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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1-11 <꿈꾸는 요셉>
창세기 37:1-11 <꿈꾸는 요셉> 2012. 5. 27
어떤 목사님이 어려서 교회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때에 자신의 집 옆에 큰 집을 짓는 목수들을 보았습니다. 물었지요. "아저씨 이 집에는 누가 살아요?" " 이 집에는 하나님이 사신 단다." 그래서 하나님은 굉장히 크고 위대하시고 큰 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하고 함께 살아봤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중에 예배당이요 교회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의 가슴 속에는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에 대한 꿈이 꾸었답니다. 그는 어릴 때에 목사가 되기로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나면, 부흥사님들이 와서 설교를 하고 나면, 자신도 뒷동산에 올라가서 설교하였습니다. 솔잎가지를 꺾어서 세워놓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모아 놓고 그것이 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설교를 했답니다. 그 분은 지금 훌륭한 목사님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1) 예수님은 꿈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시었습니다. 인류의 꿈이 되시었습니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탄생 시부터 어려서부터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내내 이 꿈을 가지고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었고 인류의 구원의 꿈이 되셨습니다.
2) 성령도 꿈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사도행전 2:17]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은 지금도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건강한 자나, 병든 자나, 찾아오는 모두에게 꿈을 주십니다.
3) 교회는 성도들에게 꿈을 파는 가게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절망과 좌절과 낙망에 부딪혀 허덕이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교회에 오실 때마다 꿈을 얻어 가야 합니다. 만약 교회에서 꿈을 얻지 못한다면 사망의 길, 어둠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는 신앙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꿈을 가져야 하고, 교회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이 없으면 개인도 교회도 망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던 안 믿던 꿈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정복했습니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은 육신은 살았으나 실제로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늙어도 젊은이요 꿈을 갖지 못한 사람은 젊어도 늙은이입니다.
○ 요셉은 열두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입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레아의 아들들 속에서 상처도 많이 받았을 터인데 전혀 성격이 왜곡된 모습이 없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히고 특별한 사랑을 베풀었는데, 이러한 특별한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랑의 확신이 평생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신뢰를 갖게 한 듯합니다.
야곱은 요셉을 무한히 사랑하였고, 무한한 사랑을 독차지한 아이였습니다. 요셉은 한없이 착하기만 합니다. 요셉은 누구를 미워할 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나이 10살이 넘어 17살이 되도록 자신이 따돌림 당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니 참 철도 없고, 단순합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는 데도 불구하고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찾아갑니다.
요셉은 정직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 (분명 형들은 때때로 아버지의 양을 장사꾼들에게 팔아먹고 잡아먹고 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나쁜 짓에 가담하기 보다는 언제나 바른 말을 아버지에게 했습니다. 형들은 어째든 요셉이 싫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사랑과 칭찬을 받고 싶어 했지만, 형들은 그를 고자질(打小报告) 장이이고, 자기들과 한 통속이 되지 않는 놈이고, 모든 것을 독차지한 아이였습니다.
[ 저의 육신의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老夫子를 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지만 집이 가난하여 큰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 일하러 나가야 했습니다. 저의 큰 아버지의 소원이 무거운 지게(背架)질 안 하고, 평생 보리가 섞이지 않은 따듯한 백반을 먹어보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저의 둘째인 아버지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글을 좋아하는 둘째에게 날마다 집에서 글을 읽게 하였습니다. 나이 많은 형은 늘 이것이 불만이었습니다. 저의 사촌형들에게도 너희는 학교에 갈 필요 없다. 학교에 가면 무엇 하냐? 열심히 일해서 배불리 밥을 먹는 것이 최고다. ]
○ 요셉을 향한 형들의 미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에게 유일한 꿈과 희망은 요셉이었습니다. 야곱은 귀여운 요셉을 늘 품에 두고 이런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 정직해야 한다. / 참을 줄 알아야 한다. / 분노해서는 안 된다. / 이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방 땅에서 유리하며 하루하루를 위험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요셉이 하루는 꿈을 꾸고 그 꿈을 말합니다. “추수를 하는데 형들의 나락 단이 나의 나락 단을 보고서 절을 하더라.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을 향하여 절하더라.”
11절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고 합니다. 사실 아버지 야곱은 겉으로 화를 내었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의 비전이 그에게 있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 요셉이 꾼 꿈은 하나님의 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꿈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꿈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 먹고 마시고 창고를 채우고 행복하게 세상을 누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 인간다운 세상, 사랑이 가득한 세상,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십니까?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꿈은 결국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세상을 망하게 하고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온 꿈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저도 하나님의 좋은 도구가 되기 원합니다.
○ 창세기 39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 하는 말이 무려 5번이나 나옵니다. 이 말은 요셉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형용사가 되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먼 이국땅에 팔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와 함께 계시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종노릇을 할 때도 많은 종들 중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고, 애굽 땅에서 총리가 되어서도 요셉은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왜 이런 대접을 받았습니까?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1: 37-38]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
꿈을 이루기 위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합니까?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대통령이 되겠다고 수단 방법을 가지지 않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까? 비전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비전으로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비전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의와 진리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비전을 보여 주시고 비전을 이루게 하십니다. 부와 귀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를 천하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귀하게 높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꿈을 가진 사람은 외롭습니다. 꿈은 새로운 시대와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현실에 익숙한 사람들, 현실의 수많은 기존 세력이 장애가 되어 가로 막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은 극복해야할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꿈을 갖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어 인간을 구원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바다에 방주를 지으면 누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산에다 방주를 지으니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노아만이 그 꿈을 가지고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을 떠나는 아픔을 치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창 37:8]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은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다가, 나중에는 죽음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꿈은 꾼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꾸는 자는 그 시작부터 방해를 받고 미움을 받습니다.
○ 비전과 몽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비전을 꿈꾸어 가는 사람은 고난과 한계 앞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상가는 막연하게 꿈을 꾸다가 가는 길이 힘들면 금방 포기해 버립니다. 요셉이 처음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갈 때는 아버지 집에서 꾸었던 모든 꿈을 한 때 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향한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적당한 시기에 꾸게 했던 그 꿈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꿈을 가지고 이길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었고, 그 꿈을 이루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꿈을 내가 노력한 이상으로 더 크게 이루어주십니다 공교롭게도 요셉의 이름은 “하나님이 더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요셉이 생각한 것보다 더 크게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고 꿈꾸는 자에게 백 배, 천배 만 배로 축복을 더해 주십니다. ○꿈을 가진 요셉으로 말미암아 보디발의 집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였고, ○요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애굽 땅에 복이 임하였습니다. ○요셉의 온 가족에게 축복이 임하였습니다.
▶ 창세기 38장에는 보면 다말은 메소보다미아 지방에서 가나안으로 살러온 야곱 집안 유다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엘은 경건치 못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 죽임을 당합니다. 히브리 율법에 따라 차남인 오난과 결혼함으로 장자의 대를 잇게 하는 것입니다. 오난은 엘의 후손이 계승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이들의 악함을 보신 하나님께서 두 아들이 자식을 생산하기도 전에 거두어가셨습니다. 레위 결혼법에 따라 세째 아들 셀라가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유다는 셀라가 장성한 후에 결혼시키기로 약속하지만 세월이 흘러 셀라가 성장한 후에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셋째 아들이 두 아들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가 자신의 이름을 그의 계보에서 잊어버리기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단지 시아버지라는 한 남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에 버림 받은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正當한 삶을 살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의무를 벗어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협하기를 거부합니다. 유다 집안에 남편의 대를 잊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그녀는 친정집에 수절하였습니다. 다말은 유다 집의 후계자를 얻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루는 아내를 잃은 유다가 딤나로 양털 깎는 것을 감독하러 온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부도덕한 방법일지라도) 스스로 창녀로 변장하여 유다를 유혹합니다. 급작스레 돈을 가져오지 못한 유다는 자신의 도장과 끈을 약조물로 주고 그녀와 동침합니다. 석달 후 그녀가 어떤 남자와 행음함으로 임신이 알려지고 그녀는 불태워 죽임을 당해야 하는 위기를 당하지만 시부에게 전에 자신이 받았던 약조물을 보이고 유다의 잘못을 생각나게 하고 긍휼을 입어 목숨을 건집니다. 그녀는 쌍둥이를 낳았고 둘째 베레스는 다윗의 10대조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릅니다. 그녀는 유다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하여 근친상간이라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용서하시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로 그녀의 죄를 가려주십니다. 유다는 아들들을 제대로 신앙으로 기르지도 못했고 자신도 정결한 삶을 살지도 율법을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그녀는 유다가문을 지켜준 사람이 되었습니다.
○ 이 세상에 문제없는 가정 문제없는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고 부끄러운 나, 부끄러운 나의 집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깊이와 넓이와 크기를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한없이 쏟아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꿈을 가지십시다. 용기를 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의 소원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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