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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3:1-10 <연약함을 통한 능력>
고린도후서13:1-10 <연약함을 통한 능력> <我们软弱,你们刚强> 2012. 9. 9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믿음에 있는지 시험하여 확증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확신이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자세히 살펴서 그 믿음을 확증하라는 것입니다. 확신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함께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수없이 다니고, 성경을 외우고, 묵상하고, 많은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의 삶 속에 예수가 계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있는지 시험하여 확증해야 할 이유는 아직도 은혜 가운데 거하지 않는 자입니다. 아직도 죄로 말미암아 주의 얼굴을 뵙지 못한 사람 얼굴에 수건을 덮은 사람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많은 성도들이 이런 <내적 체험>이 없는 피상적인 신앙인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때는 그리스도 안에 어느 때는 그리스도 밖에 사는 사람은 참 위험한 사람입니다. 혹시 환란이나 어려움이 생긴다면 떠나갈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내적 체험> 이 없는 피상적 신앙의 사람은 데마와 같이 세상으로 다시 나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 자신이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성경을 잘 알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실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과 착각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마지막 천국 문 앞에서 나는 너를 모른다 하다면 참으로 슬픈 일일 것입니다. 》
오늘날 세상의 불신자나 믿는다는 사람이나 겉모습을 보고 믿음이 있다 없다. 평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은 물질과 성공입니다. 똑같이 교회 안에서도 많은 사람의 추구하는 것이 강한 자,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의 목사들이 여전히 강한 자, 영향력 있는 자로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강함과 부귀가 그들의 축복의『평가기준』믿음의 『평가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믿음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 반대로 내가 사업이 안 되니‥‥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 내가 대학을 못 갔으니‥‥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 내가 병에 걸렸으니‥‥ 나는 하나님께 버리운 자가 아닌지 의혹이 듭니다.
사람들은 강해야 힘이 있다고 하며, 강한 자, 능력 있는 자, 힘 있는 자가 되기를 추구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은 나의 약함을 통하여 강하게 역사(役事)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약함이 도리어 강하다는 것은 분명히 역설(逆說)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구원의 역사입니다.
[고후 13: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바울에게는 육체의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육체의 가시는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서 기도했습니다. 세 번째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기대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응답이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니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우리는 강건함을 원하지만 이상하게 하나님은 우리를 연약한 가운데 두십니다. 바울에게 고난을 준 이유는 그로 하여금 자고하지 않도록 즉 교만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나름대로 일생 수많은 가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분은 남편이 가시가 되고, 어떤 분은 부인이 가시가 되어서 일생을 찌르고, 어떤 부모는 자식이 평생의 가시가 되어 찌르는 괴로움을 당합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정말 멋있게 살 텐데 ‥‥
병들면 사람이 약해집니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도 병들어 누워버리면 한없이 약해집니다.
사람이 호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사람이 약해집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 했건만 사업에 실패를 하고, 회사에서 실직을 당하면 사람이 약해집니다. 고민하고 낙심하고 심지어 절망으로 자살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알고 보면 사람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입니다. 과거의 자신 처지를 생각하며 약해지고 미래의 불안으로 약해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고난은 고난일 뿐이요, 실패는 실패일 뿐입니다. 단지 별로 도움 되지 않는 것, 반갑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고난이 더 큰 축복이 되고, 실패가 더 큰 성공이 됩니다. 질병의 아픔이 더 큰 위로와 감사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조건이 좋고 넉넉하다고 해서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믿음이 좋다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때때로 하나님은 넉넉하지 못한 환경,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들어서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약한 것도 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약점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약점을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들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로 운보 김기창 화백이 있습니다. 이분은 여덟 살 때 학교 운동회 날 장티부스에 걸려 죽을 뻔했으나 어머니의 지극한 간호로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높은 열로 인해 청신경 마비를 가져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후천성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하여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듣지 못하면 울부짖고 싶고 아무거나 때려 부수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터질듯 한 가슴의 응어리들을 그림에 쏟았어요. 지금은 내 자신이 귀먹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을 때가 있어요. 귀가 들렸다면 오늘의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고통도 없지 않았지만 폐쇄된 소리의 공간이 있었기에 한 작업에 몰입, 집중할 수가 있었어요.‥‥"
이분이 귀머거리 된 것은 개인적인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이 고통을 통과하는 중에 그는 자신 안에 하나님이 주신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했고 이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은 귀머거리라는 한 연약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위대한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약한 것 보기 싫은 것들이 더 귀하게 쓰이는 때가 있습니다.
한 마리의 사슴이 있었습니다. 숲속 우물에서 물을 마시려 우물을 보니 우물 속에 자기의 모습이 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에 붙어 있는 뿔이 그렇게 멋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의 뿔이 너무 잘 생겼습니다.
그런데 눈이 아래도 내려가다가 털이 숭숭난 다리가 보입니다. 빼빼한 다리, 볼품이 전혀 없습니다. 사슴은 눈을 감았습니다. 어떡하다가 이런 발을 갖고 살게 되었는가, 발이 너무 보기가 싫었습니다. 차라리 발을 없었으면 더 멋져 보일 것 같습니다. 그때 사냥꾼이 자기를 향하여 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슴을 있는 힘을 다하여 달아납니다. 그때서야 다리가 소중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뿔이 나무에 걸렸습니다. 사슴을 발버둥을 쳤지만 사냥꾼이 달려와서는 이내 자기에게 그물을 씌웁니다. 그때 사슴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이 뿔만 없어도 사는 것인데,”
약한 것이라고 무시하고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약한 것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약함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기막힌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 없고 상처와 아픔만 주는 것 같았는데 이 모든 것을 합해서 보면 모두가 빠질 수 없는 것, 큰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계를 느끼고 좌절할 때마다 기뻐해야 합니다. ◎ 전복이 진주를 만들듯이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축복받는 계기로 만드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가 가난을 잘 극복하면 가난은 큰 재산이 되지만 가난으로 말미암아 거지근성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병을 극복한 사람은 건강의 중요성을 알아 더 건강한 사람 장수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하늘의 부요함을 버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평생에 끊임없이 남에게 빌리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처음 묵으신 곳이 바로 남의 집의 구유였고, 설교하시기 위해서 타신 배도 그랬고, 타실 짐승과 최후의 만찬을 베풀 다락방도, 마침내 장사될 무덤까지도 빌리셔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약한 주님이십니다.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자신의 만족 자신의 선택에 대한 포기입니다. 공생애 내내 죄인이라 칭함을 받으셨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굴욕을 받으시고, 버린바 되었습니다.
⁋ 고린도 교회는 파당을 나누고‥‥서로를 비방하고‥‥사도바울의 사도 권까지‥‥의심합니다. 그의 사역의 진실성을 비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교훈할 자격이 없다고 까지 말합니다. 바울은 말하는 것이 왜 그러냐? 영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면 왜 질병이 있는가? 바울과 그 동역者들은 거짓 사도다.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는 약함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그리스도인들이 약함을 취하지 않고 강해지려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고전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 4: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전 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
[딤전 1:1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하나님 앞에 한없이 약해진 바울의 모습입니다. 大使徒 바울이 왜 이렇게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을까요? 이방세계를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아시아와 유럽 곳곳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위대한 大使徒이지만 신자들 앞에서 취했던 겸손과 낮아짐. 이것이 복음전도자 바울의 모습입니다. 내가 약할 때 내 안에 주님은 강해지는 것입니다.
● 19세기 중국선교의 아버지이며 위대한 신앙인이었던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의 위대한 거인들은 모두 연약한 사람들이었다." 고 말했습니다.
●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자신의 입장을 세우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 또 사람들에게 부끄러움과 멸시를 당할까 두려워합니다.
현대 하나님의 동역 者들에게서 필요한 것은 약함입니다. 모든 전도자와 목회자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멸시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함을 숨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약함을 통해 약한 자를 구원합니다. 약함은 복음의 통로입니다.
<내적체험>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얼굴로 만나는 것입니다. 만유의 주 만왕의 왕 진실로 나의 목숨을 드릴만한 가치가 있는 분입니까? 全能하신 하나님, 無所不在하신 하나님, 無所不知하신 하나님, 無所不能하신 하나님이십니까?
<내적 체험>이란 예수님과의 진실한 만남을 말합니다. 나의 약함 속에서, 나에게는 구원의 아무런 가능성도 없을 때 찾아와 주시는 주님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 초대교회 교인들은 만유의 주되신 것을 알았기에, 영원한 생명의 주되신 無所不能하신 주님을 알았기에, 기꺼이 부모와 친척에게 버림받는 것을 담대히 받아들였습니다. 순교를 영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함과 많은 소유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되신 주님입니다.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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