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1-10   <네 집에 유하리라>    2014. 11. 23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생물을 지으실 때 모든 생물에게 생존에 필요한 갈급함과 욕구를 주셨습니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고, 짝짓기 계절이 오면 성적욕구를 주시어 자신을 닮은 종족을 번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갈증」이나「배고픔」이라는 경보장치를 주셔서 우리 몸이 필요한 음식을 찾게 하셨지요. 그런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불규칙한 생활습관과 스트레스,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생체신호가 둔해져있답니다.

어떤 사람은 몸에 땡기는 음식이 몸에 좋은 것이다. 가리지 말고 먹어라 하지만, 어디 가리지 않고 음식을 먹게 되나요? 시장에 가면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재료를 사서 먹게 되지요. 사람에게 욕망은 좋은 점도 있지만, 신이 아닌 인간은 항상 자기중심적 사고(Self-centered)를 하는 경향이 있어 자신의 욕구, 욕망, 욕심으로 부터 늘 자유롭지 못하고 늘 잘못된 헛된 욕심에 사로잡힐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치킨,피자,라면,과자,밀가루음식,만두,튀김 이런 음식들을 좋아하는데 우리의 몸에 매우 해롭습니다.


● 최근에 아내가 체질 테스트를 했는데 자신이 알고 있던 체질과는 아주 다른 목양 체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수산물을 그토록 좋아하고 즐겨 먹었는데 이것이 몸을 망치고 있었어요. 육체의 욕구가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요. 고기가 좋다고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도 아니고, 채소가 좋다고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늘 자신의 욕망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야 하고, 바른 욕망도 절제되어질 때 참 평안함과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욕구, 절제된 욕구를 가져야 합니다.

○ 사람은 그런 욕구 외에도 영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찾는 영적 목마름을 느끼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는 익숙하지만 영혼의 상태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런 영혼의 갈증을 부러 잊고, 대신 술과 성적 쾌락과 세상의 만족으로 이 인간의 욕구를 채우려 하고 있어요.

○ 그리고 영적인 욕구는 열정만 뜨겁다고 채워지는 것인가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영적인 삶이 [건강하고], [평정심]과 [항상성]을 유지하고, 축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까?

○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평탄하고 형통하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더라구요. 일이 풀리지 않고, 건축을 하는데, 겨울 날씨는 추워지는데 날씨가 돕지 않는구나! 탄식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세상에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것이 이것입니다. 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O,X 처럼 분명하게 답이 보이면 얼마나 좋습니까? 욥은 무수한 고난을 겪으면서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말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지라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일단 맡겼으므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요한복음 7:37]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 삭개오에게 위대한 점은 자신의 영혼의 갈증에 정직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그는 세상의 풍요만을 추구하며 살아 왔으나 자신이 진정으로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용기 있는 결단을 했습니다. 삭개오는 어느 날 예수님께서 자기 집 앞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달려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고, 키가 작아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이때 세관장 삭개오는 과감하게 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서 그 앞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서라면 뽕나무라도 올라가야 합니다. 자신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목말라하고 배고파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굶주린 심령으로 갈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만큼 주님은 당신을 만나주시고, 목마름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설교시간이 한 시간 될 때도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말씀을 사모하여 잊지 않으려고 필기도구를 가지고 기록하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진리를 사모하는 모습입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순수함을 보십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에 오른 삭개오의 마음을 아시고 그를 친구처럼 가까이 하십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 솔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영혼의 소리에 정직하게 귀 기울이고 반응하여야 합니다.


●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하여 평범했던 양부모의 평생 재산을 등록금으로 다 소진시키며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인생의 한 점에서 이 길은 아니라는 결정으로 자퇴를 하게 됩니다. 그 이후부터는 그는 그가 배우고 싶었던!! 서체(calligraphy)를 배우게 됩니다 ~~~ 10년 후에 역사적인 사건이 생겼지요.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 맥킨토시를 개발해 내게 됩니다. 그는 서체을 선택한 것이 당시에는 인생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뒤돌아보았을 때 이를 그는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고 말합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에 충실하지 않은 것입니까? 더 부요한 삶을 원하고, 더 안전한 삶을 원합니다. 그래서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불확실과 고난의 환경에 자신을 내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과 위대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 한 사람이 지인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한 후 ‘레스토랑 입구’에서 화장실에 간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레스토랑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왠지 불편하고 찝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 빈 의자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조금 후 그 건물 3층에서 도색작업을 하던 사람의 실수로 ‘페인트통’이 식당 문 앞으로 그대로 떨어졌고, 그 곳은 페인트 범벅이 되었습니다. 운이 없었다면 페인트통에 머리를 맞아 큰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내면에서 울려 퍼지던 불쾌한 감정의 신호가 그를 구한 것입니다.


● 얼마 전 친구가 지나는 길에 나를 찾아오다가 차가 접촉사고가 나서 마음도 상하고 시간도 지체 되어 돌아갔다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제가 사임한 교회에 지원서를 내볼까 묻는 전화를 해 왔습니다. 저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만남의 불발과 전화, 불편한 느낌은 하나님의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마음의 신호’를 무시한다면 결국에는 훨씬 더 큰 문제와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9:5]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가던 길을 멈추고 죄인을 돌아보신 주님, 사람들의 耳目에도 불구하고 삭개오의 집에 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계시는 분입니다. 네가 나 보기를 원하는구나! 네가 진리를 사모하는구나! 네가 네 자신의 체면을 돌아보지 않고 나무 위에 올랐구나! 자신 길을 생각하지 않고 길가의 나무 위에 삭개오를 돌아보시는 주님이 감사합니다.


▣ 저는 지하철에서 밀려들고 부딪치는 사람들, 길을 방해하는 사람이 짜증나고, 주말만 되면 너도 나도 배낭을 지고 어디를 그렇게 가는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인간들’, ‘놀기만 좋아하는 한심한 인간들’ 하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 주님은 내 내면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들을 이해하고 포용하여라. 저들을 사랑스런 마음으로 바라보아라.

◯ 우리는 내 갈 길이 바빠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일이 왜 일이 이리 엉망이냐? 왜 기도하는데 돕지 않으시는가? 원망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맡기고 순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뜻을 구하고, 그 분이 직접 행하심을 살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동하시는 시간은 나 자신이 자신을 드리는 용기 있는 행동이 있고 부터입니다.

[누가복음 19:8,9]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죄 많은 인간을 죄인이라 하지 않으시고, 책망 받을 일 많은 인간을 책망하지 않으시는 것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만난 감격이 삭개오에게 육의 것을 추구하던 갈망에서 영의 축복을 사모하는 갈망으로 바뀐 것입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난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죄악된 육적인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으로 출발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결단에 예수님은 즉시 놀라운 축복으로 응답하십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주님의 격려 위로하시고 인정하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웁니다.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얻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지위에 올랐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가졌어도 삭개오와 같이 허전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참 평안과 행복은 아버지 품안에 있음으로 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는 순간에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선언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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