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1:27-33  <누가 네게 권세를 주었느냐>           2013 1.13

27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권위란 무엇입니까? 일반으로 생각하기를남을 복종시키는 힘혹은어떤 분야에서 남이 신뢰할 만한 뛰어난 지식이나 기술, 또는 실력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권위를 가진 자가 되고 싶어 하고, 권위자에 대해서는 존경과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권위의 실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가 실추되고, 직장에서는 대표의 권위가 실추되고, 사회에서는 지도자들의 권위가 실추되고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신분과 일에 합당한 권위를 갖지 못한 지도층에게도 문제가 있고, 둘째) 인정해야 할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참 권위의 대상을 알지 못 합니다.


■ 예수님은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시면서 나귀를 타고 왕처럼 입성하시고, 성전을 정결케 하십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기구를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자신들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자신들의 공권력이 무시당하고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①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모든 성전 안에서의 권세는 자기들이 속한 산헤드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산헤드린은 유대의 종교와 정치의 최고 법원이자 집행 기구입니다. 산헤드린이 인정하지 않는 권세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세와 통제 아래 있기를 원했습니다.

② 율법 학자(서기관)들에게 율법은 신적 권위를 가집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은 권위를 갖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일은 서기관과 제사장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율법은 반드시 존중 되어야 하고 완전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율법 외에 다른 최고의 권위는 없습니다. 유대 당국의 대표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세를 주었느냐”

▶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권위는 국가가 인정했으며, 율법을 가지고 지키는 자신들이야 말로 ‘ 참 권위 ’의 소유자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그러나 권위를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참 모든 권위를 주시고, 지금 그 권위를 인정하고, 유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세상에 하나님 외에 어떤 권위도 최고의 권위의 기준일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대통령도 어떤 법도 어떤 나라도, 나의 아버지도 나의 어머니도 하나님 자신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어떤 공권력도 율법도 하나님의 뜻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모든 권위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 세상에 권위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까? 한 나라의 경제력을 가진 사람입니까? 누구나 권위를 가진 자가 되기 원하며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위탁받은 사람입니다.


▶ 예수님은 세상의 주인. 세상의 구원자로,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의 죄를 赦하시는 자로 오시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셨으며, 율법을 새롭게 가르치셨습니다.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시고, 죄인의 죄를 사하였습니다.

[대상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그 주님은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기를 기뻐하시고, 또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 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항상 주님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며 경외하여 섬겨야 합니다. 예배할 때만이 아니라,  길을 갈 때에도, 모든 일에 앞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심령에 주님을 왕으로 모실 때, 우리의 시간과 생명의 주인 우리 산업의 주인으로 나 자신과 자식 가정을 드릴 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들의 질문의 목적은 예수가 죄인임을 밝히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훈과 행동이 이스라엘의 정통교단과 국가의 법에 의해 [공적인 권한] 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궤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즉, 성전예배와 그 利權이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권위를 대단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마치 사단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을 시험할 때 “천하만국을 보이면서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어지게 하는 첫 번째 유혹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 되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12장1절 이하] 포도원의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 농부들(소작인)에게 주고 타국에 갑니다. 추수 때가 되어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을 받으려고 종을 보냅니다. 그러자 농부들은 종을 때리고 그냥 되돌려 보냅니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여 보냅니다.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를 죽이고, 또 다른 종들을 죽입니다. 이제 한 사람 아들을 보내니 아들까지 죽이고 포도원밖에 던져버립니다. 아들은 존대할 줄 알았으나 상속자인 그를 죽여 유산을 차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입니다. 산울타리까지 두르고 즙 짜는 틀까지 만들어 주셨습니다. 심지어 망대까지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시고 풍부한 수익의 도구를 주시고, 망대가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굴복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세상적인 야망 때문에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세상적인 즐거움 때문에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세를 주었느냐”할 때, 만약에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스스로 “나의 권위는 하나님으로서 온 것이다.” 하다면 신성 모독죄가 되는 것이고, “나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라고 하면 웃음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의 활동이 하나님에게서 권위를 부여받은 선지자의 활동인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간적인 권위에 의한 활동인지를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유대의 지도자들은 서로 의논을 했습니다. 결론인 즉, 세례요한의 활동이 하늘로부터라 하면, 하나님에게서 권위를 부여받아 파송된 선지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는 또 세례요한이 세상의 구세주로 증거 한 예수님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요한의 활동이 사람에게로부터 라 하면, 요한을 하나님의 영적 권위를 부여받은 참 선지자로 여겨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백성들에게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알아 달라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왜? 주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높여주지 않는다고, 자신 앞에 꿇지 않는다고 번민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는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셨고,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모두가 주님을 배신하며 조롱의 말을 하였으나 주님은 말없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낮은 자리, 비천에 처하셨습니다.

고향 땅 나사렛에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이 말하기를 “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십니다.”하며 높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시어 자신을 알아 달라 하지 않았습니다. 권위는 스스로를 알아 달라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니 권위가 있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권위를 주장하며 권세 부립니다. 알아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권위가 만들어지고 세워집니까? 세상에서 대접받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실망만 있을 것입니다.


◆ ‘권위주의’ 라는 단어는 권위(權威)의 의미를 왜곡합니다. 권위는‘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사람과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내적 힘을 말합니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권위라는 이름만 내세우는 것’ 을 의미합니다. 권위가 그렇게 왜곡되는 것은 권위를 권력으로만 보고자 하는 사람의 습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수 3: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죽기까지 복종하신 우리 예수님을 하나님은 지극히 높이셨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권위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나에게, 정치가에게, 지도자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게 자격증도, 임명장도 사람이 줄 수 있지만 ‘참 권위’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공권력도 율법도 참 권위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불렀다. 내가 너를 세웠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오는 참 권위입니다.


●  그리고 누군가에게 권위가 주셨을 때 그 모든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고 존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과 같습니다.

○ 사람들은 모세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권위를 부정하고 거역하다가 광야에서 멸망하였습니다.

○ 사울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에게 기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아직 그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러하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울을 향하여 반기를 들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모든 것이 형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의 설교, 전도를 할 때 <기독교는 무엇인가를 해 주는 종교> 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이런 저런 것을 해준다. 기독교는 당신에게 행복을 약속하며, 평화와 기쁨을 준다. 근심이 없어질 것이다. 통증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Lloyd Jones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방법은 참된 전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궁극적 권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그리스도와 대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주되신 예수님은 마땅히 존경받아야할 참 권위(authority)의 소유자이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전파해야! 합니다. 주님의 왕 되심을 전해야 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