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9:1-10  <네 집에 유하리라>     2013. 2. 3

[누가복음19:3-4]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여리고(耶利哥) 성에 삭개오(撒该)는 키가 작았다고 했습니다. 여기‘키가 작았다’성경에 이런 표현을 할 때는 보통 작은 것이 아니고 아주 작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키가 작은 것이 그에게는 조롱거리가 되어 일생동안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들은 상처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삭개오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비록 키가 작기는 하지만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너희들이 나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세리장까지 되었습니다.

  

세리장이라면 세관에서 최고의 자리입니다. 예수님 당시 여리고는 무역의 중심로서 로마정부가 중시하는 큰 세관이 있었습니다. 아마 삭개오는 그 자리까지 오르고 유지하기 위해 로마정부의 인정받으려 이전의 누구보다도 정한 세액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고, 자기 민족을 향해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많이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과하여 거둔 세금은 자기 호주머니에 넣어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거부가 된 대신에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민족 앞에 매국노가 되었습니다. 세리는 회당예배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법정에서 선서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죄인 중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율법에 의하면 죄인과는 대화해서도 안 되고 죄인의 집에 들어가기만 해도 동일한 죄인이 됩니다. 아무도 그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는 물질로써 자신의 공허함과 상처 열등의식을 채우려 했고,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세리장까지 되어 돈 버는 데는 성공했지만 세상의 지탄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은 원래‘순결하다’는 뜻인데 그는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가장 더러운 이름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애국이니, 민족이니 다 헛된 것이라 말했을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살아왔습니다. 삭개오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을 무시하고 세상은 그를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세상과 담을 쌓으며 산 것입니다. 그는 한마디로 세상의 왕따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에게 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동네를 지나신다는 겁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대단한 사람인데 원하시기만 하면 못 고치는 질병이 없고,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설교자이며, 모든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의 자손, 세상을 구원할 자라고 말합니다. 보아하니 자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가까이 대화할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꼭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거리로 나갔는데 이미 길 좌우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려면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아가고 싶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삭개오도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지위와 부를 이루어 성공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기 만족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저만치 앞에 있는 돌 감람나무(桑树)였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이 길을 지나갈 것입니다. 아무의 방해 받지 않고 예수님을 가장 세밀하게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돌 감람나무(桑树)에 올라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4절).


[눅 19:5-7]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는 돌 감람나무 위에서 예수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시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 자기를 우러러 보시면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시는 그 이름은 정말 친한 친구를 부르는 다정한 음성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오늘 하루 네 집에서 묵어야겠다!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면 절대로 자신의 집에 사람을 청하지 않습니다. 함께 식사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보통사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자신의 친구로 여기십니다. 어떻게 자기 이름을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했습니다. 예수가 죄인의 집에 들어간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잘 압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죄인이라 하고 자신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집에 들어오면 안 되는 사람인 세상의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하룻밤을 지내시겠다는 것입니다.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그가 물질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일 자신이 누구의 돈을 부당하게 취했으면 4배나 갚겠다고 말합니다. 절반의 기부와 4배의 배상은 그의 재산의 상당부분입니다. 물질은 자신이 가장 아끼던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고 자랑입니다. 돈으로 자신의 공허를 채우고자 했고, 세상에 돈보다 귀한 것이 없다고 했던 삭개오가 왜 그렇게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내어 놓는 용단을 내린 것입니까?

물질을 자랑하고 자기를 과시하는 것입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그의 이웃과 사회에 대한 책임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삭개오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누가복음은 말하지 않습니다.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 하나님은 자신을 구원받아야할 많은 인간 중에 하나, 평범한 한 인간, 친구로 자신을 받아주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받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시고 자신을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은 그를 미워했고 자신은 세상을 미워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자신을 미워하지만 자신은 이제 세상과 화해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받아주셨듯이 자신도 세상을 받아주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많은 부정과 착취로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아 왔는데, 이제 재물을 내 놓아 자신의 죄 많은 지난 삶을 청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반듯이 있어야 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루즈벨트(

罗斯福 )대통령은 인간의 기본권으로 4가지 자유를 말 했는데 1)표현의 자유, 2)신앙의 자유, 3)결핍으로부터의 자유, 4)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면서 인간이 인간다움을 성취하기 위한 基本요소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인간에게는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참 복잡하고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인 것처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성취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 우울증에 걸리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자살하는 원인이 됩니다.

빅터 프랭클(维克多 弗兰克) 이라는 심리학자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꺼이 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일꾼으로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사는 것을 가장 의미 있는 삶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을 위하여 자신의 재산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목숨을 드립니다.


[눅19:9-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그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삭개오에게 기쁨과 소망이 찾아왔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교회에 나가던 한 자매가 결혼 후 시댁 식구가 모두 천주교 성당을 다니기에 그녀도 시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말을 해도 다른 식구들은 인정하지 않았고 모든 생활이 뒤죽박죽이 되었으며 너무나 힘든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무렵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그녀의 딸이 온 몸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났습니다. 그 때 교회에 다니는 친정 언니가 구역예배를 드리러 간다고 하기에 언니에게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 저희 사정을 들은 언니의 구역식구들은 그녀의 딸을 위해서 21일간 연속해서 작정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감사하게도 딸의 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고 싶었지만 시댁 식구들 때문에 드러내놓고 교회에 다니지 못하고 몰래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일로 인하여 그녀가 교회에 나가고 있는 것을 시어머니가 알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으나 손주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목사님, 전도사님, 구역 식구들이 병원에 와서 기도해주시고 위로해주시는 사랑과 정성을 보시고 그녀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교회성전에 들어서는데 그녀는 친정엄마의 품에 안긴 듯,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기도시간에 주님께서는내가 너를 기다렸는데 왜 이제야 왔느냐?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동안 힘들고 지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게 해주셨습니다.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모든 것을 치유해 주시고.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소망과 꿈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매일 하루 세 번 씩, 친정 식구들과 시댁 식구들의 구원 문제를 놓고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셔서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으며, 친정어머니,  언니, 형부, 시댁 고모, 고모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여인을 하나님은 오랜 시간 기다리셨습니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예수님 앞에 나오므로 참 평안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보답으로 이 여인은 자신의 식구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예수님)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 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주님은 늘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준비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미 우리의 마음문 앞에서 나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너는 사랑받기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는 주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응답했습니다. 삭개오를 찾으셨던 예수님께서 오늘도 여기 앉아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나의 모든 단점과 지난날의 모든 죄 많은 삶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自尊心을 내려놓고 돌 감람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처럼 주님의 얼굴을 구하십시다. 주님을 자신의 집으로 즐거이 영접한 삭개오처럼 내 마음 속에, 나의 가정에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내가 당신을 환영합니다. 고백하십시다. 그리고 주님이 나의 삶에 인도자 되어 달라고 말하십시다.



 ※  나 눔

1. 세상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이 있나?

2. 나의 상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경험을 나누어보자.

3. 주 안에서 발견한 나의 인생의 의의 내지 목표가 있는가?

4. 서로 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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