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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1:2-11 <누구를 기다리오리이까>
마태복음11:2-11 <누구를 기다리오리이까?> 2014. 3. 2
[말라기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말라기서에서 말하는 선지자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예수님이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세례요한은 나실인으로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가정을 꾸린 적도 없고 세상에 낙을 찾아 누리는 생활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① 세례요한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 예수를 메시아로 소개하면서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했습니다.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다."◯"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 자신을 마음을 표현하기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② 그는 철저히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 헤롯과 헤로디아 앞에서 “당신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은 잘 못된 것이다.” 말하고, 이제 세례 요한은 감옥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사람을 보내어 묻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한 위대한 선지자가 감옥에서 심신이 쇠약해지고, 죽음이 두려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는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위하여서라면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자신의 한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일생의 꿈은 이스라엘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습니다.
◯ 그런데 주님이 오시었으나 [도래할 나라]는 세례요한이 그토록 외쳤던 천국이 오지 않았습니다. ◯ 이스라엘 땅에는 여전히 불의, 거짓, 억울한 죽음, 질병, 고통, 가난, 억압은 전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오리라 말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 세례요한의 실망과 좌절감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심판주로서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본 예수는 너무 무기력해 보였습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으로 낙인찍힌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 그들 속에 둘러싸여 이스라엘을 한 귀퉁이에서 시간을 낭비하며 지나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관계가 없는 연약한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례요한의 실망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 안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날 한국 교회에도 몰려왔던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과 도움을 구하여 몰려왔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극장에 가기도 쉽지 않고, 즐거운 놀이문화도 별로 없던 시대에 ◯ 사람을 보기 위하여 나오고, ◯ 수련회 때만 나오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혹시나 하나님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할까? ◯ 아니면 질병을 고칠 수 있을까? 각종 이적과 신유를 기대하여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 그러한 세상의 욕망으로 가득 찬 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물러갔습니다. 왜 떠난 것입니까? “별 볼 일 없다는 것입니다.” ◯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이루기 위하여 나오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당장 나의 문제, 나의 목적을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모른 채 실망하여 넘어지고 떠나갑니다. 同床異夢이란 말이 있습니다. “같은 잠자리에서 잠을 자면서도 다른 꿈을 꾼다.”는 뜻입니다.
◯ 세례요한이 유대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 말씀을 선포하니,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서편에서 다 그에게로 몰려 왔다’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에게로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다 그렇게 순수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 무리들 중에는 호기심에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 그들 중에는 바리새인들의 앞잡이로 요한의 정체를 탐색하려고 왔던 정탐꾼도 있었습니다.
그들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렸는데, ◯ 그들이 바란 하나님의 왕국은 물질적인 풍요와 힘을 가지고 열방을 지배하는 강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습니다. ◯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손으로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가 오시면 열방들이 이스라엘에 복속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 메시야가 오시면 이스라엘은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여 솔로몬이 지었던 세상의 가장 좋은 나무 백향목 궁을 짓고 열방이 조공으로 금 향료 보석을 실어 올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언뜻 듣기에 세례요한이 기다린 [하나님의 나라]는 정처 없이 떠도는 무리들이 구하는 배부름보다 훨씬 애국적이요 이타적이요 고상한 목적처럼 들려집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세히 보면 이스라엘 무리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세속적인 힘과 지배력을 갖기를 원한 것과 똑같이 세례요한의 하나님의 나라도 세속적인 힘과 지배력를 갖기를 바란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 그들이 바라던 것은 모두 이 땅에서의 힘과 풍요 지배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실망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예수님을 찾아온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답변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구약의 성경말씀 그대로였습니다.
[마 11:4-5]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세례요한이 이 모든 기적과 예수님의 선행의 소식을 모를 리 없습니다. 세례요한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이라고 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 예수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적을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라면 왜 왕이 되지 않는가? 왜 새 시대를 꿈꾸고 실현하지 않는가? 우리의 기다리던 메시아가 정말 당신이라면 지금 이곳에 메시아 왕국 건설을 해야지 어찌 시골구석에서 몇 사람의 환자와 가난한 자 몇 사람에 관심을 두시는가? 그래서 그는 묻습니다. 당신이 정말 오실 메시아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시었습니다. 주님이 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주님은 아마 이렇게 말씀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지금 현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고 이미 시작되었으며 복음이 전파되어지고 있다. 비록 그것이 네 성에 차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시작되어지고 있단다.
[눅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마 13:31-32]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내 안에서 시작되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 하나님이 거하시고 ◯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고 ◯ 하나님의 통지권이 이루어지는 겨자씨와 같이 아주 작은 작은 곳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 지난주에 인사했던 대련에서 오셔서 인사드린 부부 전도사님은 심양에서 대련으로 이사해 가서 주님이 주인 되시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 생명 얻을 아름다운 교회를 대련에 세우는데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장차 그 교회는 크게 자라나 대련의 많은 교회에 모범이 되고 많은 생명을 살리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 저는 나름으로 심양에 장시간 거주하면서 작지만 주님이 다스리시고 기뻐하시는 작은 교회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장차 그 교회는 심양의 많은 교회에 모범이 되고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 세례요한도 그를 따르던 많은 무리도 내 손 안에 쥐어진 [힘과 풍요와 지배력]을 원했습니다. ◯ 아마 우리 안에 많은 사람들도 내 교회의 힘과 지배력과 풍요를 얻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재정적으로나 인원수에서 든든하고 안정된 교회를 간절히 소망할 것입니다. ◯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 하나님의 나라는 내 안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모든 [축복의 근원]이요 [힘이신 것]을 알리기를 원하셨고 주인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무엇을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무엇을 하리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내게 물질적인 이 땅에서의 힘과 풍요와 지배력을 내게 주는 것이 아닌 하나님 자신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실화입니다. 미국으로 가는 정기선박 한 대가 영국의 항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 배엔 많은 노인들과 여자들, 어린 아이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쟁과는 거리가 먼 승객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이니 만큼 그 항해는 매우 위험스런 모험이었고 그 누구도 그들의 안전한 여행은 보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배의 선장은 출항한지 얼마 후에 행방을 알 수 없는 어떤 배로부터 다음과 같은 은밀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 항로를 벗어나지 말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라 옆으로 빗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 하라. 도움이 필요할 땐 다음의 코드로 무선통신을 보내라." 선장은 다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먼 바다에 적군의 순양함이 나타났습니다. 선장은 자기만 알고 있는 코드로 급히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곧장 앞으로 나아가라. 우리가 옆에서 너희를 돕고 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아도 그 친절한 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선장은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곧장 앞으로만 나아갔습니다. 적의 순양함은 분명 이 정기선을 보았고 이 배를 쳐서 빼앗으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지만 어찌된 까닭인지 오히려 도망치듯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 몇 번이고 선장은 적의 군함들이 나타나 위급할 때마다 도움을 요청을 했고 마침내 그 배는 무사히 목적하던 항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장은 갑판에 올라가서 지나온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 바다 밑에서부터 커다란 위풍당당한 위용 영국군 잠수함이 올라오는 것이 아닙니까! 선장은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적의 군함이 나타나 위급할 때 구조 요청을 보내면 바다 밑의 잠수함에서는 적의 군함에 경고를 보냈습니다. '이 배를 건드리지 말라. 이 배에 가까이 오면 너희를 완전히 박살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배에서 멀리 떠나라!' 그 잠수함은 비록 물속에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줄곧 정기선을 따라 오면서 언제든지 도와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기에 다른 적들이 감히 공격해 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하나님은 잠수함처럼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자녀 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비록 그 분을 볼 수 없다 할지라도 그 분은 언제나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우리를 지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이 먼저입니까? 나의 힘과 지배력입니까? 하나님의 힘과 지배력입니까? ◯ 우리를 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 구원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 생각이 많은 사람을 우리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하나는 생각을 많이 가진 사람이란 thinker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 많은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주변을 돌아보고 뒤를 돌아보고 고려하고, 염려하고,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그저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의 생각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 또 하나는 꿈이 많은 사람은 dreamer입니다. 자기 소망, 자신의 만족, 자신의 성취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 나의 작은 힘과 생각과 재능과 꿈을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행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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