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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6-10 <하나님을 가까이>
야고보서 4:6-10 <하나님을 가까이> 2012. 3. 11.
[야고보서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1) 우리 모두는 평화를 원합니다. 인간은 평화를 원하지만 끝없는 전쟁의 소문으로 불안합니다. 세상의 많은 크고 작은 소국들이 핵무기를 가지려 힘을 씁니다. 핵의 확산을 막을 힘이 어느 나라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2) 자연의 파괴는 인간의 소비의 한없는 탐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은 기후변화를 다스릴 능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3) 이제 더 이상 금융 자본가들의 탐욕을 어느 국가의 영도가 해결하지 못합니다. 4) 학교의 공교육은 인간을 교육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사교육도 공교육도 인간의 전인격적인 교육을 위하여 힘쓰지만 인간의 탐욕과 유혹의 세력은 더욱 큰 세력을 확장되어집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 왕이시고 평화를 가져오신 분이라면 왜 인류는 예수님이 오신 후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가?
◇ 아프리카의 어느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가 우리는 청결한 삶을 살고 싶다. 도와주십시오. 했다 합시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씻을 비누를 주었습니다. ◇ 누구나 써도 좋다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을 씻지 아니하고 이게 무엇이냐? 왜 나를 더럽게 놔 두냐 한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비누가 되기를 원하셨고 주님은 우리의 길에 등불이 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많은 것을 주시었습니다. 예비하고 계십니다.
정욕 때문에 가정에도 싸움, 교회에도 싸움, 직장에도 싸움, 나라 간에도 싸우는 것도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 가지고 싸우는 것도…탐심 때문입니다. 사람이 제 욕심 때문에 하나님에서 멀어지고 제 욕심 때문에 분노고, 싸우고,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구함으로 받습니다. 1) 어떤 부인은 결혼한 지가 여러 해가 되어도 아이가 없어서 고민하던 끝에 하나님께 매달리어 아이를 낳은 분도 있습니다. 2) 어떤 이는 사업에 다 실패해서 거의 포기 상태에 있었는데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좋은 길이 열려 사업에 성공합니다. 3) 어떤 이는 아주 심한 병에 걸려 희망이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새 힘이 솟기 시작하고 병이 나아 아주 건강하게 되어집니다. 4) 어떤 사람은 결혼 연령이 되었는데도 마땅한 상대자가 생기지 않아서 남모르는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좋은 상대자가 나타나 결혼하게 되어 기뻐하는 것을 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면 받는다고 해서 열심히 구했지만 아무리 구해도 받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을 위하여 기도했으나 병에 걸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데 그만 세상을 떠납니다. 물질의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지만 얻지 못합니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기도드렸지만 낙방을 합니다. 왜?
구하여도 얻지 못한 이유 1)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까닭입니다. 2) 하나님의 기쁘심을 얻지 못한 이유입니다.
구하지 않았거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한 까닭입니다.
[야고보서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수 없이 많습니다. 이렇게 물어봅시다. 누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게 했나? 기도란 하나님께 그분의 뜻에 맞도록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에서 바람이 있고 구함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입니다. 합당하다면 기도하는 것은 무엇이나 우리가 바라는 바의 응답이 될 것입니다.
[약 4:6-7]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하라 하십니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종이 될 것입니다. 나는 다 안다 지식분자, 재물이 있고, 재능이 있고, 나는 내가 다 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는 교만입니다. 사람은 다 유한 한 존재입니다. 온전한 평강을 얻어내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재물이 있는 자가 병이 있고, 재물이 있는 자가 다툼이 있고, 재물이 있는 자가 자녀를 악하게 만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 罪惡된 어둠의 시대에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단은 늘 말합니다.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네게 즐거움과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마귀는 어찌하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케 하여 하나님을 향한 순복을 훼방합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마귀를 대적함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 사탄이 유혹하며 다가올 때 아담과 하와는 사탄에게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내주었습니다. 사단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했던 사랑의 마음은 식어 원망과 지배의 관계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 최근 한국에서는 3성 장군이 여사병과의 육체적 관계가 발각되어 옷을 벗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듣기로는 대범하고 모든 군인의 존경을 받는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그는 피눈물을 흘려야 했습니까?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 예수를 믿는 남녀 대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그해 여름방학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함께 바닷가로 놀러가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약속이 얼마나 순결한 삶을 유지하는데 위험한 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닷가의 저녁노을을 보며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청년의 마음은 혼전 순결과 육적인 욕망 속에서 담대히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기로 마음먹고 여자친구에게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녀의 마음도 동일한 욕망의 갈등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둘은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다음해에 그들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정해야 합니다. 내 몸, 내 시간, 내 재물,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데 뭐 어떠냐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복하는 성도가 될 때 하나님이 더욱 가까이 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오셔서 성전 뜰을 청소한 것처럼 우리 삶에 영향력을 미치는 악한 영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말은 신자라고 말하지만 내가 그리스도의 영에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지 못하고 내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자랑으로 탐닉하여 살 때, 내 육신이 과거의 죄의 구습대로 계속하여 살 때 그런 사람에게는 결코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성령님에 의지하여 복종하여야 합니다. 내 몸의 행실을 죽이고 내 삶을 괴롭히는 악한 영향력으로 부터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전심으로 기도하고 경배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빛이 비췸으로 말미암아 어둠의 쓰레기 들이 사라집니다.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시편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모든 행복의 시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없습니다. 성도의 최대의 소원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평생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아가기 원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수영선수가 잠이 오지 않아 수영장으로 갔습니다. 달빛 아래서 수영을 즐기려 다이빙(跳水)대에 올라서서 두 손을 벌렸습니다. 달빛에 자신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보입니다. 그런데 팔을 벌린 까닭에 십자가 형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형상을 보는 순간 그는 갑자기 십자가의 의미가 생각납니다. 이어 잊어버렸던 찬송이 생각나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그 후 수영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수영장 바닥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수영장에 물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관리인이 청소하려고 물을 빼 놓았던 것입니다. 조금 전에 자신이 뛰어 내렸더라면 틀림없이 죽었으려니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였습니다. 달빛에 비추인 십자가가 자기를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수영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았던 자신을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함으로 나를 살려주셨구나 생각하며 감사하였습니다. 그 날 밤 그는 자신의 영혼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간증을 통하여 “그 날 밤, 나는 영육 간의 이중의 구원을 경험했노라” 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마귀는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합니다. 교회 가려하면 일이 생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싶지만 무수한 삶의 끈들이 나를 얽어매고 있습니다. 나를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 모든 것들에서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좋은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 마음을 성결케 하여야 합니다. 이는 마음의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의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의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말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헌신과 봉사를 한다고 말하면서 나의 욕심을 채우고, 나의 영광을 취하고, 나의 칭찬을 구하는 일은 가증한 태도입니다. 무엇인가 결정할 때 진실로 이 결정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확신하는 좋은 기준의 하나는 그 결정 안에 그 결과로 나의 유익과 영광이 있는가? 입니다. 세속적인 무수한 잡것들이 내안에 가득할 수 있습니다. 온갖 근심, 염려, 불안, 각종 이유도 많고, 생각도 많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믿음으로 온전히 맡겨져야 합니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손은 부패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이 서기를 원한다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손을 씻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외적인 행동보다 내적 마음을 정결하게 씻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보혈로 씻기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두마음을 품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탄광촌을 방문한 어느 젊은 목사가 탄광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어둡고 더러운 갱 안의 통로에서 아름답고 하얀 꽃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사님은 광부에게 “어떻게 이 시커먼 탄광에서 이와 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광부는 “탄가루를 그 꽃에 부어 보라” 고 하자 목사님은 그대로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탄가루가 꽃잎에 닿자마자 가루들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꽃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꽃잎이 너무나 매끄러웠기 때문에 탄가루가 꽃잎에 붙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한 물들어 있지만 성도는 하나님께 속하여 사랑과 기쁨, 용서와 믿음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야고보서 4:9-10]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요한 세바스챤 바흐(巴赫)는 1,100 여곡 이상을 작곡한 작곡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죽기 몇 달 전까지 실명상태로 악보가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작곡을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코랄(合唱交响曲)은 “주여 당신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입니다. 이 곡을 끝으로 바흐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음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은 경건한 음악과 함께 하신다.”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1,100여 곡이 넘는 작품의 끝에 그는 항상 S.G.D라는 서명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Soli Gloria Deo” 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란 뜻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Soli Gloria Deo!”. 우리의 모든 신앙행위는 ‘주 앞’이 되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라틴어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 을 의미합니다.
한 시대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축복을 받았던 사람들은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소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 생애의 모든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입니다.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의 공통점은 시간마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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