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3-9    <옥합을 깨트리는 마음>                                                                                      2014. 3. 22

◯ 히브리 여인들은 옥합, 곧 ‘알라바스터’라는 병에 ‘나드’라고 불리는 향나무 뿌리에서 짜낸 향기가 짙고 순수한 값진 향유를 담아 봉인해 두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귀한 손님이 오면 몇 방울 발라주는 데 사용했고, 결혼을 준비하는 여인들에게 지참금이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3km 동쪽에 있는 베다니 마을에서 식사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한 여인이 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 안에 들어있는 향유를 몽땅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입니다. 어떤 기독교를 모독하는 사람들은 “이 여인이 예수님을 연모했다.” 제 멋대로 해석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7:41-2]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 이전에 그녀는 사람이 두렵고, 세상이 밉고, 인생의 의미를 모르고 살았으나 이제는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이제는 사람의 손가락질이 두렵지 않은 주님께 [죄 사함]이라는 [갚을 길 없는 은혜]를 입은 여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 표현은 옥합을 깨뜨리는 것이었습니다.

● 여인이 옥합을 기울여서 향유를 붓지 않고, 옥합을 아예 깨트렸다는 것은 옥합 안에 혹시 남아있을 최후의 한 방울까지도 남김없이 드려 한 것입니다. 우리가 드려야할 그 분의 사랑에 대한 감사는 우리의 가장 고귀한 것, 최고의 것, 전체로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고, 우리에게 가장 존귀하신 분,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가장 귀한 것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드려 주님을 최선으로 향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 누군가가 말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은, ①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인도 아니고, ② 남자에게 버림을 받은 여인도 아니며, ③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은 사랑할 사람을 가지지 못해 혼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있는 여인과도 같습니다.

● 사랑 할 사람이 있다는 건 / 지극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일은 / 파란하늘 위에 꽃구름처럼 두둥실 떠다니는 듯 마냥 설렘입니다. /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님이 계시다는 건 / 하늘이 내게 내려 준 무한한 축복입니다. /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오늘의 삶일지라도 / 묵묵히 배려하는 님이 계시기에 그저 행복합니다.

◯ “가장 축복 받은 사람이 되려면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말로 하는 감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감사 말입니다. ◯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내가 가진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가장 귀한 것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얼마나 귀한 것을 낭비하십니까? 그 향유의 값이 300데나리온 이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한 가정의 1년 생활비와 맞먹는 돈입니다. 이런 300데나리온에 달하는 귀한 향유를 한 순간에 다 부어드리는 사랑의 표현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분수에 지나칠 정도로 [낭비하는 감사]였습니다.

◯ 한 남자가 50세에 결혼을 했습니다. 신혼여행 때 가게의 진열장에 진열된 진주 목걸이를 구경하며 부인이 "저렇게 예쁜 목걸이는 굉장히 비쌀텐데, 그래도 사는 사람이 있으니 진열하겠지요?" 하고 불쑥 말했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났을 때, 이 부인은 불치의 병에 걸렸으며 의사는 남편에게 그녀가 6개월 이상 살 수 없다는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마침 결혼 10주년 기념일이 되어, 이들 부부는 자기들의 결혼식 때 주례를 맡아 주었던 포터 목사를 집에 초청하였습니다. ◯ 남편은 이미 60세인데 실제로는 70세 정도로 늙어 보였습니다. 그는 평생 농사꾼, 그것도 몹시 가난한 농사꾼이었습니다. 조촐한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남편은 부인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숨겨두었던 진주 목걸이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부인의 목에 걸어주었다. 목걸이를 본 부인은 몹시 놀랐습니다. 그것을 살 돈이 남편에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 훔쳐온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때 남편은 설명했다. 그는 신혼여행 때 보았던 그 진주 목걸이를 아내에게 사줄 결심을 하고 그 좋아했던 담배와 맥주를 끊었고, 노동을 하면서 갈증이 날 때도 콜라 한 병 마시지 않고, 10년 동안 모았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 라고 묻는 아내에게 백발이 된 남편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먹고 싶은 것도 안 먹고 10년을 지속 할 수 있었던 그의 인내와 절제와 희생은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단 하나의 동기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14:4-5] 어떤 사람들이 분 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 어떤 사람들이 분을 내면서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고 여인을 꾸짖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유월절 저녁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와 다른 제자들은 율법의 규례를 따라 유월절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 이성적인 머리로 하는 사랑과 은혜 받은 자의 사랑의 마음은 다른 것입니다.

◎ 지난 수년 간 화요밥집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영상에서 보았습니다. 우리 친구교회에 화요밥집 봉사를 거쳐 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지금 교회를 떠난 사람 있지만, 불행하게도 신앙을 멀리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들은 무슨 마음으로 봉사했을까? ① 우리 주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신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조금이라고 보답하는 심정으로 하는 봉사와 ② 나의 가진 것을 시혜하는 마음으로 하는 봉사는 다른 것입니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를 위해서 봉사한다. 수고한다.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하는 봉사가 그런 것입니다. ◯ 자신에게 기쁨을 주지 않고, 만족을 주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그만 둘 것입니다. 자신이 선하기 때문에, 의롭기 때문에 하는 봉사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만족으로 하는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셨다" 고 했습니다. ‘문둥이 시몬’이라는 말씀으로 보아 그는 문둥병이 걸렸던 사람이요 주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셨으리라 여겨집니다. 당시 문둥병은 저주의 병이요 고립되어 살 수밖에 없는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둥이 시몬은 살만한 여유와 친구를 가진 바리새인이었습니다. ◯ 시몬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예수님을 초청하여 식사 대접했습니다. 유태인들은 아무나 식사에 초청하지도 아무나의 식사초대의 자리에 가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그의 초대에 기쁘게 응해 주셨습니다.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되신 예수께서 부족하고 모자란 한 인간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들처럼 물을 떠서 주님의 발을 씻겨드리기에는 그는 너무 높은 명망을 가진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진 재물 중 약간을 내어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주님은 한 평범한 능력있는 선생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 앞에 있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 분에게 자신의 운명을 드려야 했습니다.

 

◯ 『탈무드』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왕에게 외동딸이 있는데,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누구든지 자기 딸을 살려주는 자를 사위로 삼아 왕위를 계승하게 하겠다는 포고령을 전국에 내렸습니다. 그때 먼 지방에서 살고 있는 세 형제가 왕이 내린 포고령을 보게 되었는데, 그 형제들은 각기 신비한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맏형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볼 수 있는 마법의 망원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둘째는 하늘을 나는 마법의 양탄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내는 먹으면 어떤 병이라도 낫게 되는 마법의 사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 형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물건들을 이용하여 공주의 병이 낫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 형제 중 누가 공주와 결혼을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형제는 서로 자신의 공으로 공주가 낫게 되었다며, 자신들의 공을 내세웠습니다. 왕은 신중히 생각한 후에 막내를 공주와 결혼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와 둘째가 가지고 있던 망원경이나 양탄자는 없어지지 않았지만, 막내가 가지고 있던 사과는 공주가 먹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막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공주를 위해 희생하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어찌 이 세상에 비싼 향유나 많은 황금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 주님은 남은 것으로 우리에게 자선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주님도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있으면 기분이 좋으셨을 것이고 -따듯한 물에 몸을 씻고 두벌 옷을 입었더라면 기분이 좋으셨을 것입니다. -쓸데없이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자신의 목수 일이나 조용히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주님은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형틀인 십자가에서 그 몸을 갈기갈기 찢기시며 나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 만큼 너도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십자가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사랑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십자가는 힘들고 껄끄러운 것입니다. ◯ 의무감이나 신념을 가지고 자신을 내 주는 사람이 있지만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나를 온전히 버리고 수치스러운 십자가 위에 자신을 못 박히도록 내어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① 주님은 한 과부가 성전에서 렙돈 두 개를 헌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하셨는데 이는 이 과부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 주님이 우리의 믿음을 평가하실 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드렸는가를 보시지 않고 얼마나 남아있는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살만큼 살면서 나는 즐길 만큼 즐기면서 주를 위하여 이 만큼 수고했습니다.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②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무덤에 안장할 때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쌌습니다. 그런데 섭섭하게도 그 아리마대 요셉이 초대교회에 어떤 일을 했는지 더 이상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한 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있는 것으로 주님을 장사지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왜 살아계실 때 하지요!

◯ 여인은 자신의 최선의 것으로 주님 앞에 자신의 사랑을 보여드렸습니다. 사실은 이 여인이 예수님께서 죽으실 줄 알고 주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주님께 대한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여인의 진실한 사랑과 감사에 주님은 깊이 감동하여 이 여인의 행동은 길이 기억될만한 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 사랑은 값을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고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 자신의 전부를 드리고도 더 드리고 싶어 하는 것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 주님 오시는 날,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말할 수 있는 모두가 되십시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