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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1-21 <뜻을 정하여>
다니엘1:1-21 <뜻을 정하여> 2012. 3. 25
[단 1:3-5]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그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함이었더라.
고대 바벨론은 애급과 함께 인류문명의 발상지였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포로생활을 할 당시에는 느부갓네살이 통치하는 새로운 바벨론 제국으로써 세계를 제패하며 부와 권력의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다니엘은 BC 605년, 1차 바벨론이 공격했을 때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포로 되어진 소년입니다.(3) 포로에게는 자유도 인권도 없습니다. 자유가 없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4절) 그들은 바벨론의 관료가 되기 위하여 훈련을 하게 됩니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J 하였습니다. 과거에 그들은 유대인들은 율법에 기촉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으나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방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방신에 대하여, 임금을 섬기는 도리에 대하여, 이방의 문화, 언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제는 없어진 조국 멸망한 나라를 회복하겠다는 소망이 있다면‥
바벨론 땅에서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완벽하게 고집하며 살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부딪고 울고 웃고 살아야 합니다. 관리가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쓸모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언어도 기술도 익혀야 합니다.
1) 건축도, 의복도, 인간이 죄로 타락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음 둘 데 없고 위로받을 곳 없는 에덴동산을 떠난 인간에게 잠시 하나님이 허락하신 위로의 도구, 안식의 도구입니다. 2) 하늘나라에서는 의술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의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한 도구로 쓰여 질 수 있습니다. 죄지은 인간이 허무하고, 병든 때에 꼭 필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학문과 지위는 분명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유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서 지식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고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3) 베드로는 이방선교에 직접적으로 활동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은혜를 의지한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건축도 필요하고 의복도 필요하고 음악도 미술도 의술도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나를 쓰실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가에 있는 것입니다.
○ 신앙의 기초가 튼튼한 사람은 평생 어디 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조금 배부르게 되었다고 은혜와 감사를 잊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잊고 나의 영화와 힘, 향락을 얻기 위하여 살면 안 됩니다. 바벨론에 이방 땅에 와서 자신의 신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남편이 핍박이 있다고, 할머니의 핍박이 있다고, 회사에서 사장이 부른다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중단하고, 기도와 말씀에 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 그들은 이름을 개명을 해야 했습니다.(7절)에 나옵니다.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다니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입니다. 그러나 환관장이 지어준 벨드사살 이라는 이름은 “벨이 그의 생명을 보호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이 이런 개명에 대하여 스스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모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어준 이름을 거부할 힘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 무엇보다도 당장 먹고 마시는 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이교도들은 자신들이 먹는 음식과 술의 일부를 신들에게 제물로 봉헌한 후에야 먹었기 때문에 이는 우상에게 봉헌한 음식을 먹는 사실 먹을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은‘뜻을 정하여’이게 핵심 구절입니다. 고기와 포도주는 먹을 수 없고 오직 채식만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리라는 뜻을 세웠습니다. 사실 이름도 바꾸었데, 이도 양보하여 잠시 먹으면 어떠냐? 먹고 힘내서 하나님의 일을 하자! 할 수는 없었을까요? 그러나 다니엘과 친구들의 생각은 이름을 빼앗기고, 나라를 빼앗기고 원수의 나라이고, 재산을 빼앗기고, 사랑하는 이들을 빼앗기었지만 어찌하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고 자신들의 사랑을 표현할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의 먹고 안 먹고 이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습니까? 최소한이라도 신앙인답게 살겠다는 그들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쓸데없는 소란과 미움을 살수도 있겠지요. 위기가 가중된다 할지라도 지킬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여 작은 뜻을 정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2) 결단을 하여야만 합니다. 여호수아처럼 ‥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새로운 세상, 무슨 소망을 얻고자 한다면 내가 변화해야 합니다. 너무나 쉽게 우리는 포기하여 살아갑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에 감사하고 만족한다. 해서는 안 됩니다.
루이스의‘악마의 편지’책의 내용입니다. 영국의 노신사가 도서실을 찾아갑니다. 이 책 저 책을 훑어보다가 기독교 신앙에 관한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노신사는 책을 읽던 중 마음속에서 갑자기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 순간 악마가 찾아옵니다. 악마는 그의 마음속에 말합니다. “점심시간이야, 뭘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노신사는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누르고 식당으로 갑니다. 점심을 먹다가 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가?” 이 때 악마는 다시 그의 마음에 속삭이고 노신사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픈 생각을 하나. 우선 식사를 끝내고 보자.” 식사를 끝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생각이 어렴풋이 나오려고 합니다. 악마는 이런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생각이지.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 그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탑니다. 버스에 앉자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노신사의 뒤에서는 악마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사단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고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3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1) 열 처녀 비유 2) 달란트의 비유 3)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 미리미리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고, 1달란트 받은 자는 땅에 파묻어 두고 그대로 가져왔고, 양과 염소를 구분할 때는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주렸을 때 먹을 주지 않았고, 갇혔을 때 찾아주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에 찾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여러분은 주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앞뒤가 캄캄하고 답답하고 기쁨이 없고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앙의 위기 속에서 최소한이라도 나의 간절함을 보이기 위하여 신앙의 결단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여 일찍 일어나겠다. 길거리에 휴지라도 주어야겠다.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뜻을 정해야 합니다. 욕망이 있고 아픔이 있고 갈증이 있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금식기도를 해야 하고, 잘 못 부르는 음악이지만 하루에 100곡이라도 부르겠다. 기도하며 살리라. 말씀을 따라 살리라. 성수주일하며 살리라. 사랑하며 살리라. 마음먹어야 합니다. 주의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당신의 全心 全力 全意 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결단할 때, 하나님은 보좌를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무엇이든 결단해야 합니다.
어느 벤쳐 사장의 주일 성수 / 어느 젊은 벤처회사 사장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너무나 가난한 환경서 자랐습니다. 10세 때 아버지가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학벌 배경도 없습니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겨우 밤에 야간 공고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니 무슨 공부가 제대로 되었겠습니까. 그렇게 3년을 직장생활 하다가 퇴직을 했습니다. 그때 퇴직금 50만원을 받아서 그것으로 가게를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10여 년 만에 사업이 대성해서 정부가 인정하는 벤처기업인으로 선정되었고 올해는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10여 년 만에 사업규모가 1천억 규모의 사업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이분에게 "왜 사업을 시작했는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주일을 내 마음대로 지키고 교회학교 교사를 마음껏 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까 주일날도 출근해서 예배에 출석을 못하고 그때마다 아이들을 교회에 맡기고 출근하는데 생각해 보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교회학교 교사를 마음껏 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 그 동기가 참 중요합니다.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 동기가 분명하고 자신이 있으면 이미 반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세상과 구별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성도」라고 부르는 것은 「구별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 11:4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다니엘 1:12]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
육과 영을 정결케 하리라 작정하였습니다.
▶ 환관장의 명을 거스르는 것은 사실 죽음과도 같습니다. 영화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얼마나 뜻있는 일이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한다고 할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합니다. 환관장이 누구입니까? 다니엘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생각하여 사람에게 잘 보이려 했다면 그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친구들은 그 유력한 신하에게 줄을 서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줄을 섰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만약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먼저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정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나’를 먼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는 나’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을 의식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사람 앞에 서기를 원하고, 사람의 인정을 받기를 바라는 것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사람을 너무 의식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 결과는 상처와 실망과 허무만 남습니다. 두려워할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단 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단 1: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단 1: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환관장이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신 이유는 다니엘이 뜻을 정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뜻을 세우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축복해 주십니다. 도와주십니다.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뜻을 정한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더 나은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9절)에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다 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 지식과 학문과 재주와 명철을 더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은사까지 주셨습니다. 위대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향한 간구가 있어야 하고 헌신이 있어야 하고 내 마음의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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