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26-32  <씨를 뿌리는 사람>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는 유일하게 마가복음에만 있는 독특한 비유입니다.  

이 자라나는 씨의 비유에서 눈여겨 볼 것은,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노력하는 것과 별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뜻밖에도 농부가 씨를 뿌려놓고 "자고 깨고 하는 동안에 씨가 자라나는 것과 같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농부는 씨를 땅에 뿌렸을 뿐 즉시 일상으로 돌아가 하는 것이라고는 "밤낮 자고 깨곤" 합니다. 그래도 그 시간에 땅에 떨어진 씨앗은 역동적으로 움직입니다. "씨가 나서 자라"는 것입니다(27절). 농부가 모르는 가운데 씨는 땅에서 자라 충실한 곡식이 되고, 익으면 추수 때가 된다고 말합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얼마나 농사가 힘든지 잘 알 것입니다. 씨를 심은 다음에 물과 퇴비를 주어야 하고, 자라면 잡초도 뽑아 주어야 하는데, 그저 밤에 자고 낮에 깨는 동안에 씨가 자란다고 하는 말이 농부의 수고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고, 예수님은 농사의 ‘농’字도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농부의 그런 수고를 모를 리 없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수고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아무리 수고를 한다 해도 농사는 농부의 수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땅에 씨앗을 뿌리지만 사람 스스로가 그 씨앗이 움트고 자라며 마침내 열매를 맺는 모든 과정을 주관하지는 못합니다. ○또 다른 예로, 의사의 수술하는 재주와 수고가 고맙고 귀하지만, 더 경이로운 힘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력입니다. 농부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온갖 수고를 다하지만 씨와 땅의 생명력과 신비함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것입니다. 농부의 힘과 수고보다, 의사의 기술과 재능보다도 더 위대한 힘은 씨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경이로움이며 신비함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의 기르심 말고 중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그 하나는 ① [좋은 씨]이고 또 하나 ② [좋은 밭]입니다. 여기서 씨는 복음의 씨이며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씨를 뿌리는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농부는 종자를 잘 못 뿌리면 1년 농사를 다 망칩니다. 좋은 종자가 나왔다 해도 좀처럼 바꾸지 못합니다. 검증되고 나서 사용합니다. 그만큼 씨는 중요합니다.


▶ 씨가 중요합니다. 생명력 있는 씨라야 합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만일 여기에 사람의 생각과 경험이 개입되면 생명력을 상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생각이 개입되고 변질되고 주객이 전도 된다면 거기에서 생명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 한 때 인간줄기세포 문제로 우석 박사가 성공했느니 못 했느니 나라가 시끌벅적 하였습니다. 그 중심문제는 세포를 배양하는 과정에서 약간이라도 오염되면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오염 없는 세포배양이 그 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환경오염으로 아기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지요? 생명력은 100% 순수함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20세기 초에 유럽의 신학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그들은 聖經聖書라고 하며 문서비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많은 사람의 인식 속에 인간의 책으로 전락 되었습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사람이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현대인들은 성경책을 열어 읽고는 인간의 선행을 말하고 자비를 말하고 환경과 사회를 말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은 단지 인간의 주장을 지지하고 증명해 주는 보조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때 바르트가 주장한 것이 말씀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무디 선생은 처음에 워싱텅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교회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지방 방언 때문에 자신의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보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는 좌절했습니다. 그는 시카고에서 다시 주일학교 선생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의 열정은 많은 주일학생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학생들이 거듭나지도 변화되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설교의 노력은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어느 날 그는 스펄전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의 설교 속에서 그는 두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① 하나는 온전한 헌신이었고, ② 하나는 그에게 풍부한 성경지식이 있고, 온전히 성경말씀만을 전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씨를 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순수한 복음의 씨를 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씨를 심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을 위하여 심은 사람은 세상의 것을 거두게 될 것이고 하늘의 것을 심은 사람은 하늘의 상급을 거둘 것입니다. 우리가 씨를 뿌린다 할 때, 말씀을 전할 때, 그보다 앞서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밭에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는 것입니다. 오염 되지 않은 씨를 선별해야 합니다. 


● 아들이 중국에서 있는 동안 중국 학교에도 다니고 영어로 공부하는 학교에도 다녔습니다. 중국어와 영어를 구사합니다. 지금은 광나루 장신대 신학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자신이 중국어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장차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합니다. 영어와 중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데 더 힘쓰는 것이 너의 장래에 더 큰 힘을 얻고 형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어찌 단지 신학생의 문제이겠습니까? 사람이 말씀으로 새로워지고,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고, 말씀을 전하는 일보다 귀한 일은 없습니다.


● 많은 선교사가 그리고 많은 교회가 사업과 활동에 관심을 많이 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선교를 한다하며 각 나라에 나가 봉사를 합니다. 상수도, 병원, 학교, 집을 지어 줍니다. 돈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갑니다. 이 모든 일보다 중요한 것이 말씀을 심는 것입니다. 저는 중국에서 저들에게 돈으로 사람을 사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선교사는 성경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현지 동역자와 인간관계가 만들어지면 사역을 위하여 경제적인 요구를 한답니다. 교회 건축, 차량, 시설에 필요하다 공공연히 요구합니다. 돈으로 인간관계를 이룬 사람은 결국에는 돈 잃고 사람을 잃게 될 뿐입니다.


▶ 땅이 중요합니다. 농부가 "밤에 자고 깨고 하는 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씨를 품은 땅은 농부가 밤에 자고 깨고 하는 중에도 열심히 활동합니다. 땅이 스스로 자라나게 합니다. 농부가 얼마나 노력했느냐 하는 점도 중요하지만 땅이 열매를 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그 땅이 어떤 땅이냐 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땅의 힘, 이 땅 심 때문에 농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리 씨가 좋고, 농부의 수고가 있어도  땅이 좋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땅의 힘에 비하면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아주 약과에 불과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매우 좋은 말씀을 뿌리고 가르친다 하더라도 충성된 일꾼이 아니라면 결국 그는 세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 80 가까우신 여목사님이 한 청년을 아들처럼 키워서 신학교를 보내고 한국에 까지 와서 공부를 하게 했건만 결국은 하지 말라는 피자집을 하다가 실패해서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 땅이 좋아야 합니다. 땅이 부드럽고 비옥해야 합니다. 부드러운 땅, 기경할 것도 없이 푹신푹신한 땅, 이런 땅은 씨를 잘 받아들입니다.

[마태복음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온유함이란 이런 성품입니다. 좋은 땅입니다. [사모하는 영]이 있어야 합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하여 필기하며 【뵈뢰아 교회】의 성도들처럼 ‘과연 그것이 그러한가?’ 성경을 살펴보는 심령이 날마다 신앙이 자라갑니다. 주일날이 되었으니 교회에 오고, 설교 말씀 시간에 졸고, 다른 생각하며, 교회 문을 나서면 오늘 설교가 무엇인지 다 잊어버리는 사람은 팍팍한 땅의 사람입니다.

  

씨는 자라 갑니다. 말씀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성장하며 결실을 맺습니다. 정상적인 신앙은 지속적인 변화 와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0년 20년이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라면 문제가 많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말씀을 먹지 않고 산다면 참 신기한 일이고, 또 말씀을 먹기는 열심히 먹는데 건강하지도 않고, 삶에 활력도 없고, 날마다 변화되어지는 역사가 없다면 그 또한 중대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성도는 말씀에 의해 새로 빗어지고, 말씀에 따라 믿음을 얻고 깨달음을 얻어 자유함을 얻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에는 단계가 있고 그 단계에 따라 자라가는 것입니다. 


[막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성장 과정이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싹이요, 다음은 이삭이며, 그리고 마지막은 잘 익은 곡식이 그것입니다. 그만큼 과정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어떤 하나의 과정을 건너 띄면 제대로 된 식물이 되지 못합니다.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때때로 이런 단계나 시간들을 앞질러 가고 싶은 욕구나 욕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질러 중직이 되고, 준비 없이 선교지에 가려고 한다든지, 자신을 스스로 특별한 영적 계시를 받은 자로 자처할 때 중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장하는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순간까지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시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8절) 끝에 흥미 있는 한 가지는“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 했는데 바로 추수를 말하지 않고 “열매가 익으면”이라는 말이 특별히 더 있습니다.

가을에 농부가 추수철이 다가오면 마지막 몇 칠의 「가을의 따가운 햇볕」이 그리도 중요한 것을 봅니다. 그 몇 칠의 햇볕이 있고 없고 이에 따라 곡식은 쭉정이가 되기도 하고, 알곡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 저는 저의 아이들이 이렇게 센스가 없을까?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둔한가? 답답하기 말할 수 없었습니다. 씨에서 싹이 나고, 이삭과 열매를 맺는 것,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임입니다.


때가 이르매 어느 날 돌아보면 이렇게 컸구나! 놀라는 것이고 [농부]이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고, 초신자를 양육하는 [목자]의 심정입니다. 열심히 가르치고 양육할 때는 답답하고 어느 날에 사람이 될까?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먼 훗날에 하늘의 상급을 믿고 묵묵히 전진할 따름입니다.


추수의 때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주님이 돌아보시는 날 아브라함에게 고난의 때가 끝나고 자녀의 축복과 재물의 축복의 문이 열렸고, 때가 이르매 야곱이 많은 재물과 자녀를 거느리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은 다윗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짧고 짧은 인생 과정에 무엇을 심으며 살고 있습니까?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많은 재물과 높은 직책, 세상에서의 호의호식함으로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추수 때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 자리입니다.

[시126: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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