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1:1-9   < 믿음이 자라는 교회 >            2012. 2. 12

[데살로니가후서1:3-4] “형제들아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찾는 핍박과 환난 속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랑할 만한 이유는 핍박과 시련이 속에서 원망이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더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으로 자란 것입니다. 평상시에, 편안할 때는 그 사람의 신앙이 진실한 신앙인지 보배와 같은 신앙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치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난을 겪게 되면 더 인색해지고 더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병을 통하여 마음까지 약해져 병든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극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다른 이의 질병을 이해하고 돕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환란 가운데서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원망 불평 방황하다가 마침내 나약해지게 됩니다.

바울의 가장 큰 기쁨은 그들이 환란 속에서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즉, 한사람 사람이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이 더 자라는 것. 이것이 목회자의 기쁨이요 감사입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는 것 그 이상의 기쁨과 감사가 없습니다.

[요삼 1:3,4]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 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마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 오라 하시다.

1) 믿음이 제일입니다. 왜 우리의 믿음이 자라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해산하기 위해서 큰 출산의 고통을 겪지만,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그 고통을 잊고 기뻐합니다. 해산도 중요하지만 성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발육 부진아를 둔 부모는 고개를 들고 다니지도 못합니다. 어떤 아이는 뛰어다니고 말하는데, 어떤 아이는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부모는 얼마나 안타까워하겠습니까?

▶ 에베소서의 전신갑주에서 믿음의 방패라고 했습니다.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믿음이란 오직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축복받았고, 또 앞으로 지속적으로 축복을 받는다고 하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에 매달린다면 이는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쏘는 화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의심케 하거나 하나님을 불순종하게 하는 시험이기도 하고, 두려움과 염려와 같은 온갖 잡념일 것입니다. 이 때 믿음만이 원수의 모든 불화살들을 소멸시키는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을 때마다 믿음의 방패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내 지혜, 내 방법을 앞세우지 마세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는 유일한 길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순식간에 믿음의 뿌리가 내리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갑니다. 우리의 신앙이 장성하여 그리스도만큼 자라가야 합니다.


▶ 믿음으로 쟁취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뻐하시고 기뻐하신 일.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던 한 가지 일은

[마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막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

 

허드슨 테일러의 믿음의 기도 /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처음으로 중국에 갈 때의 일입니다. 그는 범선을 타고 가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지 않으므로 식인 섬 해안에 매우 근접한 상태에서 배가 멈추고 말았습니다. 뱃길을 바꿀 수도 없이, 배는 해안선 쪽으로 서서히 떠밀려가고 있었습니다. 식인종들은 자신들의 축제의 대상들을 향해 서 있었습니다. 선장이 허드슨 테일러에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원했습니다. "좋소! 바람을 잡을 수 있도록 돛(船帆)을 펴시오." 선장은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 돛을 펴는 것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라면서 이를 거절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돛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나도 기도하지 않겠소." 허드슨 테일러가 기도하는 동안 누군가가 선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요?" 선장이 대답했습니다. "아직도 바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소?", "그렇소." 선장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해도 되겠군요. 우리가 배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이상의 바람이 불고 있소."


▶ 소망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잠언14:26-27]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사단이 쳐놓은 그물을 빠져나갈 길이 없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권능으로 역사하십니다.

아브라함인들 알고 나갔습니까? 하나님은 가나안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찔한 실수에도 건져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채워 주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소망과 믿음의 승리 / 약 100년 전 애급에서 3천년 된 고분을 발굴했는데 미라가 나왔고 그 옆에 꽃병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꽃병을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보냈는데 사람의 실수로 떨어뜨려 깨졌습니다. 꽃병이 깨지자 바닥에 몇 개의 완두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너무 오래되어 겉이 쭈글쭈글했고 차돌처럼 딱딱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연구 검토한 후 땅에 심었더니 30일 후 새파란 싹이 돋아났습니다. 3천 년간 침묵을 지킨 생명이 잠에서 깨어났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에는 분명히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은 믿음만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이뤄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콜론(科隆)의 지하실에는 나는 태양이 빛을 발하지 않을 때도 그 태양을 믿으며,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해도 믿으며,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도 그를 믿는다."라고 쓴 글이 있었는데 이것은 분명히 어떤 전쟁 포로가 장차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조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글일 것이다.


하바국2:4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2) 사랑이 풍성해야 합니다.

지금은 무한 경쟁의 세상입니다. 경쟁이 효율을 올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요. 경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의 소식보다는 승자에 집중합니다. 인간은 경쟁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정신적인 압박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결국 무수한 약자들 힘없는 자들이 심적 불안감으로 각종 질병과 우울증에 이르고, 극단적으로는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잡(Job)코리아가 2010년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회사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63%나 됐습니다. <직장인 조직 피로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심리적, 신체적 이상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 이 땅 초중학교 학생 중 편부모나 부모가 곁에 없는 학생이 61%에 이르고 있습니다.

▶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도로를 가다가 차선을 바꾸려 하면 언제든지 차를 멈추고 양보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절대 양보가 없다고 합니다. 제가 어려서 소학교시절 집이 서울에 있었지만 시장에 간다든지 잠간 집을 비울 때 대문을 열어두고 나갈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도둑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인간을 비인간화(非人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물질의 노예, 죄의 노예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사단의 계략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늘 넘어뜨립니다. 형제자매가 무심코 하는 말에 예민하여 참지 못하고 분을 냅니다. 불친절한 것, 시기하는 것, 자랑하는 것, 교만한 것, 무례한 것, 자기만 생각하는 것, 화내는 것, 원한을 품는 것, 의롭지 못한 것, 진리를 따라 살지 않는 것, 용서하지 못하는 것, 믿지 못하는 것, 소망을 끊어버리고 절망하는 것, 관계를 중단하는 것 등입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여 병들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된 것입니다. 사랑이 정답입니다. 사단의 전략 깨뜨리는 방법이‘사랑’입니다. 끝까지 사랑할 때 사단의 권세가 깨어지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의 강력한 무기가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평강으로 우리를 온전하게 매는 끈이 바로 사랑입니다(골 3:14).


사랑의 치유력 /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병원에서 한 산모가 쌍둥이를 조산으로 낳아서 인큐베이터에 따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의 심장이 안 좋아서 숨이 고르지 못하고 점점 죽어가자, 의사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때, 간호사가 “선생님 이왕에 며칠 있으면 죽을 텐데. 제 형하고 같이 인큐베이터에 있게 하지요.”라고 말했답니다. 병원 법으론 안 되는 것이지만, 죽을 아이니까 한 인큐베이터에 형과 동생을 나란히 눕혀 놓았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형이 오른손으로 동생의 목을 감아주었고, 하루가 지나자 동생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산아지만, 형이 동생을 사랑으로 포옹해 줄 때, 놀라운 치유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며칠 후에 건강해져 잘 살고 있다고 합입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따뜻한 사랑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 사랑은 어느 몇 사람만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고향집 어머니에게 깊은 속사정까지도 다 털어놓듯이 성도들이 교회에 올 때마다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운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 안에서 끈끈한(粘糊糊)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사랑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 당신도 사랑의 일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단지 너와 나의 가까운 이를 향한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는 당신을 알고 싶다는 사랑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한없으신 사랑을 알았기에 나오는 사랑이라야 합니다.

너 없어도 된다. 나는 나고 너는 너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교회가 어찌되든 관계없이 나의 일, 나의 관심, 나의 성공에만 관심이 가진 사람이 되지 마세요. 사랑은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너의 관계입니다. 모두의 신뢰를 잃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믿음을 얻어야 합니다. 떠돌이 교인이 되지 마십시오.


영국의 스펄젼 목사님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문제없는 교회를 찾아 주십시오. 교회마다 돌아 다녀 보아도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때 스펄젼 목사님이 "젊은이, 그런 교회를 한번 찾아보시오. 찾게 되면 저에게 꼭 연락 주십시오. 그러면 저도 그런 교회에 가고 싶습니다. 거기서 목사로서가 아니라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절대로 그 교회에 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이 가는 순간 그 교회는 다시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라고 대답했답니다.


양양 자매가 교회 성수주일을 요즘 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간절한 소망이 있고 마음의 갈등이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교회에도 번갈아 나가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가까운 교회라도 나가지? 그러나 양양 자매는 말하기를 사랑교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여기 교회에도 도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못 나오는 날은 스스로 말씀을 읽겠습니다. 조만간 시간을 조정해서 주일을 잘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교회로서 살기를 바라는 그의 교회를 향한 심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공의를 따라 갚으시는 하나님(1:6-9)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그분의 공의는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믿음의 자녀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겐 영벌로, 복음 때문에 환란을 당하는 사람에겐 영원한 안식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재림하는 날에 이뤄집니다. 그날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이 내려집니다. 인내의 신앙에 값아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의 부귀공명 영화를 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미국도 뉴질랜드도 유럽도 이스라엘 성지도 여행하고 싶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의 감람산에는 세계인들을 위하여 무덤자리를 판매한다고 합니다. 내 생각에 이도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한 영혼을 구원하고 한 영혼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사랑이 부족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하겠다. 생각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