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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20-24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요한복음 16:20-24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신명기 29:29]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인간은 영적인 일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하신 것 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허락하신 은혜 가운데 살아가며, 하나님의 명하신 일, 계시와 약속에 순종하여 살아갈 따름입니다. 영적인 일은 사람이 풍부한 지식이 있고,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일은 ‘사람이 신학을 하고, 역사를 알고, 문서비평을 하고, AI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최종적인 결론과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요? 영에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2:13)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일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 가운데 그분의 알려주시는 계시로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가리켜서 ‘보혜사’(요 14:16.17)라 하셨습니다. ‘돕는 자’란 의미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 사람이 영적인 일들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오늘날 교회 안에는 성경 지식이 많음을 자랑하면서도 영적인 일에 소경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성령의 도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성령의 도우심과 깨닫게 하심을 얻지 못할까요?
[요한복음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주님은 장차 제자들이 곡하고 애통하고 근심에 잠기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날 때, 슬퍼하고 근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닥치는 고난과 슬픔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제자들이 주님의 약속에 대한 이해와 확신,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 성도가 불안과 근심,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대부분 주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부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알리셨으나 그들은 알려고 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고 어두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 성도가 믿음을 얻기까지는 고뇌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믿음을 갖게 되는 과정이 해산의 고통과 같다는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은 큰 것이지만 해산을 통하여 여인은 성숙한 어머니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가치가 있고 귀한 것일수록 그것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큰 법입니다. 구리반지가 금반지, 다이아몬드 반지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고뇌와 수고를 통해 얻어지는 믿음의 가치는 황금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귀한 믿음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할 때,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고, 그 아버지는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였습니다. 믿음에는 결단이 필요하고, 희생과 수고가 따릅니다. 사람이 당장 즐거움과 편리만을 추구하여 장차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상급과 영화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지한 까닭입니다.
[잠언 14: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 사람이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갖고, 많은 열매를 거둘 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고, 너와 내가 살만한 땅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다.”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의 소망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부끄럼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겨우 “나 한 사람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으면 된다.” 하는 사람은 그 있던 한 므나 마저 빼앗기라 했습니다.
[요한복음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성도가 누리게 될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했습니다. 그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이는 성도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 바울은 옥중에 있을 때,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했습니다. 그는 마게도냐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감옥환경이 얼마나 열악했겠습니까? 도움의 손길을 구할 어떤 아는 이도 없는 땅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바울은 실라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었습니다(행16:25). 이는 나를 사랑하시는 이, 돕는 이, 나를 지키시는 이가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마주하고 진을 쳤을 때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뒤에는 중무장한 애굽의 군대가 있습니다. 앞에는 탈출구 없는 바다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은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위기입니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상반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지난날 애굽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수많은 권능을 보았음에도 여전히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방식대로 해결하실 것을 믿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권능,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에 닥쳤는가가 문제가 아니고, 사람은 믿음이 없으므로 절망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에 응답이라는 보증을 주셨습니다. [23절]에 ‘무엇이든’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문제를 만나게 되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이라 말할 때, 전제조건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이든’ 구하면 응답을 해주시나요? 그 전제조건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왜 ‘무엇이든’이라 말하는 것일까요? 사실 신자의 삶은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닙니다. 신자는 ‘나 잘 먹고 나 잘살기’ 위하여 살아가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것은 신자들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고,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이런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 기도를 어려운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주 쉬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일입니다.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자녀는 아버지께 구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아버지께 구하는 일이 어렵다면 그것은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이루지 못한 까닭입니다. 자녀가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아버지 앞에 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 기도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나의 생활의 일부 되어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쉬지 말고 하는 기도’입니다.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합니까? 그것은 ‘무시로 하는 기도’입니다. [엡 6:18]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했습니다. 직장에서 작업 중에도, 누군가 생각날 때, 음식을 먹을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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