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2:1-7   <생명나무의 열매>     2014. 2. 2

세상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처음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징벌을 받기 전에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중한지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이 죄를 자랑하고 부끄러움 없이 말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의 법을 가지고 우리가 죄인이다 아니다. 말하지 않습니다. 가인이 지은 살인처럼 강도 도둑질처럼 모든 죄에 눈에 보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혹자는 늘 묻지요. “왜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었느냐고‥” ◯금하는 것 없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먹으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요한일서 2:15-]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누가 이런 것을 죄라고 생각하겠습니까? ◯ 하나님이 주신 계명 중에는 솔직히 왜 지켜야 되는지 모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 굽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은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 ◯ 모든 죄가 살인, 강도, 도둑질처럼 죄인인지 아닌지 쉽게 구분되고, 모든 사람 앞에 분명히 드러난다면 죄를 두려워하고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겠지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는 그 열매를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 열매가 얼마나 독하여 사람을 죽게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선악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단은 늘 우리의 죄를 너무 가볍게 여겨 그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많은 죄라는 놈은 내 속에서 나의 약점을 노리고 슬며시 다가오기 때문에 죄는 자각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 열매는 잠깐 동안 안목의 정욕을 만족시키지만 결국에는 나의 영혼을 갉아먹어 버립니다.

◯오늘날 우리의 주위에는 너무나 많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보지 말아야 할 것, 먹지 말아야 할 것, 만지지 말아야 할 것들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계명을 범하며 지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3-4]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 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말합니다. 죄를 범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죽음에 버려지지 않도록 하시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계명은 율법입니다. 우리는 율법과 계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 앞에서의 계명을 지키라 하십니까? 우리는 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까? ◯계명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 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알 수 있는 표지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니골라 당]이 있었는데, 골라당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구태여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입니다. 죄에 대한 감각상실을 상실한 사람들 죄를 용서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니골라 당을 미워했다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니골라 당 사람을 닮아갔습니다.

◯지금은 죄라는 말을 싫어하고 부정하는 시대입니다. ‘잘 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잘 못된 것은 죄라고 말하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말합니다. 모든 것이 상대화 되었습니다. 모든 죄에 대하여 늘 그럴 수 있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적인 원인을 말하고, 죄를 권하는 시대입니다.

● 안식일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 꼭 교회에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일 주일 내내 교회에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입니다.

● 헌금이 있으면 내고 없으면 말고, 남는 돈으로, 남는 시간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를 사하시는 분, ‘예수이름으로’ 회개만 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언제든지 용서해 주시는 분. (자동판매기에 동전만 넣으면 커피가 나오듯) 그러면서 자신은 고치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되풀이해서 죄를 짓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말하면서 자신의 죄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는 [요일3:4]에 불법이라고 했습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율법이나 세상 법률이나 영어로는 똑같이 [Law]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요한에게 에베소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사자에게 보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입니다. 교회를 다스리시고 살피시는 주님이십니다. ◯천사는“처음 사랑을 회복하라!”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열심히 식은 것에 대한 책망입니다. ◯사람들이 죄에 대한 부끄러움도 미움도 없으면서 입으로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하는 일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입으로 고백하면 언제든지 용서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기도 속에는 통한의 마음, 부끄러움의 눈물도 없습니다. ◯주문처럼 늘 "하나님,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말하지만 죄에 대한 고침에 노력도 아픔도 사라졌습니다. 그저 죄인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추어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이러한 고백은 진정한 죄의 고백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가슴을 치는 회개와 용서를 구하여야 합니다.

[시 51:7-10]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누가복음 7:36-]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인 시몬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 고을에서 이름난 죄인인 한 여자가 나타나,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습니다. 절대 善 자체이신 예수님이 당신 발아래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향유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는 죄 많은 여인의 모습 속에서, 여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진정한 고백이란 고쳐지지 않는 나의 죄성들, ◯ 눈물도 분노도 아픔도 없는 말라 비틀려진 나의 감정들 ◯ 사랑할 줄 모르고, 거짓과 미움 시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신, 고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는 습관들에 대한 아픈 고백입니다. 본디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말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 죄 고백이란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통회하는’ 이라는 말은 참회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가슴 저미게 슬퍼하고 깊이 후회하는 마음입니다.

 뉘우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유다가 죄를 뉘우쳤으나) 탕자의 비유에서 아들은(눅15:17) “이에 돌이켜”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은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부끄러워하고 단호히 결단하려는 마음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 옛날 평양신학교에 최봉석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키가 작고 얽은 얼굴에 집도 가난했습니다. 그는 기도만 했다하면 울었습니다. 학생들은 그를 향해 "하나님이 죽었냐. 울기는 왜 우냐. 시끄러워 공부를 못하겠다."고 불평을 늘어놨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에게 시비를 걸진 않았습니다. 스스로 못나서 우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봉석은 졸업설교 단상에서 간증했습니다. "기도하려고 눈만 감으면 일본에 빼앗긴 우리나라가 불쌍해서, 예수 믿지 않는 내 동족이 안타까워서 자꾸 눈물이 나온다." 그의 눈물은 신세타령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눈물 기도를 통해 성령과 능력을 받아 평생 70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최고의 영성의 기도는 자기 죄와 연약함 때문에 우는 기도입니다. 이집트의 수도사 팜보가 어느 날 사막을 떠나 알렉산드리아에 가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 갔을 때 그는 길거리에서 술 마시며 춤추는 여배우를 보았습니다. 그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들이 왜 우느냐고 물었을 때 팜보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운다네. 하나는 저 여인의 영혼 때문에 울고 다른 하나는 저 여인이 악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도 저렇게 애쓰는데 나는 선하신 하나님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애쓰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이 슬퍼서 운다네‥”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셨습니다(눅19:41).진실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늘의 위로가 저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5:4). 하셨습니다.

◯ 나라를 위한 눈물, ◯ 교회를 위한 눈물, ◯ 용서의 눈물, ◯ 중보의 눈물들이 모여 사랑의 샘을 이룹니다. ◯ 방황하는 자녀를 위해, ◯ 깊은 타락으로 치닫고 있는 이 땅의 청소년을 위해, ◯ 거짓과 불법으로 오염된 이 민족을 위해, ◯ 경제난으로 절망하는 백성들을 위해, ◯ 하나님을 모르는 이웃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이런 눈물이 이 땅을 살리는 생명의 강물인 것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계 22:1-2]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이제 다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 우리는 생명나무 열매를 바라보는 사람이 생명나무 열매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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