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1:1-11  <성전을 세우라>   2013. 7. 7

(ekklesia) 교회의 진정한 의미는 구약에서 말하는 [성전]과는 다른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을 (ekklesia)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때로 사람들은 교회와 교회당을 혼동 할 때가 있습니다. 공동체 자체보다는 건물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교회를 세우는 일을 건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도 지금 많은 사람이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교회를 건축한다. 성전을 건축한다. 말하기도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제 아무리 많은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 아름다운 교회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제가 어렸을 적에는 ‘○○예배당’이란 말을 건물 초석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당을 '○○교회' 라고 쓰고 있습니다.

건물이 성전인 시대는 구약시대에 그랬습니다. 솔로몬 성전이 그렇습니다. 구약에선 물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성전이었습니다. 신약으로 오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더 이상 성전을 건물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참 성전은 내 안에서 이루는 것입니다. 영원한 영적인 참 성전을 내안에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시었습니다. ♥ 눈에 보이는 건물에 대한 많은 관심으로 내 안에 성전을 세우는 일을 등한시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예배 처소는 아주 중요합니다. ○ 우리는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입니다. ○ 교회 공동체만을 중요시 하면서 교회 건물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아주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입니다. 매번 공원으로 옮겨 다니며 예배드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성공적인 예배를 위해 적당한 공간은 아주 중요합니다. ○ 더 안정된 환경에서 모임을 갖기 원하고, 건물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무소유나 작은 건물이 꼭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 건물 없이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김양재목사의 <우리들 교회>, 이찬수목사의 <분당우리교회>, 김동호목사의 <높은 뜻 숭의 교회>도 결국은 자기 건물을 가져야 했습니다.

○ 건물은 영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한 공간입니다. 집이 없다면 이는 마치 달팽이가 껍질이 없이 지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 미국의 어는 늪지에서는 1.8m의 거대한 악어가 작은 거북이의 등을 깨지 못하고 도망했다는 기사를 본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으로 진정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교회(ekklesia)입니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교회의 참모습은 대출을 다 갚은 빚 없는 교회당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참 교회의 모습은

1.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  2.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공동체  3. 서로 돌보는 공동체  4. 각자의 은사를 사용하여 봉사하는 공동체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합치어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보이는 교회인 (ekklesia)라고 하는 교회공동체는 늘 불완전합니다. 양과 염소가 함께 있고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않은 자가 함께 공존하는 곳입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늘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나의 부족함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용서를 배우는 것입니다.  

● 중국에는 가정교회가 있고 공식적으로 십자가를 단 큰 교회당을 가진 교회가 있습니다. 공식교회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립니다.  ○ 그러나 이 큰 교회당 안에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모임 속에서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는 일도 없습니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부담도 없습니다. 그 안에서는 영적인 변화도 없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교회에 대한 다양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 자신은 교인이지만 교회는 나가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② 자신은 교인이라고 하면서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만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아무런 간섭도 짐도 지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사실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집을 짓는 자와 같습니다.

[학개 1:2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에스라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이유는 있었습니다. “고레스 왕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다리오 왕 시대인데 왕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공연히 새로운 왕의 심기를 건드려놓았다가는 우리가 힘들지 않겠느냐? 지금 사회적으로 구제가 더욱 시급하다. 경제가 어렵다.

사마리아인의 방해로 성전건축을 중단한 지 이미 16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의 땅에서 돌아오게 하셨습니까? 바사 나라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에스라1장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금 건축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백성들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할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개인의 풍요라는 욕구를 충족을 위해서 바빠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살아 있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자 함이 아닌가요?


● 중국이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왕성한 발전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둔화되어진다 하지만 아직도 7%의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는 나라의 특징 중의 하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 가장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경제가 둔화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 되어야 합니다.

● 기독교가 부흥하는 나라는 축복을 받습니다. 북한 땅을 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단동에서 신의주를 바라보면 화전으로 산꼭대기까지 벌거벗었습니다.

● 200년 전에 남미는 황금이 넘치는 땅이었습니다. 유럽대륙에서는 남미로 이주해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남미로 간 사람들은 황금을 찾아 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다. 200년 전에 북미는 가난하였습니다. 그 때도 북미로 이주한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그들은 중소상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개혁파신앙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그노[Huguenot]拉格诺 라 부릅니다. 가톨릭은 이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위그노들은 영국으로 건너갔고, 이들이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정직한 경영을 하여 영국은 부자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 청교도들이 영국과 그 외 유럽 땅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로 이주하였을 때 그들은 청교도 신앙을 실천하고자 하였습니다. ' 나의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고 나은 하나님의 뜻대로 재물을 사용한다.' 가 그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의 미국을 만든 것입니다.


교회에 사람이 넘쳐난다고 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 때 교회가 칭송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마음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학개 1:3-4]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 판벽이라는 말은 널빤지로 벽을 둘렀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붕도 둘렀습니다. 벽도 둘렀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하였습니다. 지붕도 없습니다. 벽도 없습니다. 그저 성전 건축을 위한 지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보기에도 얼마나 흉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지금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 "나 하나쯤이야" "교회를 빠지는 것도 나고, 은혜를 받고 안 받고도 나다. 나는 나의 주인이다." 하는 신앙인의 자세는 공동체를 허무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창고가 비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가 마음 아픈 자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 신자의 수가 적어 예배의 자리가 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도해야 할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것, 봉사해야 할 사람이 봉사하지 않는 것, 배워야 할 사람이 배우지 않고 가르쳐야 할 사람이 가르치지 않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학 1:5-7]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 한국은 경제성장과 교회성장이 같이 일어났습니다. 7,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말할 때 한국의 경제는 1년에 12%씩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 2만$ 달성 이후에 좀처럼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80년대와 똑같이 한국인은 열정이 있고 부지런하고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는 정체의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한국경제도 성장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계적인 경제 환경으로 인한 성장의 한계입니까? 잘못된 정치에 원인이 있습니까? 그 근본 원인은 사람에 있습니다.

●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합니다. 빛이 어두운 까닭입니다.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말합니다. 사람은 다 이기적이고 자기만을 살피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인간의 타고난 죄性입니다. 우리는 그 책임을 세상에 돌릴 수 없습니다. 교회가 변화되지 않고 세상이 변화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다스리지 않는 세상은 고단한 세상 罪惡된 세상일 뿐입니다.

● 한국교회는 지난 1990년부터 20여 년간 성장이 둔화되어서 어느 교단도 1년에 1% 성장도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가 교회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세워져야 합니다. 교회가 칭찬받고 높임과 존경을 받을 때,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가 이 땅에 가득 차게 되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학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다윗은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성전 짓기를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짓는 것을 허락지는 않으셨으나.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축복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한국교회사에 보면, 최초의 장로님이신 최치량 장로님은 비오는 어느 날 주일 예배를 드리다가 예배당 지붕에서 비가 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는 다음날 아침 일찍 자기 집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붕 위에 있는 기와를 벗겨 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니, 멀쩡한 기와를 왜 벗겨 내십니까?" 그때 최 장로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비가 새고 있어. 내 집이야 비가 좀 새도 괜찮지만 어찌 하나님의 집에 비가 새도록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산에서 나무 몇 그루 해오는 것이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여기 우리 모두가 함께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며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은총을 구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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