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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1~7 <믿음으로 행하라>
히브리서 11:1~7 <믿음으로 행하라> 2013. 6. 9
▶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는 땅이 3년6개월의 가뭄으로 말라 비틀어졌을 때 갈멜 산에 올라 기도합니다. 수차례의 기도 후에 작은 구름을 보고 사환에게 말합니다. 빨리 내려가라. ‘이스라엘 왕에게 빨리 도성으로 돌아가라.’ 말하여라 그는 기도할 때 이미 큰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비를 내려 주소서! 우리는 기도하면서 이미 그 응답을 보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히 11:1-2] 믿음은 1)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2)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 합니다. 1절의 증거는 evidence, 곧 확증 혹은 보증, 담보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이 말씀은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무엇으로 압니까? 믿음으로 안다는 겁니다. 믿음이 이런 것들의 물증이라는 겁니다.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일입니다. 네가 하나님이 창조하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 보았다 고로 믿는다. 」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기 때문에 압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고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틀림이 없습니다. 천지 창조에 대하여도 천국의 존재도 알 수 있습니다. 보지 못하였더라도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만 믿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 “바라는 것들의 실상 ” "실상"이란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실제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것에 대해 이미 받았다고 여기면서 기도하면서 자기가 바라는 것을 실제 이루어진 것처럼 생생하게 그리면서 기도하면 그대로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하고 기도하는 것들에 대하여 생생하게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뻐하고 감사하면, 그러면 반드시 그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2절의 증거는 approval, 곧 인정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선진들은 믿음으로써 누구에게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예배를 빠짐없이 드린다고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요. 헌금을 많이 한다고 믿음이 좋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기적과 체험이 많다고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가 주님과 3년을 동행하였고, 자신의 집과 삶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많은 기적을 보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최후에 예수님의 고난의 자리에서 모두들 약해져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믿음은 믿음입니다.
● 누가 과연 확실한 믿음, 변치 않는 믿음, 불굴의 믿음, 인내의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한 때 저 스스로 믿음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저를 곰과 같다고 늘 말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드리기 힘든 나 자신을 드렸고, 중국생활 내내 보는 이 없고 교회가 없어도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성경지식이라면 그래도 빠지지 않을 정도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중국의 아파트 7층에서 한 6개월 잘 예배를 드렸는데 사람들이 몰려오고 40명가량이 되었을 때 6층의 사람이 올라와서 조용히 할 수 없느냐? 가스관 파이프를 타고 소리내려가고 건축 설계가 잘못되어 아무리 방음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혹시 고발이라도 되면 외국인 선교사 신분의 저는 그날로 추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찌 되고 그동안 사역, 가정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저는 심히 두려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믿음의 선진으로 가장 먼저 나오는 사람은 아벨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 되고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됐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아벨은 양의 첫 새끼들과 양 떼의 기름을 제물로 가져왔지만 가인은 농산물을 드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인정하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합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유목 생활을 하였으니 양으로 제사를 드리고 농사를 지었으니 땅의 소산물로 제사 드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제사를 드렸는가? 입니다.
○ 아벨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가장 귀한 것으로 흠이 없는 것으로 기쁨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 가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일 년 농사 잘 지어서 풍요한 가운데 대충 창고에서 꺼내어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제사를 드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하나님을 敬畏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敬은 존경함이고 畏는 두려워함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라야 합니다. 시간이 있어 나오고 시간이 바쁘면 나오지 않는 그런 예배는 받으심직 하지 않습니다. 주의 전에 나올 때에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밤늦도록 게임하다가, 혹은 영화 보고,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늦게 돌아와 잠이 부족해서 졸음으로 예배드린다면 은혜 되지 않을 것입니다.
○ 주일날도 온갖 다른 일들로 마음이 빼앗겨서 형식적인 예배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좋은 것으로 나의 최선을 다하는 정성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 헌금을 해도 구별된 헌금을 해야 합니다. ○찬송을 해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내 편리한 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유 1:14-15]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은 365세를 살았는데,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그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에녹의 삶에는 특별한 사건이 있지 않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나라와 심판을 준비하는 삶을 살며 구원을 전파하며 기도하는 삶을 산 것 뿐입니다. ‘므두셀라’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라는 의미입니다. 정확히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하나님은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에녹은 자기 아들 므두셀라가 죽으면 인류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에녹은 심판이 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심판의 날이 올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며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살았음을 말합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라 하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에녹의 믿음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이 주인 된 삶을 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직장과 산업이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이 되고 확장을 가져오는데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장과 산업이 술자리와 세상의 부질없는 말로 마무리하는 직장이 아닌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와 예배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직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다 할 때, 아벨과 에녹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존재 앞>에 경외함과 진실한 믿음의 소유자가 된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내게 주어진 부르심을 감당하는 삶을 말합니다. 믿음은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믿음의 일군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에게 필수적인 요소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믿음으로 꿈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믿음의 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가능한 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은 가능성이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 노아에게 주어진 방주를 짓는 일이 그랬습니다. 그는 평생을 웃음거리가 되어 살았습니다.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신실성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습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 되는 것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신실성>에 의하여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에 근거해서 우리는 우리의 간구한 것, 하나님의 뜻에 따른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의 칭찬이 아닌 하늘의 상급을 구하여 살아야 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처음에는 홍해를 갈라주시어 건너게 하셨지만 요단강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봄이 되어 레바논의 눈이 녹아 창일한 요단강 물속으로 제사장들은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라. 백성은 그 뒤를 따르라 하십니다. 그들이 직접 요단강물에 발을 내 디딜 때에야 비로소 위로부터 흐르는 물이 멈추고 쌓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적인 가능성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강물에 들어서니 비로소 강물이 멈추었습니다.
○ 여리고성 앞에서 이르러 너희는 매일 성을 한 바퀴씩 돌라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 하십니다.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라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혹자는 말할 것입니다. 그런 바보짓이 어디 있는가? 그런다고 요단강이 멈추어 쌓이고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가? 그게 믿음이란 말인가? 맹신자들이다. 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상식을 가지고 살라 할지도 모릅니다.
◎ 일제 때 중국 봉천에서 홍대위라는 목사님이 선교사로 일할 때 간증입니다. 17세난 딸이 있어서 한국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보내야 하는데 차비 50원이 없습니다. 그 당시 50원이란 지금 몇 십만 원이 될 줄 압니다. 남에게 꾼다는 것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 50원을 주십시오.’라고만 기도 했답니다. 그러자 딸이 비웃기를 ‘아버지, 돈 50원을 달라고 무턱대고 기도만 하면 되나요. 어디서 꾸어야지요.’ 하더랍니다. 그래도 계속 믿음으로 기도하는데 딸이 떠나기 전날 어느 여자 미국 선교사님 찾아와서 "어제 본국에서 돈 100원이 부쳐 왔는데 밤중에 잠은 오지 않고 자꾸 홍목사님에게 50원을 갖다 주라는 느낌이 들어서 여기 돈을 가져왔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목사님 너무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딸을 데리고 기차를 타고 한참 가는데 중간에 내려서 배를 갈아타는 코스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뱃삯이 6원인 것을 미쳐 계산을 못하고 50원만 달라고 기도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6원을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하니까, 딸이 또 비웃기를 ‘아버지. 기차 안에서 돈이 나오겠느냐?’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종착역에 다 왔을 때 자기 교인이 그곳에 다니러 왔었는지 차창 밖에서 '목사님' 하고 부르더니 ‘이거 얼마 안되지만 가시다가 식사하세요.’라고 돈을 주는 데, 보니 6원이더랍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없는 것도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가장 큰 장애는 하나님의 뜻인가? 물으면서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듣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십니다.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이게 될까? 이 기도가 응답될까? 주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불신으로 기도하면 안 이루어집니다. 안 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위대한 겁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못 할 일은 없다는 겁니다. 믿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내 마음에 그리고 내 마음의 그림을 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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