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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1:1-9 <신성한 성품>
베드로후서1:1-9 <신성한 성품> 2012. 11. 11
◎ 소백산에 방사된 여우가 민가 아궁이에서 죽은 채로 발견 되 민간단체에서는 추위에 떨던 여우가 온기를 찾아 아궁이를 찾은 것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공원관리소는 직접적인 사인을 복강에 출혈에 의한 호흡곤란인 것으로 밝혔는데, 다른 동물들과의 극심한 먹이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동물을 피하여 민가까지 왔다고 추정했습니다.
이유가 어쨌건 여우를 방사하기 전에 충분한 적응과 훈련을 거처야 했습니다. 우리 천국에 가는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첫째 해야 할 일이 있음이고, 또 우리 자신이 천국시민에 합당한 인격과 거룩함을 덧입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네 가지 주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배로운 믿음 (1절), 신기한 능력(3절), 지극히 큰 약속(4절), 신의 성품(4절)이라는 주제들입니다.
1. 제일 먼저 믿음에 대하여 말합니다.
[베드로전서1:7] “믿음의 시련은 금보다 더 귀하다”[베드로후서1:1] “보배로운 믿음”보석은 비싸고, 희귀하고, 변치 않는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금은 천년이 지나도 금입니다. 불 속에 넣어도 물속에 넣어도 그대로 금입니다. 지금은 달러보유고로 국가경제를 평가하지만 옛날에는 금보유고로 경제력을 평가했습니다. 보석이 그러하듯, 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어렵다고 변하고, 힘들다고 변하고, 잘 산다고 변하고, 못산다고 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도 변치 않는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에베소2:8]을 보면 <믿음은 은혜로 주신 선물> 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거저 얻지만, 이 선물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셨고 고귀한 피를 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아들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믿음이 진실로 귀합니까? 견고한 믿음을 갖고 계십니까? 언제는 믿어지고 언제는 안 믿어지는 그런 믿음은 싸구려 믿음입니다. 구리반지를 은행금고에 보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1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아무데나 벗어 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동차에 축车轴 나사가 흔들흔들한 (摇晃)채로 달린다면 참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1년을 믿어도 3년 5년을 믿어도 믿음의 능력을 모르고, 의심한다면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돼지는 보석의 가치를 모릅니다. 그래서 밟고 뭉개 버린다는 것입니다. 일본 교인들이 특징이 있습니다.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교회를 잘 나오던 부부가 연락도 없이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 개 14년 된 개가 죽었어요.”‥ 그러면서 엉엉 울더랍니다. 결국 제멋대로 신앙‥
2. 이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베드로후서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신기한 능력>은 무엇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셨고, 듣지 못하는 자를 듣게 하셨고, 말하지 못하는 자를 말하게,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셨고, 중풍병자를 고치셨고,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신비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 세상은 기적이란 없다 말하기도 하고 무시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신비를 말하고, 새로운 세상을 말하고, 인간생명의 존엄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는 곳입니다. 세상을 고치는 유일한 희망은 교회에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병 고치는 이적과 기사가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애굽에 들어가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 애굽의 마술사들도 똑같은 능력으로 따라 했습니다. 병을 고치고, 능력을 행하는 일을 귀신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마귀의 능력을 동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누가복음1:49]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이사야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의 최고 절정을 이룬 사건입니다. 죄로 죽을 나를 십자가의 대속으로 구원하는 일은 예수님이 하신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주심으로 죽어 마땅한 죄인을 살리십니다. 예수님 자신의 대속죽음으로 모든 인간이 구원 얻을 길을 여셨습니다. (3절)에서는 생명이라 했고, 또 (4절)에서는 이를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又宝贵、又极大的应许>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약속입니다.
[요14:2]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바울은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니 이 몸을 벗을 때 영원한 장막을 입으리라.”
▶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약속이 있습니다. 이 약속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베푸신 하나님의 큰 사랑을 의심하거나 소홀이 여긴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 아름다워지기 원하는 여인은 만일 어느 소문난 주름 없애는 화장품이 유럽에 있으면 아마 꼭 살 것입니다. 그것을 얻기까지 비싼 대가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 망해가는 직장에서 모아 둔 돈도 없고, 퇴직금도 몇 푼 안 되는 사람이 직장이 정해져 있다면 자신만만하고 기쁨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 날만 기다릴 것입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할 때 누구나 눈물을 흘리고 감동합니다. 그런데 이런 감동이 얼마가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그러려니 합니다.
【생명을 구원하신 은혜의 기쁨을 날마다 나누어야 합니다. 아침마다 성경 보면서 그 은혜를 되 새겨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늘 새 생명을 얻은 은혜를 잊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 더불어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구하실 때 단지 생명만을 구원하려 건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나서, 또 다른 선물,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려는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라 했는데 바로 그 주신 목적이 (4절 하반 절)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덧입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장강에 투신해 자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름철 부산 바다에서 익사해 죽을 사람을 구원해 주는데 감사하다 찾아오는 사람은 10이면 1~2에 불과 하다 합니다. 당신은 당신 할 일을 했고 나는 생명을 구원하였으니 됐습니다. 감사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다시 볼 일은 없네요. 한다면 우리 하나님 너무 섭섭하실 것 같아요. 더 많은 선물을 준비하였는데‥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것은 단지 생명구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기한 능력>을 행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역시 <신기한 능력>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 베드로가 “주여 나로 하여금 물 위로 걸어오라 허락하여 주십시오.” 했듯이 나도 믿음으로 오는 <신비한 능력>을 구하여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본래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 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나서 인간은 죄 된 존재, 우둔하고 어리석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구도자입니다, 겨 같은 믿음이 돼서야‥
▶ 修道라 하면; 외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 아닌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뒤 벌거벗은 것이 부끄러워 무화과 잎으로 그들의 하체를 가렸습니다. 그러나 참 부끄러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지, 벌거벗은 것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가난을 부끄러워합니까? ○학벌이 없어서 부끄러워합니까? ○유명하지 못해서 부끄러워합니까? ○못생겼다고 해서 부끄러워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기쁨의 사람이 되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농부는 좋은 땅을 만드는데 온갖 노력을 합니다.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은 열매가 잘 맺히고 늘 풍성한 收穫을 거둡니다. 기름진 땅은 무엇을 심어도 잘 자라납니다. 땅이 황폐하면, 풍성한 수확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도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의심과 탐심 게으른 習性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을 잘 다스려 <신의 성품> 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의 성품>은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에 합당한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 <신의 성품>에 이르게 하는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은 무엇일까요? 곧 (5절) 이하에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을 말합니다.
중국인은 도(道)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복음을 道라고 합니다. 불교도 유교도 도교도 道를 말합니다. 그들은 道를 얻기 위하여 온갖 苦行을 합니다.
어떤 이는 이 모든 덕목들을 힘써 얻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성경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성도가 그리스도와의 참된 연합을 통해서 성령의 교제로 <신의 성품> 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덕과 절제 인내 경건을 얻기 위하여 큰 수고와 苦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선생 되시고 목자 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앞서 병자를 고치셨고, 우리 앞서 귀신을 쫓으셨고, 우리보다 앞서서 물 위를 걸으셨고,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보다 앞서 낮은 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실패자가 아니고 무익한 수고가 아님을 증명하셨습니다.
[벧후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1. 우리는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새 사람이 되는 길은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도,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도 예수님을 앎으로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벧후 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덕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에게 이웃에게 교회에 유익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영어로 virtue; 선행, 미덕, 아름다운 행위가 따라야 합니다. 「야고보」는“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습니다.” 믿음은 행위입니다. 그리고 타자 곧 너의 <사랑, 기쁨, 화평> 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단지 머릿속의 <관념적인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자녀는 자녀로되 양육 받지 않은 자녀는 평생 부모의 고통이 됩니다. 덕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에 짐이 되는 사람이 됩니다. 믿음에 덕을 세움으로써 우리는 자녀다운 자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 위에 기초한 모든 행위는 가정을 세우고, 이웃을 세우고, 교회를 세웁니다. 유익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덕에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불자가 말했습니다. “修道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비워야 한다, 그리고 넉넉함을 누리는 만큼 부족함도 받아들이라. 얇은 옷도 적은 음식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알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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