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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8:27-38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복음 8:27-38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012. 6. 2
[마가복음 8:27-29]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여짜와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 선지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바로 제자들의 고백을 듣고 싶어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는 말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나의 생각, 나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책임이 있고, 자신을 밝히는 것입니다. 말에 힘이 있고, 인간관계가 시작하는 것이고, 책임이 따는 것입니다. 몰라요! 할 때마다 화가 납니다. 오늘날 제자된 나의 마음과 결단을 알기 원하십니다. ○ 그러자 베드로가 앞장서서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베드로는 훌륭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께서 물어보실 때 누구보다도 먼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고백은 마음 속에서 나온 자신의 확인이고 결단입니다. ○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에 들어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진실이고,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의 발견, 나의 체험을 듣고 싶어합니다. 안드레가 요한의 증거에 의하여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형제 시몬을 찾아가 말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이 말은 스스로 경험과 체험 구약의 예언의 확증에서 나온 고백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을 최초의 신앙고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한 고백 "당신은 그리스도시니이다" 라는 이 고백 위에 교회에 세워집니다. 귀중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난 예수님은 그의 고백을 덧붙여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막 8:31-33]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나는 인자이다" 말로 시작하여 예수는 이런 베드로의 고백에서 나타난 그의 생각을 수정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자"란 칭호를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기다리던 그리스도 개념이 [구원자, 구속자]라면, 인자는 비록 신적 권위와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반드시" 고난받고, 죽고, 부활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 사람들이 말하고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 "그리스도"의 像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대중들과 제자들이 이해하는 단순한 [능력의 예언자]나 온 세상을 [지배하는 메시야]가 아닌 [고난 받는 종] "인자"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이것은 전통적인 메시야의 모습과는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투쟁으로 얻어지는 메시야 왕국도 아니며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왕국도 아닙니다. 오히려 냉혹한 현실 세상에서 타자를 위하여 "고난받아 죽는" 지난한 産苦를 통하여 얻어지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상상할 수 없었던 어려움이 닥칠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서는 제자들이 예수에 대한 철저한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주님은 더 이상 자신을 자신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이제는 고난을 받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다. 라는 말로 제자들에게 참 주님의 모습에 알려 주십니다.
예수는 베드로의 "간하매(꾸짖음)" 즉 "예수, 당신은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인자적 삶을 산다면 이제까지 따랐던 우리들은 무엇이 됩니까? 당신은 '반드시' 그리스도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라는 요구입니다. 주님이 말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는 것” 이는 "사탄"의 행위인 것이다. 사망의 길입니다.
○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는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천국은 가고싶고, 또 하나님의 복은 받고 싶고, 성령은 받고 싶은데, 십자가 지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말하는 목사와 교회도 많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주님께서 부여한 사명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명입니다.
○ 유명한 영국의 저술가 러스킨(罗斯金)은 '나는 사명을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할 일은 할 수가 없다. 마치 내 다리를 다른 사람이 대신 붙여서 다닐 수가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에서 "인자"로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길을 제시하면서 그 길로 나설 것을 요구하십니다. 너무도 분명하게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를 알려주시면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이 길로 과감히 동참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마가복음 8:34-35]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누가복음 9:23]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누가복음은 구체적으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고 말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상적인 삶 가운데 십자가입니다. 우리에게는 날마다 해야할 기도의 사명, 헌신의 사명, 물질의 사명이 있습니다. 때로는 여러분의 가운데 자신이 크게 멋지게 주님 앞에 쓰임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먼 날의 위대한 사역을 꿈을 꾸는 것도 좋지만 오늘 충성하는 사람 작은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큰 일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어느 곳이 아닌 교회 안에서 주님 앞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여러분 음성과 손과 발 등 온 몸 과 여러분의 지식과 생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전체적으로 쓰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에게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지체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팔다리와 이목구비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기 사명을 다할 때 교회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의 사명을 다할 줄로 믿습니다.
○ 주일학교 교사생활을 하다보면 어떤 교사는 수시로 빠집니다. 다른 교사에게 합반시켜서 대신 가르치라고 하고 자기는 자기 일에 빠빠 못하게 되면 결국 아이들은 열심과 애정을 잃게 됩니다. 다른 교사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게 속상해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이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거나 빼앗기면 안됩니다. 이것이 날마다의 십자가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큰 것을 맡겨주시고, 작은 일도 큰 일처럼 여길 때 하나님이 가장 가치있는 것을 부여해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 5달란트, 두달란트, 한달란트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취리하는 자가 누구냐? 교회에라도 예배시간에 빠지지 않으면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고생하라. 고생을 해보아야 돈의 소중함을 알듯이 주님을 위하여 고생할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땀을 흘려 보아야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받게 해야 될 사명이 있고, 내가 만난 예수를 다른 사람에게도 만나게 해야 될 사명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8:36-37]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지금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봅시다. 얼굴과 몸을 보면 나인지 알게 되니 얼굴과 몸이 바로 ‘나’인 것 같지요? 그러나 교통사고로 팔 다리가 하나씩 없어질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 머리나 이가 빠질 수도 있습니다. 머리가 희어져도 ‘나’라는 존재는 계속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내가 소중하듯이 또 다른 사람도 소중합니다. 저 사람도 하나님이 만드신 분이고, 이 사람도 하나님이 만드신 소중한 사람입니다.
◉ “너는 죽을 준비가 되었느냐?” 서울 구치소 보안계장 박효진 장로가 한 사형수에게 묻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의 얼굴은 금방 굳어집니다. 사형수들은 죽는다는 소리에 대해서 참 민감합니다. 참으로 강하고 무자비하고 아주 징그러운 냉혈한이라고 알려져 있던 이 친구도 간수의 목을 껴안고 많이 울다가“이제는 알겠습니다. 이제는 죽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는 늘 성경책을 가슴에 끼고 다녔습니다. 운동을 가도 면회를 나가도 늘 끼고 다니다가 만나는 사형수에게 마다 “너 죽을 준비해라”했습니다. 많은 사형수들의 마음이 도형이의 눈물의 한마디 앞에 변화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역사가 일어났지요. 보통 사형수들은 자기 이름을 부르면 갑자기 혼이 나가버려요. 혼이 나가서 자기 문 앞에서 나와 사형장까지 가는 동안 5-6분정도 걸리는데 자기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거예요. 그리고 이미 밧줄을 보는 순간에 혼이 나가 버려요. 놀라는 사람, 주저앉는 사람, 오줌을 싸는 사람, 저주하는 사람, 욕설을 내뱉는 사람, 또 어떤 사람은 기껏 내뱉는 소리가 “담배 한 대만 피우게 해 주십시오” 그 담배 한대 입에 물고 연기가 다 빠져나가기 전에 결국 목매달려 그냥 그렇게 죽습니다.
1991년 어느 날 아침 서울 구치소 보안계장 박효진 장로를 비롯한 서울구치소 신우회원들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사형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예배드리는 일, 사형수 도형이를 데리고 나오는 일과 특히 사람들이 하기 꺼리는 시신치우는 일을 신우회원들이 맡기로 뜻을 모았던 것입니다. 신우회원들은 임종예배를 드리고 마지막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집행하는 날 박효진 장로가 “너는 죽을 준비되었냐?” 물었더니, 그 소리를 듣자마자 “지금 소장님께서 읽으실 그 죄를 제가 다 지었습니다. 제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죄는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었던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주시고 기억도 아니하시는 그 더러운 죄를 또 제 귀로 듣고 가기가 싫습니다. 용서받은 영혼 깨끗한 그대로 아버지나라에 갈 수 있도록 제발 그 더러운 죄를 읽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계속 말합니다. “저는 과거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죽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여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만나고 나니 지금까지 제 손에 죽은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해 남몰래 기도해왔습니다. 오늘 천국에 갑니다. 거기서는 그분들의 유가족들을 위해서도 역시 기도하겠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한번 저를 만나 주십시오. 천국에서는 사형수가 아니라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여러분들을 만날 겁니다.” 저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눈 뿐만이 아니라 장기와 몸을 모두 내놓겠습니다” 그는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 본디오 빌라도가 묻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실 때 “네 말이 옳도다!”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늘 천국을 예비하셨고 자신의 나라가 이 땅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을 주기를 원하셔서, 이 땅에 오셔서 온갖 모욕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언젠가 죽지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를 믿는 진실한 증인만이 영원한 하늘나라의 시민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천국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문을 들어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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