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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17:7-14 <성전을 세우는 자>
역대상17:7-14 <성전을 세우는 자> 2014. 1. 26
[역대상17:1b]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
다윗의 성전건축은 아주 동기가 선하였습니다. 어떻게 그 마음이 선한 동기임을 알 수 있을까요? ● 지난 시간 말씀에 [히스기야] 왕을 생각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왕국을 회복하는데 힘을 다했습니다. 누구나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였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자신의 영화와 업적]을 드러내는 데 있었습니다. ◯나의 이익을 취하고, 주의 일에 나의 영광을 취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럇여아림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올 때 그의 아랫도리가 내려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의 아내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맞으며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 우리에게 다윗의 마음이 있습니까? ◯ 다윗은 어리석고 무식한 블레셋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능멸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 다윗이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어진 화려한 궁에서 편히 사는 자신을 생각하니‥‥ 하나님의 언약궤가 장막에 있고 둘만한 성전이 없다는 것이 한없이 송구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고 싶었습니다. ◯ 다윗은 어찌하면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을까? 이것만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이 ◯ 감사의 마음, ◯ 은혜 갚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 사마리아성의 4명 문둥이는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생각하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밉고 억울하고 분했지만 성읍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했습니다.
◈ [요한복음 2장]에는 주님이 장사치들로 넘치는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켰다' 했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분노입니다.
◈ 이 땅의 교회가 손가락질을 당하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풍성함을 알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며 사는 것이 화가 나지 않습니까? 제 자신이 욕먹는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사랑하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런 말을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물론 나단 선지자도 성전을 지어드리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왕을 사랑하시니까 성전을 짓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아무 걱정하지 말고 성전을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어야겠다고 했던 날 밤 하나님께서는 나단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에게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보통 교회에서 사람들은 선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교회의 노인들을 위한 무료 식사는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큰 교회에서 내 교회 재정이 있으니 이웃의 어려운 교회야 죽든 말든 부페로 최고의 대접을 하고 수 백 만원의 관광을 시켜드리고‥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 물론 예배당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예배당이 작으면 불편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모도 있어야 합니다. ◯ 그러나 작금의 한국의 많은 교회는 어떤 교회는 재개발 때문에 의도하지 않게 은행대출을 받아 교회를 건축하기도 했지만, 어떤 교회는 외형으로 교회당을 크게 화려하게 지으면 사람은 모인다. 라는 논리로 무리한 대출을 받아 교회당을 짓고, 이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 과거에 많은 목회자들이나 장로님들이 교회건축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사람은 몇 사람만 되어도 교회당 건축은 최고로 아름답게 지으려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중국에도 있습니다.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데 교회당만은 어떻게든 크게 지으려 합니다. 그 결과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멀리 아버지를 뵈러 가면 저의 아버지는 늘 ‘다 늙어서 무엇을 하겠는가? 남에게 짐만 될 뿐이다.’ 자식 마음 상하라고 아픈 소리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어 내는 것보다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위인이 없다 하셨습니다.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성전 건축을 거절하셨지만, 그의 마음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4절]에 다윗을‘내 종 다윗’이라 했고, 그리고 다윗도 [17절]에‘종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촌부의 아들로 목동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을 [존귀한 자]같이 여기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르게 해주시고, ◯인생 여정의 매 순간마다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지켜주시고 보살펴주신 하나님, ◯다윗은 자기가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 자기의 지혜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왕의 신분이지만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여호와의 [종]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 다윗이 자신을 종이라 칭하는 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닌 자기 평생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겠다는 고백이자 낮아짐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젊은 혈기에 기고만장하여 교회를 핍박하여, 다메섹까지 찾아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던 사울이었습니다. 불의를 보면 용서할 줄 몰랐고, 자신의 주위 사람들에게 완전함을 추구하던 사울이었습니다. 그렇게 잘난 줄 알고 교만한 사울을 인내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고, 일꾼 삼으신 하나님 앞에 그는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정복 전쟁으로 인하여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어도 그 마음을 받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여러분에게 “너는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하신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 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 일어난 일 아닙니까? 뭐 그런 것까지 들추어 낼 것이 무엇입니까? 불평 할만도 하지요? ◯나단의 말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두말없이 순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장 낮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중국말로 小人입니다. 작은아이입니다 ◯ 종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종은 자신의 감정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종에게 중요한 것은 주인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종은 자신이 사람에게든 하나님 앞에서든 인정을 받고 안 받고 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 모세가 죽도록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 속에 광야의 목마름과 거친 땅, 적들의 위협을 통과하여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모세에게 지난날의 모든 허물을 용서한다. 내가 너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해주겠다.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지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가 살아있는 동안 그는 자신의 아내를 묻을 한 뼘의 땅도 없었습니다.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였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처럼 집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온 땅이 하나님의 침대요 온 하늘의 별이 하나님의 이불입니다. 우주라도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에는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을 생각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생각한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삼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대상 17:7-8] 내가 너를 목동 곧 양 떼를 따라 다니던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이 말씀은 하나님이 대적을 멸하실 때 하나님이 있는 곳에 다윗 네가 함께 하여서 고맙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하나님은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대상 17:9-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는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또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지라.
▶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라고 했습니다. 잠간 잠간의 늘 불안한 평화와는 달리 다윗 시대에는 보다 영속적이고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을 약속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끝임 없는 외적의 불안과 반역의 불안 속에 하루 하루를 살았습니다. 이제는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하십니다. ◯ 사사를 명하여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여기‘사사’라 함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사울이 왕이 되기 전까지 왕이 없던 시대에 백성의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인데, 신정국가시대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자주 무정부 상태에 이르기도 했고, 주변 외적의 빈번한 침입으로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 다윗에게도 사울왕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적인 통치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 거기에 자자손손의 복도 말씀하셨습니다.
[역대상 17:11-12] 네 수한이 차서 네가 열조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이 말씀은 ◯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솔로몬이 짓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까지 축복하사 그 위가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 저는 이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비의 마음으로 자식들을 볼 때 참 한심하고 답답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다윗 아비가 어찌하면 아들에게 어떤 복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자식이 복을 받고 안 받고는 아비에게 달려 있구나!’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 이 말씀은 예표의 말씀입니다. ◯ 당시 다윗 왕에게는 1차적으로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리라는 말씀이지만 종말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한 성전 완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 16:17]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마태복음에서 주 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 ◯ 마지막의 시대에 하나님의 계획하신 성전은 외형적인 성전이 아닙니다. ◯ 하나님은 우리 안에 마음의 성전을 건축하기를 원하셨습니다. ◯ 하나님은 내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내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거하시는 성전을 사랑하고 거룩하게 해야합니다. 그리고 지체된 작은 성전들이 모여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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