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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6:1-8 <하나님의 구하시는 것>
미가서 6:1-8 <하나님의 구하시는 것> 2012. 4. 15
(예) 【 먼 옛날 중국에서 조조가 나라를 다스릴 때 군인들이 봄철이면 말을 탄 채 보리밭과 밀밭에 뛰어들어 전쟁 훈련을 하는 통에 농사를 망가트리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농부들은 크게 낙심을 하고 농사를 안 지으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조조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을 탄 채 밀밭이나 보리밭에 들어가는 사람은 극형에 처 하겠다"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그랬는데 처음으로 그 엄명을 어긴 자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조조 자신이었습니다. / 그가 어느 날 술어 취하여 말을 타고 오는데 그만 이 말이 습관적으로 보리밭에 뛰어 들어가 밭을 망가트렸습니다. / 뒤늦게 술이 깨어 이 사실을 안 조조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사형 틀에 목을 얹고 "당장 내 목을 쳐라" 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과 백성들이 크게 놀라 극구 말렸고 간신히 재가를 얻어 조조 대신말의 목을 치는 것으로 문제를 수습했습니다. 이런 조조의 솔선수범하는 자세에 감동을 받은 군인들은 이 후 다시는 술에 취해 밀밭이나 보리밭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옛날이야 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내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의 자식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하고 내 물건이 귀한 것처럼 남의 물건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 공의가 땅에 떨어진 세상입니다. 불의와 불법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 뇌물을 받고 불의한 재판이 이루어지고 ○ 사람들은 땀 흘린 돈이 아니라 공짜로 무엇을 얻으려고나 하고 그래서 로또 복권에 사람들이 매달립니다. ○ 세상은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없는 자에게 횡포가 있습니다. ○ 대기업이 빵가게, 편의점 커피점, 국수, 라면 사업까지 진출해서 중산층과 골목상권까지 차지하고 있습니다. ○ 수많은 사람이 반도체 공장에서, 타이어 공장에서 암에 걸렸지만 산업재해를 신청하고 정당한 치료와 보상을 요구하더라도 법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법으로 이길 수 없었습니다. ○ 병원은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기보다는 재물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대학교는 귀한 인재를 만드는데 관심을 갖기보다는 가능하면 많은 학생을 모집하여 막대한 이익에 관심을 더 갖습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생은 엄청난 빚을 지게 됩니다. ○ 친일을 한 사람의 자손들은 부유하며 높은 교육을 받으면 사회의 지배계층이 되는데, 독립 운동을 한 사람들의 자손은 사회적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 지금의 젊은이들은 불행한 세대입니다. 대학을 마치고 취직하여도 수십년을 모아야 집 한 칸을 살 수 있을 뿐입니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자수성가하기가 어려운 사회입니다.
[미 6:4-5]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종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 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어 네 앞에 행하게 하였었느니라.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의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의 성도로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온 천하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온갖 사랑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쏟아 주시는 대상으로 만드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마틴 루터의 고백처럼 황금 문자로 기록될 만도 하지 않습니까?
● 한국의 유명한 연예인 차선생 부부가 고아원에 가서 봉사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아이들을 닦아주고 놀아주고, 청소하고 선물도 하였습니다. 점심 때가 되어서 원장이 이날은 특별히 상을 차렸습니다. 같은 요리이지만 특별히 이뿐 접시에 담겨서 나왔습니다. 한 같이 놀아 주었던 여자 아이가 다가와서 보는 것입니다. 나도 여기서 먹으면 좋겠다! 너 먹지 않았니? 먹었어요. 그런데 이모와 아저씨가 먹는 그런 접시에 담아서 함께 먹고 싶어요. 그 순간에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 간혹 외국에 무슨 학자들이 모이는 세미나라든가 또 혹은 목사님들이 모이는 그런 수양회 같은데 참석을 하게 되면 세계에 있는 많은 신학자나 목사님들이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 특별하게 100년 동안에 크게 부흥한 것을 부러워하면서, "한국 교회의 성장의 비결이 뭐냐?" 그렇게 묻는 답니다. 그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면 선뜻 이것이다, 저것이다 대답할 말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 부흥의 그 원초적 비결이 뭘까?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은총이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라고 생각이 되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은총적 계기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에게는 '양자의 영'이 임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이 주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1)정의를 행하며 2)인자를 사랑하며 3)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오늘 본문은 '예배드리는 자' 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진정한 예배냐 하는 것이 미가를 비롯한 경건한 백성들의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미 6:6).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미가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일년된 송아지" "千千의 숫양" "만만의 江水 같은 기름"을 동원한 물량주의적 예배를 진정한 예배의 모습으로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화려하고 거창한 제사를 드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 상한 자 벌거벗은 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 정의를 행하며
[시편 89:14]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시편 33:5]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렘 5:1]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과연 하나님의 의를 갈망합니까? 성경은 현실에서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이 세상에 정의가 없다고 한탄하고 분노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시대의 그 어떤 정치적 당파하고도 거리를 두었습니다. 이 세상의 의와 하나님의 의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의에는 분노가 있고, 조급하고, 좁은 소견으로 판단하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영광을 취합니다.
‘공의’란 본래 하나님의 속성인데, 하나님의 공의는 투쟁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랑과 인내, 용서와 긍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춰주시고, 비를 내리시고,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며 다시 죄를 묻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 크신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지혜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한낱 죄인일 뿐이며, 지극히 작은 자일 뿐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셔서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1) 교회에는 세상의 罪惡된 경제를 고칠 기독교인만의 경제적인 원리가 있어야 하고 2) 세상의 교육이 해결하지 못하는 교육문제에 우리 기독교인의 교육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세상의 탐욕으로 오염된 병원이 아닌 사랑과 봉사의 병원이 운영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공의로운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왜 가난한 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없습니까? 왜 장애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없습니까?
● 저는 제 둘째가 입학한 한동대를 무척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 학교는 성적이 좋은 학생을 기준으로 뽑지 않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자 가운데서, 가난한 시골 목회자의 자녀 가운데서, 그리고 참으로 봉사의 정신을 가지고 사회에 봉사할 만한 아이인가를 보고 학생을 뽑았습니다. 단지 성적으로 뽑았다면 둘째 용국이가 진학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인자를 사랑하며
인자라는 말은 너희가 사랑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아무조건 없이, 사심이 없이, 긍휼함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을 사랑 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제물은 흠과 티가 없는 제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선행을 베푸는 동기를 네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저주받을 것이 두려워서 행하는 경우입니다. 책망과 심판이 두려운 나머지 마지못해 선을 행한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보상을 바라고 선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상과 복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상을 전제로 하는 선행 자세는 결코 아름다운 태도가 아닙니다. 신자가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보상을 계산하고 생각할 때 인간관계가 상하고 실망하게 되고 또 마음까지 상하게 될 것입니다.) 보람을 구하지 마세요.
셋째는, 공로주의자입니다. 공로를 쌓으려 합니다. 자신을 드러냅니다. 바리새인의 생각입니다. 주는 것으로 자기만족을 찾는 이런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어떤 쾌감을 얻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고, 내 재물로 내 재능으로, 하는 것이고, 내가 영광을 받는 순간에 내 스스로 짐지는 것입니다.
넷째는, 이미 받은 것을 그저 주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음으로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물질로든 정신적으로든 말로든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이 깨끗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자세야 말로 진정 고귀한 봉사자의 정신이라 할 것입니다.
3)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미가는 진정한 예배는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 가룟 유다의 말대로 막달라 마리아가 300데나리온 가치의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지 말라고 하는 말에 당연히 찬성하고 막아야 해야 하지 않았을까?
●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음이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는 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에 무덤에 찾아갔던 다른 여인들은 향유를 준비했으나 바르지 못했습니다. 사랑의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음 없음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말, 부정적인 말들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하는 것마다 너무 부끄럽고 미약합니다. 무능하고 실수합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예배는 물질만이 아닌 주일만이 아닌, 나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올 때 공의로운 생활과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자문하면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가 이 사회에 하수처럼 흘리길 원하십니다. 이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면 사회에 나가, 이웃에 나가 공의를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실천을 따르지 아니하면 기도와 예배에 가치를 잃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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