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8:40-56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2013. 1. 2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다 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환영했습니다. 능력의 주님을 보고 싶어 했고 그들 가운데에도 병든 사람, 가족이 아픈 사람,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 회당장 야이로도 간절리 기다렸습니다. 회당장이라면 회당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율법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 성전제사를 책임진 사람들, 이들은 사람의 눈치도 봐야 되고, 체면도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가진 것 많고, 배운 것 많은 사람은 고개 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회적인 지위와 명망이 있는 바리새인들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대부분 예수님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도 그는 자신의 외동딸을 살리기 위해  사회적 신분을 내려놓고 나사렛의 목수의  발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외동딸이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신분이 높은 사람도 주님 앞에 나옵니다. 주님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예수께서 가실 때 무리가 밀려들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 무리들과 가는 중에 지난 12년을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혈루증은 지속적으로 하혈을 하는 증세는 보이는 부인병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양의 피를 쏟아내는 고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혈루증은 율법(레위기15:25)에 의하면 부정한 병으로 정죄되었고, 그 병을 앓는 사람과 접촉을 한 사람까지 부정하게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참 불편한 병입니다. 드러내어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냄새도 납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죄인 취급하였습니다. 아마 회당예배에도 참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여인은 여러 의사를 찾아 가사를 탕진 했지만 고침을 받진 못했습니다. 가진 모든 것을 병 고치는 데 다 허비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건강도 잃어버리고, 돈도, 희망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그녀에게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입니다. 실의와 좌절 가운데 빠져 있는 그녀에게 어느 날 모든 병을 고치시며, 악귀들을 쫓아내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하고, 말씀으로 광풍을 잠잠케 하시는 분에 대한 소식을 들렸습니다. 그녀는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지막 희망을 붙들게 됩니다. “내가 만일 그 분의 옷자락이만이라도 만지면 내 병이 나을 수 있을 텐데‥


이제 그녀는 수많은 군중들 속에 섞여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군중이 많이 밀려듭니다. 무리를 헤치고 마침내 예수님 앞에 가까이 왔지마는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하고 부를 용기가 없었습니다. 만지기만 해도 고침을 받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슬며시 군중을 틈으로 힘써 손을 뻗칩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이 닿았습니다. 그녀는 만졌고, 그 즉시로 피가 멈추고 그녀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소망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녀는 기뻤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입니다.

 이 때 “누가 나를 만졌느냐?”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에 제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예수님,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수님 이르시기를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십니다.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모든 사실을 아룁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하십니다, 여기서 “딸아” 이 말은 아버지가 딸을 부를 때 사용하는 부녀지간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자기 딸과의 관계를 묘사하며 사용했던 딸이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여인을 향하여 딸아! 이렇게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한 마디 속에서는 그 동안 모든 사람에게서 소외되었던 여인, 의지할 데 없던 여인을 향한 주님의 한없는 사랑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 예수님이 지금 야이로의 집에 찾아가는 것은 그가 회당장이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회당장의 딸만이 고침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당당하게 주님 앞에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그녀는 육신의 질병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내면은 열등감과 사람들에 대한 상처가 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안히 가라”는 축복의 말씀과 함께 그녀를 보내십니다. 이제 너에게 더 이상 고통이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더 이상 피 흘림도 없고, 더 이상 아무런 도움도 희망도 없던 삶에서 벗어나라. 더 이상 사람들에게 멀리함을 당하고 무시당하던 삶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기쁨에 넘치는 인간다운 삶을 살라. 축복하시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축복의 출발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 지금 수많은 무리들이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길인데, 그 모든 무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믿었습니다. ○ 분명 그들 중에도 병든 자 연약한 자가 많았을 것입니다 ○ 그들 모두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능력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여기 1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에게만 축복이 임한 것입니까?  주님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무리와 지금 이 여인의 믿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 여인은 많은 의사를 만나보았습니다. 온갖 약을 다 써보았습니다. 12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내가 주님의 ‘옷 가를 만지기만 해도 나을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주님 앞에 나올 때 믿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믿음을 사용하였습니다.


※ 사람이 세상에 성공하려면 생산 도구를 가져야 합니다.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어도 다시 가난해 질뿐입니다. 아프리카의 빈민, 북한의 인민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스스로 생산하고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 견고한 신앙으로 영원한 축복의 신앙인이 되려면, 믿음을 소유한 사람, 믿음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무리들은 예수님이 거라사인의 땅에서 돌아오실 때 사람들은 기다리고 크게 환영하였습니다. 그리고 큰 기적을 보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인이 가졌던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얻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들은 구경꾼에 불과 했습니다. 주님이 나의 병을 고쳐주고 주님의 병 고치는 능력을 옆에서 구경하고 놀라고 싶어 했습니다.


▶ 또 하나, 그녀의  믿음은 겸손에서 얻어졌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출 때 얻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올 때 이 여인은 절망의 끝에 도달해 있을 때였습니다. 가정생활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고 있는 재산도 다 없어진 상태에서 여인의 몸으로는 아무 해결책이 없었습니다. 한없이 무능하고 연약한 부끄러운 모습, 자신이 한없이 낮은 자리에 처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깊은 데 그물을 던져 많은 물고기를 잡고 나서 “나는 죄인입니다.” 했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아도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는 자신, 지치고 지친 자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았을 때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있어요. 하는 사람은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때때로 교만하여, 자신을 자랑하며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 거리에서 큰 소리로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외친다고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 내가 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용기를 가졌다고 큰 믿음이라 말하지 못합니다. ○ 나도 아름다운 찬양을 한다. 나도 설교를 할 수 있다. 나는 전도를 잘한다. “하나님 나도 잘하지요?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의 행위를 가지고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 6: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겸손히 라는 말은 자기를 비운 사람, 인간의 모든 재능과 노력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다 헛된 것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8:50-51]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 여인과 이야기 하는 중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합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더 이상 선생을 괴롭게 하지 마소서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회당장의 집에 찾아가 회당장의 딸을 고치는 큰 이적을 기대하였지만 주님은 저들을 집 안에 초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으므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함께 하여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슨 새로운 것이 있겠는가?” 의심하며 판단하는 사람을 하나님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배울만한 사람, 들을 만한 귀를 가진 사람에게 듣게 하시고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 물론 신앙생활 하다보면 모든 일에 믿음이 생기고 담대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믿음이 생기는데 어떤 경우에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치병을 걸렸는데도 자신은‘꼭 나을 것이다.’믿음을 갖습니다. ● 믿음으로 날마다 이기며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현상에 따라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힘들다. 곤란하다. 어렵다. 불가능하다. 되겠느냐?  걱정합니다. 날마다 믿음으로 살기보다는 상황을 보고, 나의 처지를 보고, 사람을 보고 좌절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자녀에게, 나의 사업에, 교회에, 내일을 보는 사람, 소망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교회로 밀려옵니다. 함께 찬송 부릅니다. 기도하며, 함께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모두 우리가 주님께 손을 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배라는 형식을 통해 주님께 손을 대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믿음으로 손을 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주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들 가운데서 믿음의 손으로 자신을 만지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자기와 참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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