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2:1-12       <기도하는 교회 공동체>     2013.3. 10

[1] 헤롯대왕(B.C.37-4).

[2] 헤롯 안디바(B.C.3-A.D39) 세례요한 살해하였습니다. 빌라도가 보낸 예수 그리스도를 심문하였다. 유배지에서 죽었습니다.

[3] 헤롯 아그립바 1세(A.D.37-44)  기독교에 적대적이었고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4] 헤롯 아그립바 2세(A.D.50-100) 바울을 심문하였습니다.


[행12:1-4]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인데, 주후 10년경에 로마에서 태어났고  로마에서 양육을 받았고 주후 37년 티베리우스 가이사 황제가 서거하고 새 황제 칼리굴라가 등위할 때 유대의 분봉 왕이 됩니다. 주후 41년 칼리굴라 황제가 서거하고 글라우디오 황제가 등위함에 도운 공으로 전에 대 헤롯의 전 영토를 전부 영유하여 주후 44년까지 왕으로 통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기독교를 박해하였습니다. 먼저 야고보의 목을 베어 죽입니다. 교회는 헤롯의 폭력 앞에 무기력한 것처럼 보입니다. 헤롯은 이 일로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이제는 베드로까지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끝나면 그도 죽이려고 합니다.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아니라, 세베대의 아들 중 한 명으로 요한의 형제인 제자 야고보입니다. 원래 갈릴리의 어부였으나 예수의 부름 받은 제자로서 예수를 가장 가까이 동행한 제자였습니다. ○ 예수님은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에게 ' 보아너게 ', 즉 ' 우뢰의 아들 ' 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시기도 하셨다. ○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도 베드로, 요한과 함께 참예하였고, ○ 나사로를 살릴 때, ○ 그리고 변화산상에서 주님께서 변화하실 때, ○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따로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합께 있었습니다, 이런 야고보가 제자 중에 제일 먼저 순교를 당하였으니 주님의 일을 좀 더 하지 못하고 일찍 죽었으니 애석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 한때 야고보는 그의 형제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께 그의 나라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자신들에게 줄 것을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너희는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라는 답변을 주셨다. 이는 부활 후에 제자들이 순교의 잔과 고난의 세례를 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사도들 중에서 야고보가  처음으로 순교함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 스데반의 순교가 그리스도교 역사상 첫 순교였다면 야고보의 순교는 열두 사도 가운데 첫 번째 순교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야고보의 순교를 아주 짤막하게 기록했을 뿐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스데반의 죽음의 영향력보다 야고보의 죽음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기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과연 야고보의 죽음의 영향력이 스데반의 죽음에 비하여 영향력이 적었을까요? 진실로 예수의 사랑받은 제자 야고보의 죽음이 무의미한 허무한 죽음이었을까요?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왜 야고보인가?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의 죽음이 그가 믿음이 적어서도 아니고, 베드로를 구출하심이 그가 더 의로워서도 아닙니다. ○ 야고보가 헤롯에게 잡혔을 때도 교회는 그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교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것입니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  만을 보고 낙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 일찍이 사도행전8장에서 스데반의 죽음으로 - AD. 32년경에 -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있었습니다. 이 박해로 사도들 외에 많은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됩니다. 결과로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복음의 확산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왜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지속적으로 커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교회박해가 전반적인 박해가 아니라 군중들에 의한 부분적인 박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는 핍박을 받아 예루살렘을 떠나고 누구는 예루살렘에 남아 신앙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스데반의 순교가 1차 핍박이라 할 때 그 대상은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기를 바랐고, 율법을 지키는 限에 있어서는 기독교를 용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분파가 있었으니 하나는 율법을 여전히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유대파 기독교인]과 구약의 제사율법을 부정하는 [헬라파 기독교인]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7제자들의 이름을 자세히 보면 모두 헬라식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그들은 구약의 제사율법 준수하는 일을 거부하였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반면에 유대기독교인들은 [헬라파 기독교인]들을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좋은 것이 좋은 것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헬라어를 구사할 만한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선교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갈릴리 태생의 제자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안전하게 자신의 나라 안에서 율법을 지키며 신앙생활 하기를 원했습니다.

○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이제 기독교에 대한 국가적인 박해가 시작 되었습니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제2차 박해]는 헬라파 기독교인, 유대 기독교인을 가리지 않은 기독교에 대한 전반적인 박해였습니다. 첫 번째 순교의 제물로 잡힌 사람이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와 베드로였던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 핍박한 사람은 헤롯이었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없었더라면 세계 선교는 바울 이후로 왕성하게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고보를 위한 교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응답은 하나님은 세계 선교를 위여 야고보를 희생의 제물로 받으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셨으나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는 기도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바 된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아사셀이 생각납니다.


[레 16:8-10]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구속을 위하여서는 희생이 따르게 됨을 말합니다. 야고보를 죽인 사람은 실제로 헤롯이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의 아사셀 즉, 이방의 구속을 위하여 하나님은  야고보를 제물로 내어 주신 것입니다.


▶ 헤롯은 이제는 베드로도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작은 집에 모여 주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 중보의 삶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중보의 삶을 기뻐하십니다. 은혜이와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나에게 귀중한 사람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많은 것을 해 줄지라도 기도를 해주지 않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을 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여서 무슨 기도를 하겠습니까? 그들은 통성기도를 드렸습니다. 통성기도에 위력이 있습니다. 통성기도는 목소리가 하나된 것이 아니고 마음이 하나 되어 하는 기도입니다. 너와 나의 문제 다른 사람의 문제 모두의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내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묵상의 기도가 조용히 주님과 만남의 기도라면 통성기도는 강한 폭발력을 내는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온 몸으로 집중하여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행 12:6-7]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하나님의 때는 절묘합니다. 헤롯이 베드로를 잡아내어 죽이려고 한 전날 밤이라고 했습니다. 그 전에도 아니고 그 후도 아닙니다. 바로 그날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그 밤에 옥중에서 기적 일어난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신 것과 ○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과 ○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기독교를 황당한 미신처럼 여기고 “뻥이다. 거짓말이다. 사기이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죽은 후에 천국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하는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 베드로가 나와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행12:13-15]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그들은 지금까지 기도했으면서도 자기들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감옥입니다. 유월절에 헤롯이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죽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눅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나는 믿음이 보잘 것 없구나 생각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헤롯의 부귀영화가 극에 달하였는데 당시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에 대하여 노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2: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절에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두로와 시돈은 옛날부터 세계 곡물 무역을 하는 길목인데 그들이 헤롯의 비유를 거슬려 노엽게 한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곡물을 무역해야 하겠기에 헤롯과 국교가 단절되어서는 아니 되었던 입장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의 시종 블라스도를 설득시켜 헤롯에게 화평을 청했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날은 글라우디오 황제의 생일 축하경기가 8월 둘째 날에 있었다고 합니다. 헤롯은 은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귀빈석에 앉아 아침 햇빛을 받아 찬란하여 바라 볼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헤롯이 날을 정하여이 왕의 옷을 갖추어 입고 왕좌에 앉아 그들에게 (효유)연설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신이라고 했습니다. * 효유: 널리 알리다


[사도행전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죽음은 야고보가 순교한 그해 AD 44년, 헤롯은 잔인하여 의인의 피를 흘리게 한 큰 죄를 지었을 뿐 아니라 헤롯에게는 그보다 더 큰 죄가 있으니 곧 신으로 찬미를 받은 죄입니다. 교회는 다시 평화를 찾았습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