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17-30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누가복음23:38]

[요한복음 19: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유사말씀 [시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 예수님은 영적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빌라도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 적은 것입니다. ○ 이는 어떤 놀라운 기적이 아닌데도 몇몇 복음서에만 아닌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건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는 마가의 기록에 따라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유대인의 왕’ 패에 대하여 기록하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가 쓰여 있더라.’는 말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가 아닌 지나가는 구경꾼들이 "네가 왕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조롱하더라는 말을 하고 있을 때 기록되었음을 말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복음과 달리 아주 구체적으로 빌라도가 십자가상에 기록을 히브리말로 로마말로 헬라말로 모든 사람이 다 알아 볼 수 있도록 기록 하였습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기록이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었다는 것 그리고

② 빌라도의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장에서의 ‘유대인의 왕 팻말 사건은 빌라도와 유대인들에게 중대한 관심사였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 빌라도가 이런 팻말을 매단 이유는 ‘유대인 너희에게 더이상 왕은 없다’하는 유대인을 향한 경고입니다. ○ 그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 말한 것이 지상에서의 왕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번거로운 일임에도, 의도적으로 세 가지 언어로 각각 기록해 붙쳤습니다. ○ 여기에는 단지 하나님의 숨겨진 예표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빌라도의 정치적 의향이 있었습니다.

○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다 말하지만 실제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일을 위하여 쓸 자를 쓰시고, 버릴 자를 버리십니다. 부르심이 있습니다.

 

●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적으로 ‘유대인의 왕’이란 사실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27:19]에서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했으며, 빌라도 스스로 특별히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관심은 예수라는 사람이 '유대인의 지도자' 인가? 네가 나의 정치적 위상에 영향을 주느냐? 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예수님이 <영적 유대인의 왕> 인가에는 별 관심은 없었습니다.

○ 심지어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았고 놓아주기를 원하였습니다. 결국 빌라도의 정치적 야망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나님은 빌라도를 통하여 구약성경에 예언된 일을 이루셨습니다. 세상은 우연도 아니고 내가 하고자 해서 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예수님이 이방인의 손을 빌어 죽음을 당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22:16]

● 창세기에서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보기에 심히 아름다운 천지만물을 우리에게 ‘다스리라.’ 맡기시고 축복하셨으나 인간은 곁 길로 나가 세상을 더럽히고 훼손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곁을 떠나 세상길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어 하나님의 하라고 하신 일,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마치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신 후 “다 이루었다”하셨습니다. 헬라어로 ‘값을 지불했다.' '청산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으로 죄인인 우리 인간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모든 장막을 걷어내셨습니다. 천지창조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인간의 회복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의 길>이 다시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셨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언제 이루셨습니까? 내가 태어나기 2000년 나를 구속하는 일을 마쳐놓으셨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니 이미 창세 전에, 나를 기억하시고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자기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 그 구속의 일은 하나님 편에서 이루신 일입니다. 땅에 있는 우리 사람이 이룬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불안해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일을 하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 먹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 공부를 하지 말라는 얘기도 아닙니다. ○ 우리에게 남기워지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참여하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헛된 수고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 저는 최근 어떤 목사님이 약한 바람에 풍차를 만들겠다고 수년을 허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난방이 필요 없는 하우스를 만든다고 몇 개월을 굴삭기로 땅을 팠는데, 그만하라는 말을 듣고 다시 땅을 메워야 하는 상황을 보았습니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이루어야 할 그 무엇은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것입니다. 의미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은 내가 그 무엇인가를 담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힘과 능력도 예비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태초에 이미 정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참여하라 하십니니다.

○ 우리에겐 사명이 있습니다. 창세 전에 정하신 일입니다. 모르고 있다면 다만 내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모든 회복과 영생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 사람이 그 정욕과 탐심에 사는 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 우리는 다 부족하고 죄 많은 존재들입니다. 실수가 많고 부끄러운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받아주시고 지켜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사람들은 나를 못났다. 하고, 무시하고 손가락질 해도 예수님은 나를 인정해 주십니다. ○ 더 이상 사단은 우리를 참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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