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34:14-21   <성전을 정결하게>    2014. 2. 16

우리는 누구나 교회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 말합니다. 교회가 소망이다.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교회가 소망을 상실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부끄럽게도 많은 개신교 지도자들이 돈 문제, 여자문제로 세인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며, 교회를 사유화하고 세습까지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 이후로 교회는 교회사를 통해 볼 때 교회는 끊임없이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또 그 때마다 새로운 개혁운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개혁이고 교회는 개혁함으로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 요시야왕은 여덟 살에 남쪽 유다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대하 34:3-4]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팔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십 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 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 팔년 곧 (16세)에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1) 산당과 아세라 목상과 바알의 단을 훼파했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끈질기게 [산당]을 찾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역대의 왕들은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일까요?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이 없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으로 쓰이던 곳이 결국 바알 신을 경배하는 장소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산당은 백성들의 마음의 안식처요 의지하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백성은 그저 그렇게 있고 싶어 했습니다.


※ 바알은 가나안과 중동 지역의 토착 신앙으로 천둥번개를 다스리는 농경의 신, 풍요의 신입니다. 바알은 곡물 과실 가축의 결실 및 성장을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었고, 황소가 바알을 나타내는 그 상징물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 신과 야훼 하나님의 신앙을 같은 신으로 혼동하여 자신들의 이름에 바알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사용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북 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며 만든 것이 금송아지 像이었던 것입니다.

◯ 참다운 가르침이 없었고, 멀리 예루살렘까지 가는 불편을 감내하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산당에서 인간 본연의 욕심을 만족시켜주는) 神으로 바알아세라를 찾는 것이 좋았습니다. 결국 산당예배는 처음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서 변질되어 여호와 하나님은 가나안의 신과 다르지 않은 神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신이 오늘날로 말하면 무슨 神이겠습니까? 바로 맘몬신입니다. 황금만능주의입니다. 

● 마더 테레사는 “물질이 우리의 주인이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은 참으로 빈곤해집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말했습니다.


(2)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18년(26세)에는 히스기야 왕 시대에 성전을 깨끗케 하고 그 후로는 성전을 돌보지 않던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이 수리하여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대하 34:11]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 하는 구절을 보면 이전의 왕들이 이방 종교를 받아들이면서 여호와의 성전이 얼마나 크게 훼손되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성전 수리는 단지 낡은 건물을 손질하는 정도가 아니라, 본래의 모습대로 되돌리는 대대적인 수리였습니다.

●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요시야 개혁의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제사장 힐기야는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사반은 요시야 왕에게 가지고 나와서 그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시야 왕은 자기 옷을 찢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귀중한 유산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기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요시야 왕은 그 말씀을 진지하게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의 출발입니다. 성경에 보면 똑같은 복음의 말씀을 전했는데 사람에 따라 두 가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7:52-]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

◯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어찌할꼬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마이동풍(馬耳東風) 격으로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립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마 24:38-39]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어떤 사람이 "제 5복음서"가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신약 성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가 아닌 사람들이 만든 복음서를 제5복음서가 있어 폭팔적인 인기를 누리며, 염가로, 대량으로 유포하는 복음이라고 합니다. 먼저, 예를 든다면, [눅12:32절]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을 즐겨 설교하고 듣지만, 그 다음 [33절] 말씀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고 하신 말씀은 듣지 않아도 된다. 하는 제5복음이 마음속에 따로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예는, [마 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관해서는 듣기를 좋아하지만 [29절]의 "나의 멍에를 매라"는 말씀은 그리 중요한 말씀이 아라는 것입니다. 어떤 성경말씀은 쓰여 있는 말씀에 불과하며,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자신과는 무관하고 얼마든지 따르지 않을 이유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현대인들의 "제 5복음서"라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그 책을 읽은 후 여 선지자 훌다에게 사람들을 보내는데 이는 과연 자신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자신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알지 못하였고, 준행치 않았,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 이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각심이 개혁의 출발점입니다.

[대하 34:25]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행위로 나의 노여움을 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여움을 이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히 10:24-27]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 개혁을 촉구하는 원동력이 되는 말씀은 심판입니다. 그 심판이 축복의 자리일 수도 있고 저주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크심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가볍게 듣지 못할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경청하였습니다.


◯ 요시야왕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진정한 개혁을 시작하였습니다. ◯ 진정 용기 있는 신앙은 먼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과감히 고치는 것입니다.

[대하 34:29-30]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예루살렘 거민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모든 백성이 무론노소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대하34:31]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여선지자 훌다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확실히 알게 된 요시야 왕은 모든 예루살렘의 거민을 불러 모아 그 내용을 알리고 온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을 세우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은 이 언약의 말씀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마음의 개혁 이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 지금 우리에게는 교회개혁 외에 또 한 가지의 개혁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나태해 지고 둔감해져서, 구하지 아니하고, 읽지 아니하고, 배우지 아니하고, 드리지 아니하는 우리 마음의 성전입니다. ◯ 하나님의 구원의 관심은 ‘나’입니다. 교회가 100개 10000개 고쳐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을 성전 삼기를 원하셨습니다. 교회의 개혁은 나의 구원, 나의 변화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혁을 거부한 채 교회의 개혁을 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 성경은 영혼의 거울과 같습니다. 성경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왜 성경을 읽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하여서입니다. 지식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여, 묻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성전은 말씀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말씀을 새롭게 발견하고 느끼는 감동이 없이는 개혁이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마음의 성전을 진정 소제하고 수리하기를 원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외적인 성전의 수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우리 각 사람의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아름다운 성전이 되기를 원하시고 원하십니다.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영국의 영적부흥의 중심자 Lewis 섬에 부흥의 열기가 식어지면서 젊은이들은 믿음을 버리고 타락과 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고 합니다. 교회는 젊은이들을 붙잡는데 무기력했고, 사회는 전반적으로 복음에 무관심하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몇몇 교회들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갈망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시 부흥을 보내 주십사 기도하였는데 그중에 누구보다도 80이 넘은 두 할머니인 PeggyChristine Smith 는 오두막집에서 하나님께 이 섬에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였답니다. 한명은 관절염 장애가 있어 잘 움직일 수 없었고, 그 동생은 앞을 잘 볼 수 없는 시작장애자였습니다. 두 노인 자매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사44:3)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고, 노인들의 계속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1949년 유명한 부흥사 던칸 캠밸목사를 루이스 섬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Lewis 섬은 다시 한 번 큰 부흥의 불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바로 이 부흥은 두 할머니의 중보기도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연구⌟ 윌리엄 헨드릭스는 ‘이탈자 인터뷰’에서 상처 받고 환멸을 느껴 교회를 떠났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영적 성장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말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힘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는 이 사실을 잘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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