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9:1-8 <죄 사함을 받으라>                 2012. 5. 13

최첨단 과학시대입니다. 줄기세포를 통해 암을 고치는 의술이 개발 되었습니다. 암을 고칩니다. 항생제의 개발로 수많은 병을 고치게 되었고, 많은 불치병들이 사라지고 치료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사람들은 훨씬 더 건강의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항생제로 고치지 못하는 병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병원의 첨단 기술과 의약으로 고치지 못하는 수많을 병을 주의 이름으로 고치고 살리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의 귀한 이름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한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는 이야기입니다.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1.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려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를 예수님께로 데려온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왜 교회에 나옵니까?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가운데 계신 분입니다. 형제의 기도가 있고 권면이 있고 위로가 있습니다. 은혜는 성전의 문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저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신 어머니를 잊지 못합니다. 제 어머니는 가난했고, 학력은 무(無)였고, 사회적 지위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친척들에게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평생 오로지 자식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주일 낮과 밤, 수요일 저녁을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그 신앙의 모습이 오늘의 저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저에게 이렇게 많은 힘이 되고 동역해 주는 형제자매가 있어 늘 감사드립니다. 형제자매를 가까이 하여 먼저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이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중풍병을 고치실 능력이 있다는 믿음과, 그를 고쳐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지붕을 걷어내고 친구를 침상 째 내리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이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인가를 보십니다. 병자는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 라고 했습니다. 그는 전신이나 반신이 마비되어 거동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한 때는 왼팔과 다리를 쓰시지 못하고 누워 계셨습니다. 말이 어눌했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 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느냐? 부끄러워 사람을 보지 못하겠고 사람들에게 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갖고 나와야 합니다. 사모하는 심령,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평상시에는 하나님에 교회에 출석도 안하고 하나님의 일에 관심도 없다가 병만 고치러 나온다면 혹시나 해서 나오는 사람입니다. 구경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고쳐주나 보자! 과연 능력이 있어 고치면 좋고 손해 볼 것 없고‥‥ 침상에 누워서 실려 온 그는 좋은 선택을 했습니다.


축복을 즐거운 마음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기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마음을 열고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이기까지 그의 삶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기 때문에 나를 하인중의 한 사람으로 여기소서.’ 아버지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는 생각하고 머뭇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의 결단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텍사스 주의 재판소에서 한 살인범이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은 그 주의 공직에 있는 동안 많은 공로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형은 주지사를 찾아가서 자기 동생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며 사면을 간청했습니다. 주 법정은 형의 공로와 그의 보증을 참작하여 그의 동생의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 어렵게 주지사의 사면장을 받아 넣은 형은 기쁜 마음으로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동생에게는 조금도 회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형이 물었습니다.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여기서 살아 나간다면 무엇을 하겠니?” 그랬더니 동생은 얼굴을 찡그리며 주저 없이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나간다면 첫째로, 내게 사형 언도를 내린 판사를 찾아 죽일 것이고,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을 섰던 놈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죽여 버릴 거야.” 형은 두말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형무소 문을 나서는 형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주지사로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지 않습니다.


3. 2절에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나 이 중풍병자나 죄 사함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병은 병이고 죄는 죄라고 생각했지요. 아무런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중풍환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은혜는 하나님 안에서 자녀가 되질 때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는 건강한 날 동안에 주님을 모른 채 바쁘게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분주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돌아왔고 이제는 하나님 안에 하나 됨을 회복하였습니다. 모든 은혜는 진정한 관계회복에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 병 고침을 받기 이전에 먼저 죄 사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깨닫지 못할지라도 예수님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우선인지 아십니다.

우리는 먼저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남편, 아내, 이웃, 친척, 정치가들‥‥

1) 세상은 죄를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다 사람이 생각하기 나름이고 사람이 정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죄에 민감해야 합니다. 죄를 잊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2) 현대 심리학도 죄라는 개념 자체를 거론하는 것조차 꺼립니다. 죄 문제를 말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정신건강에 폐를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사실 네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환경이 열악해서 그랬다. 모든 것은 환경과 사회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3) 교도소에 가보십시오.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구 때문이다. 누구 때문이다. 재수 없어서 그랬다. ‘한순간의 실수로 그랬다.’ 본성은 괜찮은 사람이다. 하며 자신 안에 罪性을 부정합니다.


☞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지 않는 것,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따라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롬14:23) 우리 자신 안에는 무수한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중단하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동산 중앙에 있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가난해서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못 배워서 죄를 짓는 것도 아닙니다. 너희는 죄를 이기고 극복하라고 했습니다. 〕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기독교 복음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죄를 깨닫는 것이고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나는 할 만큼 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생각합니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서기관들이 속으로 하고 있었던 악한 생각이란 단순히 하나님의 불쌍한 이 사람을 고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아니고 오로지 관심사가 예수를 올무에 잡는 것, 시험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내가 그 자리에 있어도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지극히 정상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가 누구이기에 “네 죄 사함 받았느니라.”말하는가? 나도 그 자리에서 아마 똑같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여서는 안 된다. 교회를 이단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사랑도 긍휼도 없는 모습입니다. 고통 받는 사람을 두고 마땅히 나는 하나님의 기대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 가룟 유다가 향유를 붓는 마리아를 보고 네가 이렇게 향유를 낭비하니 옳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자신들이 지금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대적하는 사회입니다. 대통령을 대적하고, 어른을 대적하고, 부모를 대적하고, 선생님을 대적하고, 세상풍조가 무엇이든 제 마음대로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서기관들의 속생각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어떤 질병도 다 고치실 권세와 능력을 지니셨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심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에 그들의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심으로 자신의 존재를 밝히십니다.

[마 9:5-6]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러자 그 말씀대로 그 중풍병자는 일어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이로써 죄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우리에게 평안과 믿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단지 병 낫고, 일이 형통하고, 선물을 얻기 위한 이 땅에서 나의 만족을 구하는 일이 되면 안 됩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나의 믿음의 길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수많은 육신의 생각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로막고, 축복의 문을 닫게 합니다. 헛된 욕망, 자존심, 나의 성취, 잘못된 생활 방식, 습관일수 있습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오늘의 본문 9장의 이야기는 8장 끝 부분의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 곧 거라사인의 땅이라고도 하는 곳에 가셨을 때 있었던 사건에 연이어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다라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이 무엇입니까? 군대라고 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무덤 사이에 거처하며, 밤낮으로 어디서나 소리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상하기도 하며, 고랑이나 쇠사슬로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셀 뿐 아니라 몹시 사나워서 아무도 접근조차 할 수 없던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 그에게서 귀신들을 다 내쫓으시고 그를 온전하고 얌전한 사람한 사람이 되어 앉아 있었습니다.

○ 가다라 지방에서의 거라사인들의 반응은 사뭇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고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던 너무나 불쌍한 한 인간을 예수님께서는 온전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고마운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에게 그들 지방에서 떠나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고침 받은 한 생명에 감사 보다는 잃어버린 2000마리 돼지가 더 귀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재물에 대한 욕심이 불쌍한 인간에게 미치는 축복과 사랑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망각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 동네에 그런 사회에 평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였습니다.

○ 사람들의 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능력도 모르고 담이 막혀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삶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나에게 지금 하나님의 준비하신 축복을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허물을 잘 모릅니다. [ 저는 어른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인정하지 않는 것이 내게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날 어른들을 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 친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죄를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

 

▶ 하나님은 저의 치명적인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기 위하여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제 대신 돌아가시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 예수님은 지금 내가 어떤 심정을 가지고 교회에 나왔는가를 잘 아십니다. 사모하여 왔는지 잠간 방문하러 왔는지‥‥

● 예수님은 단지 지금 내 눈 앞에 건강과 가정문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와 친구가 되기 위하여, 나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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