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5:1-8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

[롬15:1-3]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짐을 대신 짊어져야 한다. "우리 강한 자가‥" 진실로 강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나의 자유를 나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은혜와 감사가 있는 사람, 주의 도우심을 아는 사람, 날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 넉넉히 나누는 사람‥


이기적이고, 먹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모든 아픔을 잊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이런 사람은 속이 편한 사람일 것입니다. 길거리 노숙자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 마음 편하고 장애인의 불편함을 모르는 것이 마음 편한 일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아픔을 알면 알수록 나의 마음은 무겁고 힘이 듭니다.

그러니 “ 마땅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라는 이 말이 부담스럽습니다. 집없는 사람, 병든 사람, 세상에 무시 당하고 짐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속상해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사실 주변에는 우리에게 기쁨을 더해 주는 것보다 기쁨을 빼앗아가려는 일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내가 “이웃을 기쁘게 하고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운다” 하더라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 고거에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길에서 사람들을 동승했습니다. ○ 전화기를 빌려 주기도 못합니다. ○ 의료봉사도 구제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 사람이 착하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살다보면 애매하게 고난을 받기도 합니다.


1)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하는 사랑 때문에 형들이 그를 미워 애굽에 팔립니다. 노예 생활을 합니다. 그 자신은 조금도 형들에 대한 미움이 없었고, 도시락을 싸들고 갔던 길입니다. 노예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합니다. 그 결과 그는 치한으로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2) 다윗은 많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사람들로 부터 칭찬을 받는다는 이유로 도망자의 신분이 됩니다. 그는 10 년여를 광야에서 이방에서 노숙자로 방랑을 하면서 살아 갑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억울함과 애매한 고난을 극복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는 지도자로, 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됩니다.

3)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주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십니다. 그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지 않으시고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주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든자들을 고치시고, 상처 받은자를 위로하시며,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그분이 이땅에서 하신 일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고난과 시련을 당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악한 사형 방법인 십자가형을 당하셨습니다.

요셉이, 다윗이, 욥이 애매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고 사랑을 믿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신다. 허락하신 일이다.’라고 믿었습니다. 

[벧전 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이사야서 53:7-9]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에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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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5:5-7]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 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 하나님은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와 허물]로 가득 찬 우리를 길이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자비로 받아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도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같은 뜻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봉사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살 소망이 끝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과 십자가를 생각하여 용서해야 합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도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고집이나 자만, 그리고 자존심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칭찬을 구하고 인정받기를 바란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로마서15:8-9]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할례는 언약의 표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표징인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오심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신 것입니다. 죄 많고 반역한 이스라엘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그 일을 수행하신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란에 있던 칠십오세의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창12:1]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시며 주신 약속입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바울은 구약성경에서 네 구절을 인용합니다(시 18:49, 신 32:43, 시 117:1, 사 11:10).

[신 32:43]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사 11:10]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모세의 글에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시가서를 통하여 하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고  예수님은‘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탄생하셨습니다. 육체적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습니다. 유대인은 거역하고 배반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구원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한 자매가 한 말입니다. “사람은 이적을 보고 싶어하고 신앙이 커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이적을 행하는 믿음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습니다. “ 내가 돈벌고 부자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직하게 사는 것이고 돈 때문에 교회의 일을 그르치지 않는 것이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감정보다도, 우리의 만족보다도, 우리의 부요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1) 스스로 고난을 취하시므로 예수님은 먼저 유대인을 받으셨습니다. 2)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유대인에게만 제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방인들까지 받으셨습니다.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 사랑이 없는 세상입니다. 상처받은 심령들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 부부가 서로 상처를 주고 친척이 상처를 주고, ○ 부모가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자녀가 부모에게 상처를 주고, ○ 교회 안에서 직장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여야 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이 땅에, 죄인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직접 내려 오셨던 것입니다. 영어에서 “이해하다”란 단어는, “understand”입니다. 이 단어는, ‘아래’라는 뜻의 under와, ‘서다’는 뜻의 stand가, 결합된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 아래에 서서, 바라보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위에 서서, 자꾸만 판단하고, 평가하려고만 들지 말고, 반대로, 상대의 아래에 서서, 눈 높이를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며 받아들이게 될 때, 모든 문제는, 순식간에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느 음악회- 한 가난한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팔을 휘두르며 열심히 지휘를 하느라 지휘자의 낡은 예복이 그만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지휘자는 한 곡이 끝나자 얼른 예복을 벗어버리고 셔츠 바람으로 지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때, 앞좌석에 앉아 있던 귀족 한 사람이 입고 있던 웃옷을 소리 없이 벗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웃옷을 벗었고, 그날 음악회가 감격적이고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남의 허물을 보고 탓하거나 조롱하기보다 감싸줄 수 있는 마음 아름답지 않습니까?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소망의 출발점은 기쁨과 평강에서 시작합니다. 새시대 새 가정, 새 교회를 열기를 원하십니까? 미움과 분열 다툼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과 용서와 하나됨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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