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8:12-20   < 세상의 빛 >   2014. 4. 27

[창세기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실 때 첫날에 빛을 만드셨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하셨습니다. ◯ 빛도 어둠도 모두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없는 곳에는 어둠이 찾아옵니다. ◯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인생길에서 어둠을 이용하시기도 합니다. 아무런 변화도 없고, 활동도 할 수 없고, 소망이 보이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은 필요합니다. ◯ 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 전신주의 외등 때문에 그 주위의 논에 벼의 성장에 영향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남산의 소나무도 밤에는 쉬어야 하는데 24시간 빛에 노출 되어 성장에 문제가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든 우리에게 생명력을 가져다주고 성장을 가져오고 건강하게 하는 힘은 빛에 있습니다. ○ 모든 생물들은 빛을 통해서 생명을 얻습니다. 빛이 없으면 미생물이나 식물, 동물들은 모든 활동이 중단됩니다. 생명활동은 빛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 햇빛을 보지 않고 지내면 우리 몸속에 [멜라토닌]이란 호르몬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아 불면증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 또 우리 몸은 햇볕을 쪼여야 비타민 D가 만들어지는데 비타민 D의 결핍은 요즈음 많은 학생들의 척추측만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 또 하나의 빛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빛이 비추이는 곳에서는 모든 만물이 밝히 드러나 무엇이든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아침에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올 때는 몰랐던 먼지들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빛이 비추이는 곳에 세상의 만물이 밝히 드러나듯 빛 되신 주님이 계신 곳에는 어둠 속에 감취였던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납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어두움의 세계에서는 무엇이 진짜인지 거짓된 것인지 모르지만 일단 빛이 주님이 계신 곳에서는 비쳐지게 되면 옳지 않은 것, 가짜는 금방 드러나게 됩니다.

● 죄는 그 죄가 드러나기까지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른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거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 죄인은 일상적으로 죄 짓는 것을 일상적인 일로 생각합니다.

세월호 선원들이 저들만의 비상통로를 통하여 갑판위로 올라가면서 지나는 길에 있던 가까이 있던 학생들을 어떻게 나 몰라라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제일먼저 온 구조선에 올라타면서 기뻐하며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합니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서도 어떤 공무원들은 모여 폭탄주를 돌리며 세월호를 위하여~ 건배! 했다 합니다 16일 청해진 선박의 침몰이 있던 날 경영 압박에 시달리던 강남 모 교회는 모일간지 광고지면을 통해 여의도의 모 교회를 향해 '◯◯◯에게 알립니다.'라는 성명서를 게재하며 조속한 합병 인수 계약이행을 촉구했다. 합니다. 세상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모두가 자숙하는 시기에~

▷ 저는 ‘이것이 바로 어둠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이런 어둠속에 나만의 이익과 탐심에 눈이 어두워 살아가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빛 가운데로 나아 와야 합니다. ◯ 여기서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기 '진리를 안다'라는 말은 단지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지 지식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것은 나를 바꾸지 못합니다. ◯성경을 가지고 매일 산다는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은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듣기로는 구원파의 우두머리 유병언은 성경에 얼마나 유식하지 성경의 구석구석을 꿰고 있다고 합니다.

●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 하고, ◯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야 하고, ◯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신 사랑의 눈물에 대한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아닌 모든 인간적인 노력들 예를 들어 (종교적인 의식행위, 성경을 연구하는 일, 그리고 수많은 위원회와 모임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많은 배움과 선행이 우리 영혼을 하나님의 광명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안다’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내 마음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있기까지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에 불과 합니다.

◯ 하루살이에게 내일을 아무리 설명해 준다 하여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에게는 나무색깔은 ‘초록’이라고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초록’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눈을 뜰 때에야 비로소 “이것이 초록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 부딪쳐 보고, 느껴보고, 경험해 보지 아니한 모르는 세계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하여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 사람이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면 자신은 늘 옳고, 바르고, 최선을 다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 오히려 자신이 보는 하나님이 늘 모순되고 틀리고 불공평해 보일 때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작은 머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 이미 그런 하나님은 우리의 믿을 만한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유일한 길은 진리 되신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그 분이 우리를 도우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그들 가운데 와 계셨고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사실, 진리는 이렇게 찾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늘 우리의 마음 문 앞에서 이미 등불을 들고 계십니다. ◯ 사람들은 빛 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내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고 “나를 고난에서 나를 풀어주지 않는다.” 하며 문제를 하나님에게서 찾습니다.

◉ 문은 안에서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믿음으로 그분을 영접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그분을 영접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가 이루어집니다.

 

▶ 참으로 놀랍고 이상스러운 일은 내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인 이후에는 전보다 마음의 갈등이 더 심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히 많은 죄를 짓는 것 같지 않았고, 별다른 고통 없이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 그러나 예수 믿고 난 후에는 어찌된 일인지 전에 몰랐던 마음속에 악이 있음을 알게 되고 [밥 먹듯이 죄를 범하고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 집니다. ◯그리고 이 [죄와의 싸움에서 늘 패배]하며 사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늘 죄를 부끄럽게 여기며 죄를 대적하여 싸우는, 마음에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 그런데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을 때 빛 가운데로 나오기를 꺼리고 싫어합니다.

저는 ‘누가 내게 무엇을 잘못했다’ 말 듣는 것이 제일 싫어요. 나의 죄 문제를 들추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화제입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이 제게 좋은 소리 재미있는 말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사람에게 받은 상처의 기억들이 주님 앞에 나오기를 주저하게 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세상 사람이 주는 갈등과 주님이 주시는 갈등은 다른 것입니다. 사람이 주는 갈등은 나를 공격하는 것이고, 나를 가르치려는 것이고, 지적하는 것이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생기는 갈들은 주님의 사랑을 알고 스스로 깨닫는 자원하는 갈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나는 세상의 빛이다.’하셨습니다. 칠흑 같은 흑암 속에서는, 깊고 깊은 갱도에 갇힌 사람에게 한 줄기 아주 작은 불빛도 큰 힘과 희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마음에 어둠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길이 보이고 평안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 빛은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안에 빛이 들어가는 순간 예수님의 빛이 내 내면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모든 어둠을 내쫓음과 동시에 질병, 절망, 좌절, 상처가 치유를 받고, 죄악과 저주의 세력들이 사라지게 되어 집니다. 우리의 내면의 세계는 밝아지고 찬송이 나오며 사랑의 향기가 나고, 기쁨의 꽃이 피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모신 가정은 소망과 진리, 삶의 의미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오너로 모신 직장은 勞使關係, 비즈니스, 경영의 모든 패턴이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과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여류작가 엘리자 에드먼드 히윗((Eliza Edmuns Hewitt, 1851-1920)은 필라델피아 여자 사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학교 교사로. 그리고 교회 주일학교 사역과 더불어 청소년 사역에 관심을 갖고 헌신하고 있었다. 37세 되던 어느 겨울, 히윗 여사가 불량학생을 사랑으로 설득하려고 다가갔는데, 그 학생이 도망치다 갑자기 지붕에 덮여 있는 커다란 슬레이트 조각을 들어 내 던졌다. 불행하게도 그 스레트 조각이 그녀의 등허리에 떨어져 척추에 큰 손상을 입혔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히윗 여사는 척추에 불치의 중상을 입고 7개월 동안이나 병상에 누워 있게 되었다. 처음 몇 달 동안 그는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증오심으로 고통스러웠다.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이처럼 못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 학생이 미워졌고, 또한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도 아팠다.

우울한 병원생활을 보내던 그는 어느 따스하고 화창한 봄날, 담당 의사의 허락을 받고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가 태양 아래에서 만물이 소생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의 마음에 밝고 아름다운 봄의 기운이 가득 차게 되었다. 그의 영혼 깊이 스며드는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느끼는 순간 그녀에게도 소망이 생기게 되었다.

그 시가 바로 찬송가 428장입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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