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4:1-6  <아버지를 경외하는 자녀>        2013. 7. 14

[말 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교만한 자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1) 묻지 않고 결정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자신이 늘 주도권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고 중요한 결정에 자신이 빠지면 견디지 못해 합니다.

(2) 상의하지 않고 통보합니다. (3) 부탁하지 않고 명령합니다.

(4) 자신을 남보다 낫게 여깁니다.

(5) 상대방의 충고나 의견에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고만 합니다.

(6) 모르는 것도 물으려 하지 않고 아는 척 합니다. 몰라도 절대 묻지 않습니다. 아는 것만 질문합니다.

(7) 늘 정의를 말하고 배우려고 하지 않고 늘 상대방을 가르치려 합니다. 

(8) 자기 잘못은 못 보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은 현미경을 가지고 봅니다.

(9) 자신의 버릇도 못 고치면서 다른 사람 버릇을 고치려 한다.

(0) 자신을 교만하다 생각하지 않고 겸손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겸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안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못하는 것입니다.

(1) 다른 사람을 좀처럼 칭찬하지 않습니다.

(2) 누구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늘 도와주겠다고 말합니다.

(3) 잘못했다는 말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머리 숙이지 못합니다.

(4)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6) 그리고 자기 잘못을 지적하는 자를 죽도록 미워합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교만’은 <악한 심성>이고 그 행위는 <악행>입니다. 교만은 마귀의 성품이요 겸손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 지상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쫓겨난 것은 사단이 인간을 자극하여 교만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 이 땅의 언어가 나뉘었던 바벨탑 사건도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고자 하는 교만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에게 임하는 은혜를 막아버리고,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영적 장애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로마서 12:16]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마 5:3]'마음이 가난한 자'는 은혜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가장 낮은데 처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겸손이란 제 마음대로 하는 마음,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고, 겸손은 하나님 앞에 순종입니다.


선교사 지망자에게 면접시험을 치루기 위해 추운 날 새벽 3시에 오라고 했는데 선교국에 찾아왔으나 8시에야 시험관이 도착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험관은 "자 시작해 볼까요?"라고 하고서는 "제빵업자(Baker)라는 단어 철자를 말해 보시오." 그는 초등학생들에게나 내는 문제에 답변했다. 시험관은 "좋소, 그러면 숫자에 대해서 물어 봅시다. 2의 두 배는 얼마요?" "네, 4지요." "참 좋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합격되었습니다. 당신은 선교위원회의 시험에 합격했으므로 내일 아침 선교사로 임명할 것을 건의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선교위원들은 그를 칭찬하며 그가 자격이 충분함을 설명했다." 그는 오는 시간을 엄수했다. 다섯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시험에 합격했다. 겸손했습니다.


[말라기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

[시 34:11-14]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교만한 자에 대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교만이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자신을 본받으라.’하는 바울을 교만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은‘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하시는 예수님을 참람하다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아 교만하다 겸손하다 평가하고 말하지만 교만과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평가 받는 것입니다.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이 발한다고 했습니다. 떠오르는 치료하는 광선은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베푸실 은총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시고 건강하게 하시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십니다. 질병만이 아니라 물도 땅도 치료하십니다.

[출 15:23-25]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이 달아졌더라.

[출 15:26]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대하 7:13~14]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을 듣고,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말라기 4:4~6] 너희는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고전 4:15-16]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세상에는 일만 스승이 있지만 아비가 없다. 했습니다. 스승은 학생들에게 헌신적일 수 있지만, 부모처럼 자녀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사랑하지 않습니다. 스승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지만, 아버지처럼 끝까지 다가가서 자녀를 타이르고 격려하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의 아버지는 어떠합니까? 한 사람이 인도네시아에서 길거리의 불량아에게 전도를 하는 데 “하나님을 믿으세요.” 했더니 하나님이 누구냐고 묻더랍니다. 하나님을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대답하니까 이 청년의 얼굴이 분노로 가득 차서 “그 하나님 내가 죽여 버리겠다.”하더랍니다. 

- 존경스러운 아버지 품에서, 질서 있는 집에서 성장한 자녀는 하나님을 존경하고 순종합니다. 사람을 대하여도 겸손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아버지 상을 가지고 성장한 사람, 무질서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세상을 대항하고 사람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합니다. -


22세 되던 해 루터는 친구가 벼락에 맞아 갑자기 죽고 자신은 이 벼락으로부터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험을 합니다. 이후에 루터는 법학도의 꿈을 버리고 수도사가 되기로 헌신합니다. 매우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던 어거스틴파 은둔 수도원에 들어간 그는 금식하며 잠도 자지 않고 자신의 몸을 채찍으로 때리며 죄 씻음을 위하여 수행에 열중했지만 그는 여전히 죄책에 시달리며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저 멀리 계신 두려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수도원장의 권면에 따라 로마서를 공부할 때‥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 금욕을 통해서도 아니고, 기도를 통해서도 아니고, 성례전을 통해서도 아니고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좋은 아버지 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비로운 아버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자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아버지의 말을 듣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는 상대방을 자신의 원하는 스타일로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바꾸려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뒤틀린 나무는 뒤틀린 상태대로 사랑해야 합니다. 만일 보기 좋게 억지로 세우려 한다면 부러지고 맙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죄악이 아니라면 있는 상대방의 그대로를 존중하고 아껴주는 것입니다. 그의 생김새, 습관, 배경 그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닉 부이치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젊은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팔과 다리가 없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곧 믿음으로 평정을 찾고 부이치치를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어린 부이치치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아이였지만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습니다. ○ 그래서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부이치치는 언제나 사랑으로 껴안아 주고 늘 눈물을 참는 부모님의 마음을 더 이상 아프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 자신만 그런 모습으로 태어났는지 항상 의문이 들었지요. 그 성경 요한복음9장 실로암의 맹인의 장애가 신의 놀라운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습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자신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은 집을 떠날 때만 해도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돌아올 때는 그의 몸은 야위었고 언제 빨아 입었는지 모를 지저분한 누더기에 먼 길을 오느라 신발은 다 닳아 있었습니다. 귀한 집의 아들이 아니라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는 순간 그는 사실상 아들의 자격을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자식을 보자마자 아들의 ‘목을 안았다’ 했습니다. (눅 15:20)

긴 시간 세속적 쾌락에 빠져 있었고, 오염된 마음을 지녔으며, 돼지를 치다 온 더럽고 추한 아들입니다. 손대기조차 역겨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흔쾌히 안아주십니다. 왜요? 아들이기에, 무조건 용서의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리고 과거를 캐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아버지는 밤낮을 지새우며 아들이 속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언제 올지 모를 사람을 속절없이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비의 마음입니다. 아들의 가출은 아버지의 병을 유발시켰고 그래서 아버지는 더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선사합니다. 아들은 품꾼으로 삼아줄 것을 청원했으나 아버지는 멋진 옷, 좋은 신, 반지, 맛있는 음식 등 그 집에서 가장 좋은 것들로 먼 여행을 다녀온 아들처럼 그를 맞아 주십니다. ○ 아들은 죄짓고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독생자 예수의 보혈로써 아들의 죄를 가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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