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42:1-6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2014. 4. 20

 

○ 아브라함은 자손이 번성하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기근을 피하여 애굽까지 가야하는 절망의 긴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절망의 터널을 다 지나고 마침내 아들 이삭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한 것이 4백여 년입니다. 그 동안 그들은 말할 수 없는 큰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 너무나 오랜 시간의 고난을 당하면서 그 고난의 짐을 벗으리라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애굽에서의 4백년은 너무나 긴 절망의 시기였습니다. ○ 모세와 함께 그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넜지만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까지 또 다시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절망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 사람들의 고통은 생각지 않은 때에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평생의 꿈을 잃고 마음 아파합니까? ○ 벼랑 끝에 선 것이 무슨 축복입니까? 그건 재앙이 아닙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앙을 주십니까? ○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매질할 때, 아이들은 울며불며 속으로 말합니다. '엄마, 아빠, 미워!' '날 사랑하면 왜 이렇게 때리는 거야?' '나를 미워하는가 보다.' 할 때도 있습니다. ○ 더 당황스러운 일은 하나님이 자녀들을 때리실 때, 자녀들은 자신이 왜 매를 맞고 있는지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무고한 매를 맞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일이 우연히, 재수 없이 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격은 고난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기근으로 애굽 땅까지 가야했던 아브라함을 절망하게 한 분도 하나님이시며, ○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하도록 내버려두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 범죄한 백성을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 독생자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는 고난을 피하려 하였지만,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의 구덩이에 빠지게 하시고, 길고 긴 시간을 내버려 두십니다.

 

◉ 욥이 죽음의 문턱에 섰습니다. 재산은 사라지고 자녀들은 졸지에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병들고, 이웃과 친척들 친구들은 이제 그 앞에서 그를 업신여깁니다.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했습니다. ○ 그의 친구들은 하나 같이 그의 재난에 무슨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럴만한 죄가 있기 때문이다 말합니다. ○ ‘죄’이것이 사람들이 가장 쉽게 찾는 모든 고난의 원인입니다. ○ 저도 욥처럼 불의한 자가 땅에서 장수하고 배부르고 평안히 죽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가 똑같이 고난을 당하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욥은 지금 자기는 이런 고난을 당할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 말합니다.

[욥13: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 만약에 내가 나의 죄를 알고 벌 받아야 한다면 당연히 벌을 받을 것입니다. 후회할 일도 억울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욥 27: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욥 31:6]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 이것이 욥의‘의’입니다. ○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그의 계명을 힘써 지켰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시지 않았다. 이 모든 재난은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 아니다.” ○ 욥은 <자신><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말합니다.

○ 다만 한 가지 욥은 왜 하나님이 자신을 무리한 자들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지‥‥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천상천하의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 과연 하나님은 이 작은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신지‥‥ ○ 왜 자신을 이 고난 가운데 내버려두시는가? 그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 그런데 여기 욥에게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짓고 살다가 죄의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입니다.

○ 사람들마다 생각합니다. 사람은 죄가 더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의’> 역시 더럽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 성경은 인간이 말하는 ‘의’가 실제로는 죄와 마찬가지로 더럽다고 말합입니다. ○ 인간이 행하는 선, ○ 인간이 갖고있는 생각들도 실제로는 시간이 지나매 벗어버려야 하는 낡고 쓸모없는 옷에 불과합니다.

◉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고 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런데 낮에 햇볕이 쪼이니 금방 말라 비틀어져 부끄러움이 노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아담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 인간은 온갖 아름다운 옷들로,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선행으로 수치를 가리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윤리 도덕도 종교생활도 하나님의 전 존재 앞에서 그 부끄럽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하나님은 늘 어린 나를 대견하게 보시시만 ○ 우리는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 내가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들도, 나의 의도, 나의 인내도, 나의 믿음도 별 것 아니라는 것을‥‥ ○ 그리고 내가 아는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베드로는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 베드로는 스스로 자신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없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도 그랬을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의 신앙은 보잘 것 없는 말뿐의 신앙이었습니다. 잠시 후, 그의 결심은 3번에 걸친 철저히 부인으로 끝맺었습니다.

◯ 사람은 약한 존재입니다. ◯ 부주의해서 넘어지면 골절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서 활동하기 시작하면 꼼짝 못하고 끙끙 독감을 앓게 됩니다. ◯ 뿐만 아니라 조그마한 유혹에도 마음 약하여 이리 저리 쏠리고, 흔들리고, ◯ 잘 속아 넘어가고. 사소한 말에도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이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기도하여 비를 삼 년 육 개월 동안 멈추게도 하고 다시 내리게도 하였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그런 엘리야였지만 이세벨의 칼날 앞에서 영적으로 침체되고, 두려워 광야로 도망을 쳐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하는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전에 보지 못했던 미세먼지로 우리는 중국을 욕하지만 실제로 서울에서 우리가 마시는 공기 중에는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보다는 우리나라 안에서 만들어지는 미세먼지가 더 많고 더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실제로는 우리 자신들이 쓰는 에너지와 우리 자신들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라는 것입니다. 누가 자신의 정결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이 땅의 죄에 참여하고, 이 땅의 죄를 방관하여 살아온 존재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인간의 오만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눈을 멀게 하고,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로 여기며 하나님을 부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 파스칼의 팡세 - 자기의 비참을 알지 못하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을 자아낸다. 신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비참을 아는 것은 절망을 일으킨다. ◯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희망이 있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신''우리의 비참'도 발견하기 때문이다.

 

◯ 인간은 절망의 끝에 섰을 때에야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돈이 있으면 돈을 의지하고, 인간은 재능이 있으면 재능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빽이 있으면 빽을 의지합니다. ○ 내 안 무엇인가가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인간은 겸손해질 때,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 하셨고,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그의 위대하심과 완전하심을 그의 지으신 만물로써 보여주십니다.

[욥38: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 하나님은 바다의 물에 한계를 정하시어 땅으로 넘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 물이 수증기가 되어서 하늘에 올라 구름이 됩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자에게 때를 따라 단비를 주시고 때로는 세상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시기도 합니다. ◯ 하나님은 하늘에 별을 만드시고 떨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하늘의 궤도를 만들어 서로 부딪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 하마를 보라 하십니다. 풀을 먹는 초식동물의 순진하고 친근한 이미지의 동물이지만 악어도 이기는 무서운 이빨과 힘을 가지고 있어 어떤 동물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 악어를 보라하십니다. 칼과 창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가죽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얼어붙을 것입니다. ◯ 산양 한 마리가 절벽타기에 명수입니다. 깎아지른 90도 경사의 낭떠러지를 다니면서 바위에 붙은 이끼 핥아 먹습니다. ◯ 독수리는 창공을 최고 5㎞까지 날 수 있으며 날개를 거의 움직이지 않고 원을 그리며 날수 있습니다. 눈이 밝은 사람의 시력은 2.0 정도인데 독수리의 시력은 대략 6.0~9.0 정도 된다고 한다. 이 정도 시력이라면 1㎞밖에 있는 글자도 거뜬히 읽을 수 있다. ◯ 타조 시력은 25.0 세계에서 가장 시력이 좋은 동물입니다. 타조는 10km 밖의 개미도 볼 수 있다 합니다. 타조는 새 가운데 못생긴 존재입니다. 알을 낳아놓고 그냥 떠나버립니다. ○ 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 말씀하십니다. 흙이란 신비한 것입니다. 입자들이 너무 잘아도 물을 머금지 못하고 입자가 너무 커도 양분을 함유하지 못합니다. 흙이 이렇게 뭉쳐지게 하신 분이 누구 입니까? 비옥한 흙에는 1제곱cm에 1~·10억 마리의 좋은 균이 있어 좋은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땅에 화학비료를 사용하여 이제는 나쁜 균이 90%를 차지하고 좋은 균은 10%만 남은 땅을 만들었습니다. ○ 어리석은 인간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완전하심을 신비로움을 측량할 수 있습니까? ○ 누가 하나님의 공의를 판단하고 비교할 수 있습니까? 좁은 시야로 어찌 하나님을 평가하겠습니까. ○ 인간의 짧은 식견으로 ‘하나님의 의’를 훼손하지 말아야 합니다. ○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네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보라 하십니다.

 

○ 예수님의 부활은 초대교회의 핵심메시지입니다. ○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의 증인들을 향하여 “그들은 사실은 환상을 보았을 것이다.” 말합니다. ○ 예수를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만났다고 철석같이 믿었다는 것이다. ○ 이러한 <환상설>이 말이 안 되는 것은 환상이란 여럿이 함께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성경에는 예수께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음을 반복해서 기록하였고, 그들 모두가 똑같은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배경도 다르고 기질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몇 주간에 걸쳐 각기 다른 곳에서 모두 비슷한 환상을 보았을 리가 만무합니다. ○ 그리고 거짓과 환상을 옹호하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 나의 연약함과 무지 때문에, 나의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 우리가 철저하게 낮아지고, 철저하게 겸손해질 때, 우리의 절망은 사라지고, 내 앞에 희망의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 철저한 나의 부정을 통해서 참된 긍정의 세계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약하고 가난하며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최대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이요. 최종의 승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 동굴은 그 끝이 막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주의 성도들에게 고난은 절망의 길, 그 반대편이 막혀있는 굴이 아닙니다. 잠시 통과해야 할 터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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