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20-34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사람은 최악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세상을 지으신 주님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이 탄생하시자 곧 헤롯 임금은 어린 주님을 찾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주 예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세를 위협하는 주님을 이방 원수, 로마 총독 빌라도의 손에 넘겨 죽이기를 요구했습니다.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고함치며 요구했습니다. 몇 차례 심문이 있었고, 주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발견하여 낼 수가 없었음에도 십자가의 형을 내립니다. 십자가는 공중으로 곧게 세워졌고, 주님은 말없이 거기에 달리셨습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 십자가 위에서 주님의 첫 번째 말씀은 하나님께 드린 기도였습니다. 주님의 두 손은 이제 더 이상 병자들을 위하여 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님의 두 발은 불쌍한 자들을 위하여 자비와 긍휼을 베풀기 위하여 다닐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주님은 사도들을 가르칠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주님을 버리고 도망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은 잡히셨고 하실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입니다. 무기력하게 보이지 않나요?

○ 이것이 우리들 교회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 시대에 더 이상 전도지를 들고 거리에서 나누어 주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교회 주차장을 개방하고, 음식을 노숙자들에게 나누는 일이 복음 전하는 일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마지막 길에 기도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 주님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기도하신 것은 구약 이사야의 말씀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시리라.” 한 이사야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사야 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중보기도는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마지막으로 행하신 이 땅에서의 사역이었습니다. 

○ 우리는 본문 서두에 “이에”라는 말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바로 앞선 구절을 보면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입니다. 곧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인간의 사악함이 그 절정에 이른 순간, 저들이 감히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주님이 저들을 향하여 무서운 저주를 퍼부으실만한 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지 아니하셨습니다. 주님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치를 당하고 계셨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고 계신 그때, 저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전 공생애의 어느 때에도 주님은 아버지에게 이와 같은 요청을 하신 일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주님은 친히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마 9:2).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눈물로 발을 적시며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은 죄인인 한 여인에게 주님은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셨습니다. 죄를 사하는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특권입니다. 어떤 유대 서기관들이 의론하기를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고 한 것은 옳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주님은 참 하나님으로 죄인들의 죄를 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께 그들의 죄를 사하여달라 구하신 것입니까? 이는 예수께서 더 이상 신의 위치에 계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 십자가 위에서 대속자로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죄인의 자리, 낮은 자의 자리에 임하신 것입니다.

○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 군중들을 향해서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행 3:17) 말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저들을 이해하며 품는 자세입니다. 제자들도 전에 그랬습니다.

○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든지 모르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알지 못하였다고 죄가 경감되거나, 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죽어 마땅한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그들의 원수들을 이해하고, 무조건 용서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지금 이 나라는 서로가 무서운 미움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좌와 우가 나뉘어 가족과 친척, 동창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고 피하기도합니다. 한 교회 안에서 좌와 우가 나뉘어 갈라지기도 합니다. 과연 하나님 자녀로서의 끈끈함이 정치적인 견해가 다름보다 작은 것입니까? 제자 중에는 열혈당 베드로와 세리가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귀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기도에 앞서 나 역시 죄인임을 알고 고백해야 합니다.

○ 이 시대는 어둠의 시대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사람들은 길을 잃었습니다. 교육이 길을 잃었습니다. 곁길로 나아가는 자녀를 보며, 부모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사람에게 닥친 위기와 재난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잘 되겠지!”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 성경은 우리에게 무조건 죄지은 형제를 용서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용서할 권한이 없습니다. 죄의 용서는 회개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 전에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이 하신 것처럼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 이 나라, 이 민족, 우리 가정, 우리 교회가 사는 길은 나의 죄를 고백하고 저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은 하나님, 신이십니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는 오순절 날 3천의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온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며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희망은 사라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3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온 사건은 베드로의 뛰어난 웅변술로 인하여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이 엄청난 사건은 기도의 결과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며 기도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路加福音 23:20-34 <求赦免他们>

人类犯下了最严重的罪行。创造世界的来到自己的土地上, 世上人却不认识他。主耶稣降生后, 希律王随即寻找并企图杀害年幼的主耶稣。人们并不理解主耶稣所说的神国事。犹太宗教领袖们认为主威胁他们的权势, 于是要求将他交给异邦仇敌——罗马总督彼拉多处死。那些恨恶主耶稣的人大声喊着要求说:“钉他十字架!钉他十字架!” 经过几次审问,虽然在主耶稣身上查不出任何罪来,却还是判了十字架的刑罚。十字架直地竖在空中,主默默地无声悬挂在那里。

[路加福音 23:34] 当下耶稣说:‘父啊,赦免他们!因为他们所做的,他们不晓得。’

○  在十字架上,主的第一个言语是向神祷告。主耶稣的两手已无法再为病人作工,主耶稣的两脚已无法再为怜悯那些可怜的人而来往。主耶稣无法再教导使徒们了,因为使徒们已经撇下主逃跑了。如今主被捉拿,只做祷告以外没有什么可做的。无能为力的样子

○ 这就是现在教堂的样子。 在这个时代,我不知道在街上分发传单还有什么意义。我也不明白我们开放教会停车场、给流浪汉分发食物,对传福音有什么帮助。

○ 但我该知道, 主在背负十字架走向最后道路的过程中以前告过妇女们.

[路加福音 23:28] 耶稣转身对她们说:‘耶路撒冷的女子,不要为我哭,当为自己和自己的儿女哭。’

 。主所祷告的 “父啊,赦免他们!因为他们所做的,他们不晓得”,正应验了旧约以赛亚书中所预言的 "为犯罪人代求"。

 

[以赛亚书 53:12] “所以,我要使他与位大的同分,与强盛的均分掳物。因为他将命倾倒,以致于死;他也被列在罪犯之中。他却担当多人的罪,又为罪犯代求。”

代祷是主被钉在十字架上时,在世上所做的最后一项事工。

○ 我们应当注意本文开头 “于是”这个词。看前经文:“到了一个地方,名叫 ‘髑髅地’,就在那里把耶稣钉在十字架上,又钉了两个犯人:一个在左边,一个在右边。” 就在 “那个时刻”,耶那正是人类正在犯下罪恶的时刻。那是人类的邪恶达到顶峰的时刻,是他们竟敢将荣耀的主钉在十字架上的时刻。按理说,那是耶稣应当向他们发出可怕咒诅的时刻。耶稣说:“父啊,赦免他们!” 主耶稣在承受着无法言喻的羞辱和难以忍受的痛苦时, 然而没有诅咒他们。相反, 主为他们祈祷说:“父啊,赦免他们!”

 

○ “父啊,赦免他们”——在以往公生涯的任何时刻,主从未向父神提出过这样的请求。主耶稣一直亲自赦免了人的罪。主曾对躺在褥子上的瘫子说:“小子,放心吧!你的罪赦了。” 在一个法利赛人家中,有一位罪人女子用眼泪湿了主的脚,并用自己的头发擦干,又亲吻主耶稣的脚,抹上香膏的时候。主对她说:“你的罪赦了。”

正如某些犹太文士议论说 赦罪是唯独神才能行使的特权。:“除了神一位之外,谁能赦罪呢?”(马可福音 2:7),这话是对的。然而,他们并不了解耶稣基督既是真神,同时也是真人的事实。主作为真神,赦免了罪人们的罪。那么,这一次主为什么祈求父说 “父啊,赦免他们”,求父赦免他们的罪呢?这是因为耶稣此刻不再是以神的地位原因。主耶稣当时在十字架上是为代赎者的地位。主降临到了罪人的地位,降临到了卑微者的地位的。

○ 使徒彼得向犹太群众说:“弟兄们,我晓得你们做这事是出于无知,你们的官长也是如此。”(徒3:17)这番话与主在十字架上所说的 “因为他们所做的,他们不晓得”(路 23:34)一脉相承。弟子们以前也不知道。

○ 无论我们是否意识到自己的不足,在神眼中我们都是罪人。并不会因为 “不知道”就减轻罪行的,或者使罪不再是罪的。在神面前人人都应当面对死亡,是应当受审判的对象。尽管如此,之所以还赐下悔改的机会,正是因为我们无知的原因。

○ 我们应当记住的一个重要事实是,主交给门徒们的教导,并不是要他们无条件地宽恕的意思,而是只教导的是 "爱他们",并 "为他们祷告"。

[马太福音 5:44] “只是我告诉你们:要爱你们的仇敌,为那逼迫你们的祷告。”

如今这个国家正陷入可怕的憎恨与冲突之中。左右翼分立,使家人、亲戚、同学聚在一起聊天都变得小心翼翼,甚至互相回避。甚至在一个教会内部,也因政见不同而产生分裂。难道作为神儿女的凝聚力,还不如政见的差异吗? 在耶稣的门徒中,既有奋锐党的彼得,也有税吏(马太)。我们应当拥有一颗彼此珍视、互相怜悯的心。而且在祷告之前,我们必须承认自己也是罪人。

○ 这个时代是黑暗的时代。如今这个国家失丧了路,教育也失丧了路。虽然看到走错路的子女,父母们束手无策。我们是一无所知的无知人,并不知晓末世临到人的危机与灾难有多么可怕。人们只是抱着 “总会好起来的吧!” 人人这种模糊的期待的生活。如今人们软弱无力状态。

 

● 圣经并没有告诉我们要无条件地宽恕犯罪的弟兄。我们没有宽恕的权限。罪的赦免是赐给悔改之人的。罪人是无法来到神圣的神面前的。不是发怒, 多说话就能办到的? 我们能为他们做地事。 就是像主所做的那样,为他们祷告。这个国家、这个民族、我们的家庭以及我们的教会,生存下去的道路就是告白我的罪,并为他们祷告。解决所有问题的是上帝,是神。

[希伯来书 7:25] “凡靠着他进到神面前的人,他都能拯救到底,因为他是长远活着,替他们祈求。”

我们知道在五旬节那天,有三千个灵魂悔改归主的事实。看着耶稣基督死在十字架上,追随主的人们曾一度感到希望破灭。然而,上帝拯救的工作从未停止。三千人悔改归主的事件,并非凭借彼得出众的雄辩术而达成。这一伟大的事件是祷告的结果。因为有一位爱我们并为我们祷告的主与我们同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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