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6:11-16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삿 6:3-5]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 떼 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6절)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하였다. 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편없이 약합니다. 농사지으면 다 빼앗기고 양과 소도 남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들의 우리의 영과 육을 상처를 내고, 파괴시키고, 죽게 하며 가정을 파괴하는 적들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아마 이스라엘의 모든 이가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도 나서서 싸울 사람, 해결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에는 "기드온"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쓰시고자 사자를 보내십니다. [삿6:12]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사실 기드온은 대단한 용사가 아닙니다. 한 작은 지파에 속한 가족의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에 불과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를 큰 용사로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고, 하나님은 기드온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는 뜻이 계셨습니다.

사실 기드온에게 "큰 용사" 라는 말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용사도 아닙니다. 자신이 용사고, 아니고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오로지 관심사는 ‥‥

[삿 6: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우리의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고 계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불행이 닥친 것입니까? 왜 구원하지 않으십니까? 구해 주시려면 언제든지 구해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 앞에 투덜거리지요. 좀 일찍 하나님은 나의 가정의 문제를 풀어주실 수 없었는가? 꼭 이 지경까지 이르러야 하는가? 하나님은 대답이 없습니다. !!

[삿 6: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삿 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 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삿 6: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아무리 물어 보아야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설명해야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요구하시는 한 가지는 가서 <네가> 가서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이 말은 '너의 힘은 곧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너의 힘이 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힘을 의지하고 일어나면 지금 무엇이 두렵겠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이 말씀을 아직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적과 싸우려면 하나님이 내게 큰 군사를 보내 주시는지 큰돈을 주시는지 뭔가 구체적인 방책을 보여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드온이 여전히 못 알아듣자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능력과 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있습니다.

큰 용사는 나에게 재산이 많고, 지식이 많고, 재능이 많아서, 배경이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참 큰 용사는 세상에 기댈 아무 것도 없지만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되는 것입니다.

미디안, 아말렉과 전투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모여 들었습니다. 32,000명이라는 많은 숫자가 모여듭니다. 그러나 아말렉과 미디안 군사들에 비하면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저 미디안과 아말렉 군사들은 바다에 모래처럼 많아, 골짜기에 진치고 있는 저들의 모습이 메뚜기 떼와 같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삿 7:2,3]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우리는 사업을 할 때도 적은 자본보다는 많은 자본이 더 유리 하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적은 수보다는 많은 수로 일하기가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일을 할 때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효율적이다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전쟁을 할 때는 많은 인원과 우수한 장비가 충분히 동원되어야 승리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은 먼저 돌아가라 하십니다.

1) 왜 하나님이 수다한 이스라엘 지원병들을 그대로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 자기 자랑 않게 하시려고, 자기 힘으로 이루었다고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한 분만으로 ‥‥

미국 대통령 선거 때의 일입니다. 어떤 한 사람의 소감입니다. 이 선거 과정에 있어서 투표가 되기 전에 이제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 고어와 부시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렇게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두 사람의 토론이 시작되면 전세는 압도적으로 고어 쪽으로 기울 것이다. 토론은 고어가 일방적인 게임으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재미나는 것은 토론이 끝나고, 미국에 청중들을 대상으로 당신들이 투표할 때 고어를 투표 하겠는가? 그에 대해서는 반반 비슷하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토론은 압도적으로 고어가 이겼다고 하는데, 찍을 때는 사람들이 비슷하게 나온 겁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 좀더 조사를 해 보니까 고어가 너무나 말을 잘하니까 얄밉다는 겁니다. 부시는 좀 뭐가 모자라는 것 같아 오히려 호감이 간다는 거죠. 사람들은 잘나고 유능한 사람을 좋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쓰시는 사람들을 그는 자기의 부족을 알고 엎드리는 겸허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잘나고 못나고 를 보시지 않습니다.

먼저 전쟁을 두려워하는 20,000명이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수한 두려움들이 늘 찾아옵니다. 건강의 두려움‥‥, 노년의 두려움‥‥, 경제의 두려움‥‥, 세상 환란의 두려움‥‥, 사고의 두려움 ‥‥ 있습니다. 이 모든 두려움의 근원은 하나님을 떠난데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함에 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내 안에 믿음이 없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고,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방해하는 사탄이 가져다주는 감정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경각심을 가지고 물을 마실 때도 신중한 300 명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전쟁에서 소집된 32,000명 중에 31,700 명은 돌려보내고 300명만 남겨서 미디안을 상대로 전쟁을 하게 합니다.

☆ 다들 떠나고 300 명만 남았습니다. 또 여기서 선택된 기드온의 300명 용사들은 자긍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온전히 드린 헌신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왜 우리들만 남아 싸워야 하느냐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 300만 남아서 싸울 수 있겠는가 두려워하거나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그 분의 방식대로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내 부족함을 알고 또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의뢰할 줄 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가 겸손하다고 그래서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을 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또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자기의 연약을 알기에 자기의 부족을 알기에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 함은 자신의 방식과 생각을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의 하나님의 도우심에 있고,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유일한 힘과 소망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도자‘디엘 무디’는 모세의 일생을 세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모세가 모두 몇 년 살았죠? 120년, 그것을 세 단계로 나누면 처음 40년 중간 40년 마지막 40년,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의 처음 40년 애굽의 궁중에서 왕자로 자란 40년입니다. 처음 40년 왕궁에서 모세는 자기가 굉장한 인간인줄 착각 하면서 살던 때입니다. 두 번째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의 시간입니다. 광야의 삶 속에서 모세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처음에 나는 굉장한 인간일 줄 알았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볼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아는 단계입니다. 마지막 40년은 하나님이 모세보고 ‘너 겸손해 졌구나! 내가 너를 붙들어서 쓰겠다. 너 내 백성을 이끌어내라’ 하십니다. 모세는 너무 겸손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나 이제 못해요. 아무것도 못해요 정말 못해요. 전 말도 어눌하고요. 이 백성을 설득할 수도 없어요. 비로소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애굽으로 갑니다. 결국 그는 남은 일생을 하나님께 드려 순종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사기7:9]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2) 하나님은 우리를 파송하시고 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300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밤에 일어나 네 적진을 치라. 내가 그 적들을 네 손에 붙였다. 기드온은 말씀을 믿고 따릅니다.

(놀라운 사실은) 따르는 자들도 그의 말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순간 그들 300명은 강한 군사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정병은 자기의 연약을 깨닫고 엎드려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순간이 가장 강해지는 순간입니다. 바울은 내가 약할 때 나는 참으로 강하다. 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한 찬송가; 부흥사 DL무디 목사의 그 유명한 찬송가 인도자였던 생키(大卫·孙盖)가 여객선을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신문에 그의 사진을 자주 본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그 분의 작곡인'선한목자 되신 주여'를 불러달라고 졸랐다. 생키가 그 찬송가를 부르기를 마치자 한 사람이 다가 왔다. "생키 성생님, 남북전쟁 당시 북군으로 참전한 일이 있습니까?"

"내 있습니다." "저는 그 때 남군으로 참전했는데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북군의 파란 복장을 입고 있었고 그날 밤이 만월이었는데 제 사정거리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겨냥해 방아쇠를 막 당기려고 하는데 당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밤에 부른 그 찬송이었지요. 그런데 제 어머니께서 그 찬송을 자주 부르셨거든요. 당신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을 알고는 도저히 당신을 쏠 수가 없었습니다." 생키는 너무 감격하여 자기의 옛적을 품에 힘껏 끌어 앉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라 내마음이 그를 의지하니 그가 나를 도왔도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크게 기뻐하고 내가 내 노래로 그를 찬양하나이다(시28:7)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위로부터 주시는 하늘의 힘을 함께 더하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헌신이 무엇입니까? 살고 죽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과 드림이 없이 새로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드온과 300 용사는 전쟁을 경험한 일도 없었고 군사 훈련을 받아 본 일도 없는 농부였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나팔과 빈항아리 그리고 횃불이었습니다. 항아리를 깨트린 것은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나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횃불을 들고 흔든 것은 어둠의 세력을 내쫓고 광명천지를 만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숫자로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함으로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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