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1-5   <비판하지 말라>     2014. 2. 23

때때로 관악산에 갑니다. 산 정상의 바위에 올라가면 온 시내가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데 어떤 사람이 서울 전경을 보면서“참 지저분하고 복잡하다. 이런데서 우리가 살고 있다니!”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소리가 별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제 눈에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도시입니다. 저는 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한 눈에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요! 제가 외국에 있다 와서 그런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안경을 통해서 사물을 봅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합니다. 파란 글라스의 안경을 한 사람은 세상이 파랗게, 갈색의 안경알을 한 사람은 갈색의 세상으로 보일 것입니다.

[마태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신앙인은 모든 일에 판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판단하는 일이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올바른 비판, 창조적인 비판, 서로의 성숙을 위한 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 만약에 어린아이에게 어떤 어른이 접근하여 아이스크림을 사 줄 테니 따라오라고 한다고 따라가면 큰일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유괴범인지를 분별하여 판단을 해야 합니다. ◯ 정치에 대한 바른 비판이 없으면 김일성과 김정일과 같은 독재자가 나오고, 일본과 같이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를 모르는 ⌜집단의 악⌟에 빠지고 말게 됩니다.

◯ 오늘날 우리나라는 서로 서로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끝없는 갈등의 골이 만들어지는 원인은 사람들이 [올바른 비판]의 태도를 갖지 못한 까닭입니다. 사람들이 나라를 위한다. 너를 위한다. 비판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의 입장에서, 이기적인 욕망에서, 남을 비난하고 깍아내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1. 판단하기 전에 자신의 들보를 빼라 먼저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3-5]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저는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얼마나 그 표현이 재미있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눈에 이렇게 큰 들보를 담아두고서 남의 눈에 “야 네 눈에 티가 있다.”말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의 눈에 다른 사람들에게 허물이 보일지라도 먼저 나의 잘못부터 점검하고 고치는 겸손한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내가 읽고, 깨닫고, 사람 되고, 구원 받으라고 있는 것이지 잘 배워서 남을 가르치고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가려내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그의 묵상집에서, 죄를 아는 지식 즉 분별력과 판단력은 결코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되며, 오직 자신을 꼼꼼히 살피는 데 써야 한다고 말하면서, 결점을 잡아 낼 목적으로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결국 자기 파괴를 초래하고 만다고 우리들에게 경고했습니다.


네 눈 속에 들보를 빼라는 것은 눈 속에 미움을 빼고, 눈 속에 탐욕을 빼고, 세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상처를 치료하고 볼 때 세상과 이웃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易地思之[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지(處地)를 서로 바꾸어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주님은 우리의 입장에서 아픔을 같이 하려 도성인신(道成人身)하시었습니다. ◯아내가 다리를 다치고 나서 거리를 다니는데 온 세상에 왜 그리 다리를 다친 사람이 많은지 놀랐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뒤에 세상을 보니 세상에 뇌경색 뇌졸중을 당한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새삼 알았습니다. 그 입장이 되어보니 그 사람을 알겠더라. 는 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에 의해 세상을 보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나와 같지 않음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처음 주일 학교을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 중에 한 아이가 말을 듣지도 집중하지도 않고 끝없이 장난치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아이가 다 있나 차라라 안 나왔으면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한 영혼을 아끼는 마음으로 학생을 앞세워 사는 집을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고아원이었습니다.

◯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하여 명확한 지식이 없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없이, 너무 쉽게 비판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지 못한 말들, 부주의한 말 한 마디로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것을 봅니다. 말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말의 위력이 참 엄청납니다. 저는 요즈음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 깊이 생각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하였습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재능이 많으면 무엇 합니까? ◯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시 주어 담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전 해수부 [윤진숙 장관]의 인성에 대해서 세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전형적인 이공계 연구원 출신에다, 연구원 시절의 평이나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한 경력을 보면 평균 이상의 업무추진력과 성실함이라는 장점을 가졌다고 추측됩니다. 그리고 그다지 약삭빠르거나 음흉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 한마디 잘못해서 옷을 벗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최대의 피해자는 정유회사라고 말했다든지 기름유출 현장에서 표정관리를 하지 못한 것들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도중에 눈물을 흘리며 낙마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말 잘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항상 상냥하게, 다른 사람의 마음 상하지 않게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데 말하고 나서 후회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벧후 2:11-12]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우리는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합니다. 쉽사리 정죄합니다. 누구나 내가 하고 싶은 소리 이말 저말 가리지 않고 다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혼란한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불의한 사람이라고 비판하고, 내게 손해를 끼친 사람이라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미워한다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우리는 너를 이해하고, 너를 불쌍히 여기고, 너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락교회는 큰 교회입니다. 한경직 목사님 때 교회 안에서 혹은 밖에서 목사님에게 이런 의견 저런 의견이 많이 올라왔지만 한경직 목사님은 한 번도‘아니오.’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답니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들을 때면 이렇게 말했답니다.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기다려도, 기다려도 응답이 없는데, 그 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아! 그 대답은 사실 아니오. 라는 말이었구나!’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바른 말을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그에게 말해 줄 때는 충고라고 말해주는데 듣는 사람 측에서는 곧잘 비판으로 듣게 될 때가 많습니다. ◯언어란 우리의 진심을 담아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매우 큰 한계를 가진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도 때로는 말 한마디 때문에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되풀이 되는 농담이 진담으로 들려질 때가 있고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10번의 사랑의 말과 행동이 있고 나서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말이 충고의 말입니다. 이런 충고의 말조차도 10배 20배의 비난을 각오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임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한 부부가 직장 동료의 집에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몇몇 부부가 참여하였습니다. 식사 후 대화는 뜨거워졌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미국의 남북전쟁에 대하여 링컨 대통령에 대하여 말하는 데 18대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중간에 말을 자르며 말합니다. 링컨은 16대 대통령이거든요. 그러자 그 사람 화를 내며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단호하게 18대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남편이 식탁 밑으로 아내의 발을 건드리며 말을 자제 시켰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말하였습니다. 왜 그 사람을 그런 자리에서 면박을 주어 무지를 밝히어야 하는 것인가? 그가 16대 대통령이건 18대 대통령이건 뭐 그리 중요하고 내게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갈라디아서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온유한 심령으로 다른 사람을 바로 잡아 주라는 말씀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할 때에 상대방을 배려해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비판을 할 때에 ‘나도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남을 비판하면 비판을 받게 됩니다. 남을 정죄하면 정죄를 받습니다. 비판하기보다는 사랑하고 격려하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허물을 덮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중함으로 말을 가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비판은 사람이 거만 완고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태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다른 제자들은 그의 집에 들어가기를 꺼렸을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몹시 꺼렸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마태는 모든 사람에게 지탄 받는 세리였습니다. 그런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도 한 자리 생각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예수님 면전에서 나는 저를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을 사람들은 믿음의 선조라 생각합니다. 100세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이 있어 아들 독자 이삭을 얻었고, 또 그 아들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제사로 드리라 말씀을 들었을 때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리실 것을 믿어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입니다. 과연 그가 처음부터 그런 큰 믿음의 소유자였을까요?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여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보내어 잠자리에까지 들어가게 한 비정한 지아비였습니다.

저는 한국의 역사 속에서 위대한 인물이다 평가받고, 국가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개인의 욕망에 의하여 나라를 좀먹고 매국적인 행위로 이중적인 행태를 보여 온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겉으로는 의롭고 선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속은 시커매 나라를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 한경직 목사님도 종교인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탬플턴 상을 탔지만은 자신의 평생에 후회스런 짓은 신사참배에 데 동조하여 가만히 있었다고 죄를 털어 놓았습니다. ◯ 천주교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김수환추기경은 1944년 일본군 장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강제징집이 아닌, 지원입대였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과연 누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의를 말할 수 있고 의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 부끄럽고 부끄러운 존재들일 뿐입니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행 10:14-15]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사람은 모두 부끄러운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이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셨습니다.

◯ 온전한 심판과 판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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