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6:3-14  <믿음의 선한 싸움>        2012. 2. 19

[딤전 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일군은 모름지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마음을 두고 전념을 다해 변화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고, 속이는 사람이고, 사람을 잘못 된 길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변론과 언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 형제자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내 의를 드러낼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봉사와 가르침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 가운데는 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그런 자세로는 결코 교회를 세우지 못합니다. 오로지 영혼에 대한 관심과 사랑만이 있어야 합니다.


[딤전 6:8-10]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욥1:21]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이 지족하는 일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무엇이 부족해서 아담과 하와 저들이 마귀의 꿰임에 넘어갔습니까! 에덴동산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기억할 것은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은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 돈 싫은 사람 없습니다. 돈은 누구나 좋아 하는 것이지만 돈 때문에 매이지 마세요. 돈의 노예가 됐을 때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니고 사람 나고 돈이 난 것입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돈 때문에 사람들은  싸웁니다. 이혼합니다. 서로 속이고 갈라섭니다. 죽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야 너는 그러지 말라.” 권면합니다.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려 하는 것이 욕심입니다. 한 농부가 그 해 농사가 잘 되어서 혼자 흐믓해 하면서, 곡간마다 그득그득 추수한 곡식을 쌓아 놓고는, 행복한 미래 멋진 인생을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내가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계획한 모든 것들이 다 뉘 것이 되겠느냐? 내가 죽어 땅에 묻히는 그 순간이 되면, 평생에 이루어 놓았던 재산, 명예, 권력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최근에 미장원에서 들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심양에서 安利를 하여 한 달에 100여만 원 씩 번 사람이 있답니다. 그런데 그녀가 암으로 죽게 되었답니다. 그 재산은 오빠에게 남기기로 했답니다. 많은 사람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하여 밤잠을 안자고 주일에 쉬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재산을 만들어서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 라는 톨스토이(托尔斯泰)의 글이 있습니다.

남의 땅을 빌어 농사짓는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밤낮 남의 땅에 농사를 지어 보았자, 그저 먹고 살기에 바빴습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가을 추수한 것 중에서 땅주인에게 稅로 물고 나면, 남는 것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만큼 적었습니다. 그래서 그 농부의 간절한 소원은 "조금이라도 좋으니, 내 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 농부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땅 속에서 마귀가 나타나서 유혹을 합니다. " 내가 네게 땅을 주겠다. 그것도 조금이 아니고, 네가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해질 때까지 발로 밟는 모든 땅을 다 주겠다. 그러나 반드시 해지기 전에 출발했던 그 장소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농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단 한 평이라도 더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서, 달렸습니다. 점심도 거르고 하루 종일 달려서 엄청나게 넓은 땅을 발로 밟고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에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수천 에이커의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하루 온종일 너무 무리하게 달린 것 때문에 그만 기진해서 그 자리에서 죽고 맙니다. 결국, 그 농부는 자기가 벌어 놓은 수천 에이커의 땅 중에 두 평도 안 되는 곳에 묻히고 맙니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은 넓은 땅을 요구하지만, 정작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단 두 평이면, 족하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십시오. 소유에 대한 자유과 초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만족은 밖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실 때, 내 안에서부터 발견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감사와 기쁨은 '지족'를 아는데 있습니다.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먼저 피할 것이 있고 취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의 하고 싶은 대로 취할 것을 취하면 됩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내가 내 마음대로 결정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1. 무엇을? 의와 경건과 믿음을 취하라 하십니다.

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위대하심을 알고, 구원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死地로 보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 되고 요새가 되고, 방패가 되고 구원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편이 되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큰 은혜는 누구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선택은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잘나고 못남에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서 기쁘신 대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내가 무슨 공로가 있어서 택함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더 알기 원합니다.


[디모데전서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디모데전서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경건의 훈련입니다. 말은 信者라 하면서 한 푼 돈이나 세상 즐거운 일, 자신의 이름 내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을 새롭게 하는 일에는 별 관심두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집 안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TV를 켭니다. 많은 사람이 만날 사람 안 만날 사람 다 만나고, 할 일 안 할 일 다 하지만 하나님을 찾는 시간을 아까워서 잠시 밥 먹을 때만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못합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이 하나 뿐 인지라 이것에 치중하면 저것을 놓치고 저것에 치중하면 이것을 놓칩니다. 둘 다 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기도, 오랜 기도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되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오늘도 잊을까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으려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성경을 펴 읽습니다.

믿음입니다

▷ 한 전도사님이 충청도에 있는 나환자촌에 갔습니다. 어느 나환자 할머니를 만났는데 이 할머니는 평생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이 나환자촌에서 살았습니다. 남편도 죽고 아이들도 없이 혼자 사시는 분인데 병까지 들어서 고통 속에 살고 계십니다.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를 해 드렸는데 기도가 끝난 후 이 할머니가 하신 말이 "전도사님 하나님은 내 편이시지요"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나환자라고 손가락질 하고 불쌍하다 하는데 하나님은 내편이 되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지 않으셨습니까? 이제는 솔직히 아내가 다리를 다쳐 어려움 속에서 기쁨을 주시고, 도움을 주시고, 채워 주신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동시에 늘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왜 지켜주시지 않으셨나요? 무슨 잘못이 있었나요?

◆ 몇 년 전에 한 선교사님의 사모님이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나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돈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참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생각난 것은 이것이  이 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십자가의 祭物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누구는 말합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 놓았는가? 왜 천사를 선악과나무 앞에 세워두지 않았는가? 어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문을 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의심을 품습니다.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착오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더 큰 믿음과 확신 가운데 거하여야 합니다. 경건의 훈련을 통해 최종으로 얻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무리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믿음을 가진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2.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

사람을 향해 태도와 추구입니다. 이웃사랑을 말합니다. 나는 자녀에게 얼마나 시간을 썼습니까? 나는 나의 형제자매들에게 얼마나, 나는 얼마나 불우한 나의 이웃에게 시간과 돈을 사용하였습니까? 아직도 나에게는 하나님은 은혜가 부족하다 생각하십니까? 사랑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인내로 경주해야 합니다. 했다 안 했다 하는 것은 아직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내가 있는 사람은 어떤 장애물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비록 시기가 늦어지고 일이 예상보다 훨씬 지연되더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믿음에도 인내가 있어야 하고, 사랑에도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의 승리는 인내하는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민 12: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온유함에서 인격의 극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자기를 높이는 거만함도 사라지고, 내 안에 분노가 다스려지고, 내 안에 조급함, 미움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에 대한 부드러움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이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이 있습니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 하였도다.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

우리의 가는 곳마다 죄악의 유혹이 있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틈을 엿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악 된 삶을 철저히 멀리하고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의(公义)를 구하는 삶 경건(敬虔)의 훈련을 지속하고 믿음(信心)을 키워야 합니다. 믿음이 강하면 罪惡된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됩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내게 달려 있습니다. 사랑(爱心)과 인내(忍耐)와 온유(温柔)를 배워야 합니다.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 우리의 속에 흰 양과 검은 양이 있다고 합시다. 흰 양이 이기겠습니까? 검은 양이 이기겠습니까? 검은 양이 이길 수도 흰 양이 이길 수도 있습니다. 내가 흰 양에게 많은 먹이를 주면 흰 양이 이기고 내가 많은 먹이를 검은 양에게 먹이면 검은 양이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에는 누구나 흰 양과 검은 양이 있어 마음에 흰 양을 키우는 사람이 있고 검은 양을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택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항복하고 무릎 꿇으면 모든 것이 마귀의 것이 되고 맙니다. 마귀가 포로들을 이끌고 가는 종착지는 지옥입니다. 마귀의 포로가 되면 사는 날 동안도 온갖 고통과 고생으로 살지만 죽은 후에도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딤전 6: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하나님 앞에서 말합니다.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 하신  '선한  증거' 란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밝힌 것과 하늘 영광중에 오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군병들에게 사형을 말하는 빌라도 앞에서도 주님은 담대함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Sc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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