 수도 없고 나의 가장 값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우상,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옥합을 깨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의 은혜를 받고 나서 "나는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1) 주님은 애굽의 감옥에서 다른 죄인들을 돌보며 지나던 모두에게 잊혀진 요셉을 찾아 주셨습니다. 2) 주님은 인생의 바닥에서 장인의 양을 치는 모세를 찾아주셨습니다. 3) 하나님은 많은 형제들 가운데 작고 약하다고 무시를 당하던, 들에서 양을 치는 다윗을 찾아 주셨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무릎을 꿇으니 진토에서 들림을 받은 것입니다. 이 여인이 받은 은혜를 생각해 봅시다.

○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제문제가 해결되고 부부의 문제,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중풍병을 고침 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을 고 쳐주시기 전에 중풍병자가 지은 죄부터 먼저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먼저 치료 받아야 할 것은 병이 아니라 죄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는 중풍 병을 앓고 있던 사람에게 심각한 마음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했고, 그 결과 온 몸이 마비된 중풍에서 치유된 것입니다. 은혜는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죄문제의 해결이 없는 치유와 문제의 해결은 더 큰 고난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죄입니다. 죄는 인간의 삶을 박살냅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이 죄입니다. 베드로처럼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하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5:32)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 하나님을 알기 전에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괜찮은 사람이다.”

◉ 믿는 교수님과 불신자 학생들이 산에 갔습니다. 한 학생이 말합니다. "교수님! 불신자 가운데에도 착한 사람 많아요. 예수 안 믿었다고 지옥에 간다면 하나님 불공평하잖아요? 그런 하나님을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교수가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판단에 따라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누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모두가 다 악할 뿐입니다. 인간의 착함과 악함을 따지는 것은 인간의 기준일 뿐이지요. 하나님을 등지고 1m 떨어져 있는 것이나 100m 떨어져 있는 것이나 하나님을 떠나 등지고 있는 것은 같습니다." 이 학생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 자기 의에 빠져있는 사람은 귀먹은 사람 눈먼 사람이 됩니다. 자기 의가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이 잘난 줄 압니다. 인간은 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사랑이 없는 무정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의지력과 노력으로는 제 아무리 힘쓴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의인은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은 그냥 죄를 깨닫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율법이 죄사함을 이루어 새롭게 하지 못합니다. 죄사함이란 하나님의 인정을 얻는 것인데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주님으로 선포하므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부끄러운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죄인임을 아는 만큼 은혜가 넘칠 것. 한없이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고백하기를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베드로는 죽더라도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하룻밤 만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 후에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고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릴 때마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죄를 짓기 이전보다 죄를 지은 다음에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임을 더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크신 사랑 앞에서 베드로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잘난 체하고 고집스런 존재였는지,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지 바르게 깨닫습니다.

○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여인의 마음은 가난했고 주님의 말씀과 위로를 사모하였습니다. 그녀는 늘 멸시받고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왔기에 그녀의 마음은 가난했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의 사랑과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작사자는 (John Newton1725-1807) 존 뉴튼입니다. 뉴튼이 여섯 살 때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뱃사람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 다음해에 재혼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뉴튼의 삶은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항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며 창기들과 어울렸습니다. 전쟁으로 뉴튼은 군인이 되었고 군함에 자주 타면서 나쁜 행동과 거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고 탈영하다 잡혀 범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더욱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곤 했습니다. 그러다 포로로 잡혀 15개월 동안 포로생활을 한 그는 노예무역의 일꾼으로 일하게 되었고 드디어는 노예선의 선장이 되어 노예를 사고파는 일을 지휘하였습니다.

어느 날 노예무역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큰 폭풍우를 만나 배가 파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이라고 애타게 부르짖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었던지 배가 파선한지 4주 만에 기적적으로 뉴튼과 선원들은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하나님께서 항상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노예무역을 그만 두었고 자신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하기 위해 목사가 되어 43년을 섬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며 그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격해 하며 찬송가 405장의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라는 찬송가를 작사했습니다.

○ 당신이 혹시 스스로 "나는 그렇게 큰 죄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가사에 그리 큰 감명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주여, 내가 이 만큼 봉사를 하고, 내가 이 만큼 헌금을 냈는데 나를 권사, 안수집사, 장로로 세워주지 않으니 주님, 되~~게 섭섭합니다. 앞으로 나를 한번만 더 섭섭하게 하면 그때는 주님도 각오를 하세요. 나 성질 더러운 것 주님도 잘 아시지요. 그때는 진짜 관계 끊어지는 겁니다." 라고 말을 한다면 유치원생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마십시오. 실망할 것입니다.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하고, 헌금, 주일성수 한 것이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은 받은 은혜가 놀라와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잘난 사람, 배운 사람, 가진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알고 은혜를 알고 겸비한자를 들어 쓰십니다.

[누가복음7:47-50]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50 딸아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라.

○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신임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내 실력이나 인간됨을 그가 알아주는 것입니다.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당신의 회사에서 나온 물건이 참 좋다 인정받으면 삶에 보람이 느껴지고 자랑스럽습니다. 어느 사회에나 회사원도 공무원도 인정을 받지 못하면 진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에게 힘도 능력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릎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하심을 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압니다. 그분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무릎 꿇을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로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내가 너를 안다. 너의 나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내가 안다.”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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