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1-11  < 빛의 아들, 낮의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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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5:2-5]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한국 국민소득의 5%가 성매매에 쓰인다 합니다.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쾌락의 대가로 소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온갖 범죄들이 생겨집니다. 거리에는 술집들이 문을 열고 몸을 파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사람을 기다립니다. 아마 밝은 대낮에는 부끄러운 모양입니다. 밤에는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술집이나 댄스홀 같이 조명이 어두침침한 곳으로 사람이 몰려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어두침침한 곳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곳 중에서 건전한 곳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일들은 항상 사람들이 모르게 뒷구멍으로 이루어집니다. 정치계, 경제계가 대 자본에 의해 놀아납니다. 학계, 언론계, 종교계, 체육계, 법조계 등을 막론하고 어두운 구석이 없는 데가 없습니다. 부정과 부패, 불의와 거짓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사람의 죄가 밝혀지기 전에는 누구나 정의롭고 정이 많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좋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은 좋은 사람이다 좋은 면만 기억하여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 어두움의 일이 무엇입니까?  부정부패 음란만이 어두움의 일입니까?  영적 나태한 신자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5장]에 보면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잤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나태함에 빠져있었습니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삶, 하나님과 벗하는 삶이 아닌 세상과 벗하는 삶을 우리는 정욕대로 산다고 말합니다.


송나라 때 한 나무꾼이 신선 바둑 두는 것을 보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보니 도끼자루가 다 썩었더랍니다. 그리고 집에 와보니 머리가 백발이 되었더랍니다. 

바둑 자체가 나쁜 것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이 중요한 일이고, 필요한 일입니다.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먹고 마시는 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땅히 할 것을 해야 하고,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예고 없이 임합니다. 홀연히 임하여 자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각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가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찾아온다." 고 했습니다. 왜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 멸망이 임하는지 아십니까? 세상은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중독성이 있습니다. 내가 인정받고, 나의 만족을 성취하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즐거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자기인생의 주인이 되어 정욕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게 주신 귀중한 시간을> 허황된 꿈에 허비하고, 나만의 육신적인 만족과 기쁨을 추구하며 무절제한 생활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의 날이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만, 빛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다. 도적은 어두움에 거하는 자들에게나 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제일 먼저 빛을 만드시고, “좋았더라.” 했습니다. 만물이 자라고 그 색깔이 너무 곱습니다, 죄를 짓고 에덴을 떠나 [창4:20이하] 그들은 성을 짓고, 옷도 만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어떤 이는 음악에 재질이 있어,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 되고, 철을 만드는 조상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철이 만들어지고 더 좋은 낫과 칼도 만들었을 것입니다. 창과 화살도 만들었을 것입니다. 왜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신을 보호할 성을 만들어야 했고, 무기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야 하는 음악이 필요했습니다. 더 풍성한 수확을 위하여 철이 필요했습니다. 다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큰 성을 지었음을, 아름다운 옷을 만든 것을, 가축을 온순하게 길들였음을, 내가 음악을 잘한다고,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작은 수단,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창 6: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11:1-4]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노아의 후예들은 홍수가 임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바벨의 도시를 건축하고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자신들의 생각과 원하는 대로 하늘에 닿도록 탑을 세웁니다. 벽돌 만드는 일, 성읍을 건축하고 탑을 세우는 일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1)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하나님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고자 한 것이고,

2) 인간들이 하나님처럼 자신들의 위대함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거짓의 아비 사탄은 뱀의 모양으로 이브에게 찾아와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인가? 먹어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어 네가 더 많은 자유더 많은 기쁨을 얻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를 숭배하고 칭찬하고 앙망할 것이다. 네게 아무런 해 됨도 없을 것이다. 괜찮아! 말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상하게 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종국에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먹었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 사탄은 뱀의 모양으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친한 벗을 통해서, 혹은 가족의 입에서 들려지기도 합니다. 아니면 사회와 국가의 강압적인 요구로, 달콤한 언어로 말하기도 합니다. 네 영혼을 나에게 팔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줄 것이다. 네가 풍족해 질 것이다. 행복해 질 것이다. 더 많은 자유를 얻을 것이다. 거짓의 아비 사탄은 인류를 속여 왔고, 똑 같은 방법으로 여전히 인류를 속이고 있습니다.


▶ 핵을 발견한 사람은 인류의 병 치료와 발전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진보입니다. ▶ 전기를 발명한 사람은 인류에게 어두움의 공포에서 자유를 가져다주고 편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전기가 없었더라면 세상에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등 아래서 밤새 작업하므로 인해 많은 사람의 삶에 규칙이 무너졌습니다. 마을에 있는 가로등으로 말미암아 농사가 망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압전류가 흐르는 곳에는 백혈병이 많이 생깁니다.

▶ 컴퓨터의 발명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지식과 편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동시에 음란물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럽혀서 말로 다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핵도 전기도 컴퓨터도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진정으로 인류의 행복을 가져왔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핵도 전기도 컴퓨터와 모든 과학의 성과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람에 의하여 쓰여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발명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부정하게 합니다. 인생은 참으로 어리석고 허무한 존재입니다. 이 모든 일이 헛되고 헛된 일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고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입니다. 이웃에게 도움 안 되는 일이고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나 유명인사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남이 못하는 것을 하고 싶습니다. CEO, 박사, 교수, 정치가? 사람은 자신의 온 생애가 영예와 부귀 존경받는 일로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아름다운 생애를 꿈꾸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이 모든 세상의 옷을 벗어 버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나와야 합니다. 세상의 면류관을 쓰고 교회에 나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칭찬받고 자랑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집니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요 21:15]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지요? 그런데‘이 사람들보다’(다른 사본에는) ‘이 모든 것들보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더 사랑하고 귀한 것이 있다면 이를 두고 성경은‘간음한 여인이여!’라고 말합니다.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영광 존귀를 스스로 취하지 마십시오. 사람에게서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부와 귀가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앞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존귀하게 하는 일에 힙을 써야 합니다. 존귀와 영광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칭찬과 영광을 구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존귀가 있을 것입니다.


[살전 5:8-9]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낮에 속한 사람의 삶>은 어떤 사람입니까? 잠자지 않는, 근신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말씀에 불순종할까봐 염려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하여 힘쓰고,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는 삶입니다. 다 똑같이 먹고 마시고 하는 가운데 다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여 사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북경에 출장을 간다 하더라도, 고객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홍콩에 여행을 떠난다 하더라도, 기차 안에서도 사막에서도 ‥ 내 마음은 하나님의 일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심령입니다. 사모하는 심령은 그날을 기대하여 깨었는 사람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창조의 마지막 날을 하나님께서 안식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제7일째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뒤에 우리는 주의 날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이는 이 날을 “주일”이라고 해서 모이는 데,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늘 소망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장차 주와 함께 하는 부활의 날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누가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말하겠습니까? 사업가? 교육자? 대학교수? 직공이라 말하겠습니까? 한 신실한 신자인 대학교수가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냐? 물을 때마다 나는 교수라고 말했다. 진정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은 무엇일까? 어쩌면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나를 대학교수라고 말하는 것보다 아이 돌봄이 라로 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정말로 많은 관심을 들이고 힘쓰는 일이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이고 주일학교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아닌가? 앞으로 나의 직업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 우리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대하며 그 깊이와 섬세함 아름다움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그 저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모습, 인간에게 영광을 돌릴까 두려웠던 까닭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나의 지식을 드려야 합니다. 나의 재물을 드려야 합니다. 나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리는 백성은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십시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믿는 백성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서로 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형제가 환난에 처해 있을 때,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십시다. 이것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고 너를 위한 삶입니다. 바로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주의 날에 소망이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討論

1.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

2. 나는 육신에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는가?

3. 나에게 아직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4. 주님 앞에서 신앙인으로서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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