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12-20  <나는 세상의 빛이니>      2011.10.9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인의 종말이 있습니다. 우주도 종말이 있습니다. 인류는 미래에 대해 점점 더 희망을 잃어 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십시오. 세상은 전쟁, 테러, 살인, 마약, 폭력, 범죄, 기아, 질병, 가난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먹고사는 데 문제없는 사람은 20%이고, 먹고사는 데 문제가 있는 사람이 80%나 됩니다. 이제 세상의 경제도 환경도 인간의 조작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고난과 흑암 속에서 그래도 인간은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나는 세상의 빛이다.’ 깊고 깊은 갱도에 갇힌 사람에게 한 줄기 빛은 한없는 기쁨을 줄 것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 당시 거대한 로마의 정치, 군사력 치하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삶에 희망을 주는 분이십니다.  


어두움이 한줄기 빛으로 깨어난다.  미국에서 인기 정상을 누렸던 케이트 스미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가수가 '하나님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 어느 누구도 그녀만큼 이 노래를 잘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했습니다. 어느 날 신문 기자들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스미스양, 당신은 언제 봐도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생활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까?" 스미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신앙을 갖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미스는 어느 날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노를 젓는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놀고 있었는데 놀이에 너무 열중하다보니 썰물(退潮)이 밀려나가면서 보트가 육지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아이들은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지만 도저히 강한 썰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어서 해변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스미스는 두세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성경 말씀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래서 배에 탄 친구들과 함께 배 밑창에 머리를 대고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몇 시간이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얼마 후 멀리서 불빛 하나가 점점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목이 터지도록 살려달라고 외쳤고 결국 그 배에 의해서 구조되어 무사히 육지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스미스는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낙심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생활신조信条로 삼게 되었습니다.


제 아무리 큰 질병에 있는 사람도 제 아무리 경제적인 고통에 있는 사람도 빛 되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에 모든 근심 걱정은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선하게 보이는 많은 길들을 만나지만 오직 그분만이 우리에게 선한 선택을 보장해줍니다. 

죄인의 특징은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죄인은 일상적으로 죄 짓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둠에 있는 자는 어둠을 모릅니다. 사람들은 종말과 심판을 말해 주면 부담스러워하며 자꾸 피하려고만 합니다. 애써 천국을 부인하고 지옥을 부인하려 합니다.

[요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빛 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내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고 내게 확신을 달라! 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길을 보여주지 않으신다. 나의 고난에서 나를 풀어 주시지 않는다. 합니다. 문제를 하나님에게서 찾습니다. 우리들도 가끔 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들 가운데 와 계셨고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사실, 진리는 이렇게 찾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늘 우리의 마음 문 앞에서 이미 등불을 들고 계십니다.


[요 8: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 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요 8: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나와 함께 계심이라.

[요 8:19]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예수님은 스스로 영적 지식이 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그 말은 논리적으로 잘못되었다.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이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은 모순이다 틀렸다 합니다.


◇ 우리는 일곱 색깔 무지개만 압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可視光線뿐입니다. 빛은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이 있어서 볼 수 있다면 더 아름답고 다양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벌은 녹색, 파랑, 노랑 등 3색 정도만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에게는 나무색깔은 ‘초록’이라고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초록’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눈을 뜰 때에야 비로소 “이것이 초록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 대하여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하여도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보는 하나님이 늘 모순되고 틀리고 불공평해 보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판단이 미칠 수 없고 우리의 생각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증언을 자신과 하나님에게서 찾으십니다.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에 불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작은 머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 이미 그런 하나님은 우리의 믿을 만한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길은 진리 되신 그분이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아는 길은 믿음과 체험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목사님이 차선수를 전도하려고 집에 찾아가서 2시간 내내 쉬지 않고 말씀을 전하는데 차 선수는 말씀을 듣지 않고 텔레비전을 킵니다. 계속 말씀을 전하는데 이번에는 전축을 킵니다. 딱 돌아서서 나는 예수 안 믿는다. 5개월 뒤 무릎을 다쳐서 거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큰 소리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것을 고백하며 눈물 흘리고 회개하는 차범근 감독에게 이 목사는 물었다. "주님께서 무릎을 낳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기도시간에 '아멘! 아멘!'을 강하고 짧게 연발했다. 조금 후 갑자기 차 감독은 이 목사의 귀청이 찢어질 것만 같은 큰 소리로 기도했다. "주여 불이 들어왔습니다. 불이 올라갔습니다. 불이 다 나갔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요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8:24]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우리는 주님을 아는 만큼 나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면 나를 알지 못한다.  어두움에 있는 것만큼 빛을 알지 못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그 빛이 나를 밝히게 되고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 보입니다. 주님의 빛이 내 안에 밝으면 밝을수록 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삶은 죄에 종노릇하여 살았습니다.

 사람 안에 허영심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늘 허영으로 목말라 할 것입니다. 늘 거짓말하고 늘 사람에게 잘 보이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의 말에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사람 안에 탐욕은  더 많은 것을 차지 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합니다. 끝없는 탐욕은 나에게 쉼을 주지 않습니다. 병이 찾아오고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분노하는 자는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이기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죄의 종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이상스러운 일은 내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인 이후에는 전보다 마음의 갈등이 더 심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자신이 특별히 남들보다 많은 죄를 짓는 것 같지 않았고, 별다른 고통 없이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 그러나 예수 믿고 난 후에는 신자는 마음속에 악한 생각이 있음을 더 분명히 알게 되고 더 많은 죄를 범하고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의 마음에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까닭입니다. 죄를 대적하고 범죄 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탄식하는 자가 죄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인해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 참된 진리라 함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아무리 많은 성경 지식이 있다할지라도 그 영혼이 죄에 매여 있는 자는 가장 기초적인 영적진리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매일 산다는 바리세인과 서기관들도 성육신 하신 예수그리스도가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야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단지 지식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진리를 안다'는 것은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입니다. 어려울 때 찾고, 싶을 때 찾는 것이 아닙니다.


[창 1:3,4]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예수님의 빛을 내면의 세계로 가져오는 자에게는 어둠이 사라집니다. 그 안에 빛이 들어가는 순간 예수님의 빛이 내면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모든 어둠을 내쫓음과 동시에 질병, 절망, 좌절, 상처, 죄악 저주의 세력들이 사라짐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내면의 세계는 밝아지고 찬송이 나오며 향기가 나고 꽃이 피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면 가정은 빛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직장의 오너로 모신다면 노사관계, 비즈니스, 경영 등 직장의 모든 패턴이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방법과 다르게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실로암 연못에서 나면서 소경된 자에게 소원이 있었습니다. 밝은 세상 보고 싶어 마음 졸이고 지팡이를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길 가시던 예수님이 진흙으로 눈을 바르시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걸했던 소경은 허물이 벗겨졌어요. 눈부신 밝은 세상 볼 수 있어 감사하였습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은혜입니다.

[출6: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다시 말해 사람의 가르침이나 내 마음의 상상을 통해 아니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내 마음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직접 드러내기를 기다리지 않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노력들이 그것이 기도행위일지라도 아니면 책을 읽기, 노동도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배운다 해도 아무리 애쓴다 해도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복된 빛을 얻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시42:2] "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나의 입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더 충만히 나타내시기를 원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아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계셔 알려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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