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3:6-13    <성도의 교제> 2013. 5. 12

* 어미 새와 아기 새 : 평강(Peace)을 주제로 그림 컨테스트가 있었습니다. 최종 결선에 두 그림이 후보로 올라왔습니다. 하나는 고요하고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 있는 장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바람이 치고 풍랑이 이는 바닷가의 가파른 절벽이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자! 어떤 그림이 평강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나타내었을까요? 대상은 폭풍 속 가파른 절벽이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절벽 안쪽 움푹 파인 곳에 조그만 새둥지가 있고 비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어미 새의 품 안에서 고요히 잠자고 있는 아기 새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강은 아무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는 고요한 푸른 초원과 같은 평화가 아니라 거친 파도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속에서도 어미 새로 인해 평강을 누리는 아기 새처럼,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보호를 받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 마음의 평강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평강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구원하십니다. 신앙은 3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신앙- 청년신앙- 아비신앙입니다. 어린아이 신앙은 늘 연약해서 잘 넘어지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청년신앙은 죄를 깨닫고 배우는 단계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자녀를 낳고 기르는 아비의 신앙입니다. 전도는 귀한 활동이지만 전도에 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년 말에 보면 열매가 없습니다. 자녀를 낳고 양육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우는 단계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살전 3: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바울은 무엇 때문에 그리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섰다는 것입니다. 환란이 와도, 그들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이고, 열매는 좋은 것이지만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하여서는 나무가 건강해야 합니다.

√시류에 흔들리고, √작은 유혹에 √환란 가운데 연약해 넘어지는 신앙은 좋은 열매를 맺는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 안에 굳게 선 신앙인으로 자라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하여 바울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일꾼인 디모데를 파송하였습니다. ▶ 신앙은 말씀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살전 3:2-3]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좋은 열매 맺는 나무를 얻기 위하여서는 가지치기를 해 주고, 소독을 하여 나무를 깨끗하게 하여야 하는데, 마찬가지로 신자의 신앙을 정결하게 하고 세우는 일이 말씀으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요17:17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 이다"

○ 내가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 영적인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 위에 세워지지 않은 신앙은 결국은 환란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 넘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유혹이 올 때에 짓눌려 자라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많은 씨를 뿌렸다 하더라도 헛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낳는 아비의 신앙이 되려면 우리 모두는 말씀을 질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은혜의 강물>이 있습니다. TV를 키면 수많은 기독교 방송이 나옵니다. 수많은 기독 서적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말씀들이 <생명의 물>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많이 있지만 그 모두가 나를 건강하게 하는 좋은 음식은 아닙니다. ‘홍수에 먹을 물이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은 말씀을 들을 때 사모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감사하게도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은 말씀을 받을 때 헛되이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 말씀을 전하는 자가 제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며 준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하더라도 - 다 좋은 말인데 나는 나요 - 하고 듣지 않는 다면‘밑 빠진 독에 물 붙기’가 될 것입니다.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은 다 부드러운 겸손한 밭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 결단하는 자세로 들어야 합니다.

▶ 덧붙여, 우리의 영적 성숙은 말씀만 잘 전하고 듣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기는 말씀과 성령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은 기도함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기에 바울은 열정적인 전도자이며 모든 일에 거침없이 돌진하는 탱크 같은 사람입니다. 목적의식이 강한 사람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는 냉혹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눈물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행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고후 2: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딤후 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살전 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 교회의 부흥도 한 사람의 변화도 모두 성령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바울의 눈물의 기도가 없었더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위하여, 우리의 형제자매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 자녀와 이웃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형제자매를 위하여 가장 귀한 선물은 기도입니다.

○ 만약 내가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두 가지 가능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 나에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믿음이 없는 까닭입니다. <둘> 나에게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는 까닭입니다. 중보기도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귀한 것입니다.

▶ 세 번째로 있어야 하는 것은 교제의 시간입니다.

[살전 3:12-13]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도들이 그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독교인이 기독교인과 교제하며 위로를 받고 경험을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늘 세상의 먹고 사는 일 육체의 즐거움을 이야기 할 뿐입니다.

● 우리는 나눔을 통하여 나는 오히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동일하게 다른 이들의 삶속에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중국의 많은 가정교회에서는 예배를 다 마치고 다음 순서가 더 이상 없는데도 사람들은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교회에 남아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함께 있고 싶어요 : D. L. 무디가 하루는 서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5살 먹은 그의 아들이 들어왔습니다. 무디는 그 아들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무얼 원하니, 얘야?'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꼬마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요.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서 들어왔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마루에 앉아서 조용히 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그는 아버지와의 교제만을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자녀들과 교제하고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 사람들이 “교회가 무슨 기업 같아요.”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사랑을 베풀며, 서로를 더 이해하고, 더 품어주고 안아주는 곳이 되어야 할 터인데, 교회 안에서 조차도 인격적인 나눔이 없는 생존 경쟁의 모습, 교회가 자신의 사이즈가 키우면서 물질화된 모습을 보면서 하는 조롱하는 말입니다. 우선 교회 지도자의 잘 못일 것입니다. * 익명의 그리스도인, 부담 없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예배드리는 일이 마치 사무실에 사무를 보듯 잠깐 들리는 장소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형제자매가 함께 화목하며 나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행 2:44-46]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koinonia" {科伊欧尼亚)라는 단어는 '친교, 나눔' 등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입니다.

"koinonia" 는 특별히 물질을 나눔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제를 통하여 형제의 기쁨과 슬픔, 아픔과 어려움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용서를 배우고, 낮아짐을 배우고, 존경을 배우는 것입니다. 성도 간에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로하기 위하여 디모데를 보냅니다. 그들이 환난가운데서도 배교하지 아니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그러한 교인이 되도록 믿음을 굳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저들이 믿음 위에서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또한 자신이 위로를 받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빅토르 프랑클 弗兰克尔 (Frankl)은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의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때의 체험담인 "밤과 안개"라는 책에 이런 경험을 고백하였습니다. ‘ 수용소의 유태인들은 병으로 죽어가고 차례차례 가스실로 보내져 학살되고 있다. 나 자신도 영양실조로 몹시 쇠약해졌으며 언제 가스실로 끌려갈지 죽음의 날만 기다리는 형편이다. 이때 나는 체포되는 날 뿔뿔이 헤어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내를 생각하였다. 나 자신도 고통스럽지만 여자의 몸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날마다 기도를 할 때, 이상하게도 나 자신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고 약한 몸을 일으켜 노동을 감수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계속하여 프랑클 교수는 이런 말을 썼습니다.

"누구든지 좋으니까 그대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그 사람과 함께 고통을 나누어 가지면서 살아 보라. 그대는 예상치도 않았던 힘이 어디선가 솟아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오늘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이 시간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귀한 시간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타고 있고, 국가 부도에 닥쳤을 때 다 같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있던 8명과 그 배에 함께 있던 택함 받은 동물들만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방주는 그들의 공동 운명체입니다. ○ 가족의 구성원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이 있습니다. ● 가정이나 회사나 나라는 이와 같은 건강한 정신과 믿음을 가진 신실한 이들에 의하여 가정을 사랑하고 회사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안정되고 발전되어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