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1:1-9   < 산 소망>            2012. 3. 18

○ 베드로가 편지하는 대상의 사람들은 지역적으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라고 했습니다. 이 지역들은 이스라엘 변경 북쪽으로 지금은 터키 영토입니다. 흩어진 나그네의 삶을 신학적으로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안식처인 집을 빼앗기고, 피땀 흘려 일군 재산을 탈취 당하고 생명과도 같은 기업을 빼앗겼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나그네의 삶을 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디아스포라입니다.

[벧전1:3-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긍휼은 체휼을 말합니다. 어둠에 헤매는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여 주셨습니다. 버려진 인생, 소망 없는 인생 값어치 없는 인생을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를 택하시고, 자신을 몸을 버려 귀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고통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 오사 내가 그들의 고통을 보고 그들의 신음을 들었다. 하나님이 내가 그들을 이끌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려 하노라. 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아무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 오셨습니다.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 우리는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앞에 그 은혜를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의 길목에서 찾아오는 기회를 발로 걷어찹니다. 기회와 축복을 모르고 당연히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은 더 나은 레벨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만난 많은 북한 사람들에서 한 가지 특징을 보았습니다. 헝哼! 합니다. 이까지 것이 무엇이냐? 너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나는 이미 의롭고 선하다 나는 다 알고 있다. 복을 받지 못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때마다 異象을 보시는 사모님을 모시고 한 나이 많으신 분에게 심방을 갔습니다. 사모님이 들어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집이 깨끗해졌다 주님의 은혜의 물결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기를 사모하시더라." 했습니다. 복 받은 사람입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보기에 지식도 많고 의롭고 선하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보니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여지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집에서 나올 때는 이미 주님이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가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 앞에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었습니다. 사단의 세력을 쳐부수고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하여 모든 좋은 것을 예비하시는 분이십니다. ○ 주님이 나의 갈 길을 아십니다. 주님이 나의 마음을 아십니다. 주님이 나의 아픔을 아시고 주님이 해결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부활 승리하신 주님은 이제 나를 초청하십니다.


▶ 아들의 부활 이후에 제일 먼저 언급되는 것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오사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거듭남 무슨 뜻입니까? 생명을 소유한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주인, 나의 모든 것이 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 육체의 헛된 것, 썩을 것, 무의미한 것을 따라 살던 나에게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어 가장 소중한 것, 썩지 않는 것, 귀한 것으로 채우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자리한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어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살아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어있던 우리를 살리시어 진리를 알게 하시고, 삶에 의의와 기쁨을 주시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은 보았지만,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그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내 안에 역사하시는 위로와 사랑이 나를 강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온갖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하시며 우리를 근심하게 하는 일들 가운데서도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삶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2.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이에게 주시는 성령의 인도, 사랑, 그 풍성하심은 참으로 큽니다. 제게는 하루하루의 삶에 그분의 위로와 동행, 예비함과 채움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를 거듭나게 하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3절]에 산 소망이라 했습니다. 베드로는 소망을 산 소망과 죽은 소망으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 두는 소망이 산 소망이고, 사람이나 세상에 두는 소망은 죽은 소망입니다. ‘산 소망’이란 living hope’즉 '생명력 있는 소망', '살아있는 소망'을 뜻합니다.

○ 산 소망’은 (4절)에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이라 했고, 또 (5절)에서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이라 했습니다. 즉 산소망은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믿는 자녀를 위하여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나라, 흔들리지 않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기쁨과 나라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세상에서 내가 가진 것이 없을 지라도 우리들은 산 소망을 가지고 하늘에 기대를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 그런데 구원의 소망을 갖고 기쁨으로 살아야할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을 자주 봅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며 기뻐하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낙심하는 모습을 봅니다. 안 그렇습니까? 왜 넘어집니까?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과연 지금 나에게 모든 근심 걱정을 물리치게 하는 강한 능력을 갖는가? 물어보십시다.


19세기의 명 說敎家이던 스펄전 목사에게 한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에게는 삶에 소망도 기쁨도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인의 모습으로 사는 가증스러운 위선자 같습니다.” 그러자 스펄전 목사는 “소망이 없다면,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부인이 대답합니다. “안됩니다. 지금도 소망이 없는 것 같아서 불안한데, 교회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스펄전 목사는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주면서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남아있는 소망을 나에게 파십시오. 그리고 이제 교회에 나오지 마십시오.” 그러자 부인이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안됩니다. 수백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절대로 소망을 팔수는 없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스펄전 목사가 말합니다. “맞습니다. 지금 부인은 수백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팔 수 없는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 우리는 이 대화에서 중요한 의문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여인은 몇 푼에 아니면 수백만 달러를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소망이 있다. 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구원의 소망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산 소망을 소유한 사람이 어찌 세상에서 힘들어 하고 기쁨이 없는가?

○ 우리는 현실에 발붙여 사는 사람입니다. (먼 훗날의 천국보다도) 오늘 잠 못 이루게 하는 자녀의 문제, 건강의 문제, 경제적 문제가 더 급한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늘 지금 당장의 문제들로 분노하고 슬퍼하고 울고 웃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원한 천국은 과연 얼마나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인가? 오늘을 승리하게 합니까?


산 소망이란 의미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1) 미래의 소망이요 다른 한 의미는 2) 지금 살아있는 생명을 주는 소망니다. 영원한 천국이라는 ‘산 소망’은 말 그대로 지금 내게 생명과 기쁨을 주는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죽어있는 소망이 아니라 내 마음가운데 살아 숨 쉬는 불 같이 타오르는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사는 사람은 땅의 것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벧전 1:5]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보호하심산 소망은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기뻐하는 삶, 견고한 믿음으로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위하여 이 산소망 외에 다른 잡다한 소망이 나를 흔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땅의 것도 놓치지 않고 하늘의 것도 함께 취하고 싶어 합니다. 둘을 취할 수 없습니다. 내 눈을 산 소망에 두어야 합니다. 


어느 백화점에서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자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새해의 소망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봤답니다. 그랬더니 1위가 돈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되든가, 가지고 있는 증권이 확 올라가든지 부동산값이 확 올라서 돈벼락을 맞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무려 67%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건강 문제, 승진 문제 등이 2위, 3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 자녀의 진학, 결혼 문제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 이런 소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육신을 갖고 세상에 살 동안 다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주님이 우리게 주고 싶어 하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내가 스스로 취하려 하는데 있습니다. ○ 부와 귀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내가 높아지고 낮아지고는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때가 이르면 얼마든지 찾아오시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속한 소망 : 헛된 소망, 일시적 소망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소망을 갖되 과연 어떤 소망을 갖느냐 하는 게 중요합니다. 헛된 소망에 속아 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소망을 갖고 계십니까? 

○ 저는 공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풍요의 하나님 하나님을 믿습니다.  ○ 주님만으로 기뻐할 수 없을까요? 오로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수는 없을까요?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이 모든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영원한 소망 중에 기뻐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나의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시겠습니까? ○  현실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이 더 큰 기쁨입니다. 저는 지금 땅의 것이 풍성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일이 잘 되기를 소원합니다. 


◇ 베드로는 검푸른 물을 바라보면서 바다로 빠져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 사단이 절대로 나의 소망을 빼앗아 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믿음 방패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나를 바라보게 합니다.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벧전 1:7-9]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믿음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했습니다. 금은 고열의 도가니 속을 드나드는 가운데 불순물이 다 타 없어지거나 제거됩니다. 그래서 귀한 순금이 됩니다. 그런데 환난과 시험을 이긴 믿음은 그렇게 불로 연단된 순금보다도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과 환란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신앙! 주 안에 기쁨, 칭찬과 존귀 영광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순전한 믿음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모든 잡티를 제거하고 온전한 부활의 소망을 가진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우리가 늘 기쁨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이 가득하고 존귀 영광을 얻게 되는 비결은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기쁘심을 얻는 비결은 1) 주님을 사모하고 2) 그 날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언제든지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고 새 힘을 얻는 사람입니다. 믿음에 결부되어야 하는 것이 인내입니다. 


(9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여기서 "영혼의 구원"이라 한 것은 육체의 구원 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영혼만 구원 받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여기서의 영혼 구원은 생명을 얻는 전인구원을 말합니다. 즉 온전한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산 소망으로 환란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며 고통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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