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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12 마가 5:25-43 <혈루증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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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5:25-43 <혈루증 여인>
마가 5:25-43 <혈루증 여인> 2008.6.15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세상의 왕의 자녀들도 열등이라고 말할 수 없거든 하나님의 자녀로 열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찌하든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 먼저 회당장 야이로 그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듯싶습니다. 가족도 있고, 회당장이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사실 그는 예수님 앞에 나올 이유가 없는 자입니다. 만족한 삶인데, 왜 나오겠는가? 그런데 자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회당장인 야이로란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꿇어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합니다. 딸이 죽어가기 때문에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애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무리가 옹위하는 중에 예수님께서 그 외동딸을 고치려 가시는 중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알량한 우월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 만만한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야이로는 유대교의 지도자입니다. 회당장이란 직책은 명망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보장된 직위입니다. 회당원들은 보통 10명으로 구성되는데, 그들 가운데 장이라고 하는 자가 회당원들이 싫어하는 예수께 무릎을 꿇은 것은,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유대교인들 중에 공격의 표적이 되어있을 때입니다. 그런 그가 얼마나 다급했으면 자기의 위치를 버리고 예수께 나왔겠습니까? 야이로가 이런 분위기를 무시하고 예수께 무릎을 꿇은 것은 자기의 지금까지 쌓아 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그는 딸을 치유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의 사심 없는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선 제자들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죄를 지었거나, 책망을 받을 때 제일 하나님은 그의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나 물질에 문제가 생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도중에 갑작스러운 일 하나가 발생합니다. 혈루증 앓은 여인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녀는 12년을 자궁의 하혈로 고생하였습니다. 이 병 고치느라 재산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병 때문에 한 두 의원이 아닌 많은 의원들에게 12년 동안이나 좇아다니고 딸을 고치려 했지만 오히려 병은 더 심해졌고 재산은 다 탕진하여 가난뱅이가 된 것입니다. 주위의 사람들도 그녀의 곁을 모두 떠났습니다. 이제는 남들 앞에 나설 수 없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에게 아픈 부위를 들이밀고 안수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닙니다. 이것이 혈루병에 걸린 여인의 떨쳐버리기 힘든 형편입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부끄러운 모습 그래도 그녀는 예수님의 옷가를 슬며시 만졌습니다. 유출증이 있으면 불결하다 해서 사람을 접촉하면 그 사람도 불결하게 된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는 접촉을 안하려 합니다. 그래서 성전에도 갈 수 없고 어떤 집회에도 참석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한 여인인가, 그런데다 당시의 사람들은 뭔가 부정한 일을 저질렀으니까 하나님께서 저런 병을 주셨겠지 하고 죄인취급을 하고 무시합니다.
이 여인이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무리를 보았습니다. 누가 볼새라 될 수 있는 대로 얼굴을 가리고 큰 결단을 가지고 가슴을 조이면서 군중 속으로 몰래몰래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저 앞에 가시는데... 옳지 저 분이 예수님이 맞지. 어떻게 할까? 저 예수님이 나를 돌아보시고 이런 병쯤이야 틀림없이 낫게 해 주시지 않겠나.”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옷을 붙잡았다가 놓은 것이다. 그때 이 여인의 혈류병이 즉시 그쳤더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아무도 모를줄 알았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자신에게 혈루병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나의 은혜를 잃어 버리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얽어매이게 하는 것인가?
주님 앞에 서기 부끄러운 그녀에게 사람은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묻기를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시냐고 하시고 이미 이 여인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그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선생님 사람들이 이렇게 막 밀고 나오는데 누가 손을 댔다고 그러십니까. 라고 항변하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누구든 믿음을 가지고 손을 내밀면 이처럼 육신의 병뿐이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치료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녀를 주님은 혈루 근원을 마르게 하셨습니다. 그녀는 육체만이 병든 것이 아니고 마음의 병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당당함을 선포하십니다. 또한 "평안히 가라"고 하시면서 정신적인 안정까지 허락해 주셨습니다.
세상에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 중에 한 부류가 열등감 강한 사람 "나는 남들처럼 선하지 못해." "난 아름답지 않아.""난 결코 똑똑하지 못해." 이런 마음들이 내 깊은데 자리 잡고 자신을 구속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재능으로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재능은 한 부분일 뿐입니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합니다.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서 정상에 올랐노라! 사람이 열등감이 없으면 매사에 당당합니다.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말할 것입니다.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당장은 자신의 지위도 명예도 잊고 예수님 앞에 나왔지만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자신의 아래 사람들의 소식에 소망이 끊어졌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했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야이로의 집은 이미 초상집이었다. 피리를 불고 헌화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소녀의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들어가시면서 예수님께서 “잔다.” 말씀을 하셨고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소녀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신 주님께선 “달리다굼”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은 어린 소녀를 부모가 깨울 때 하는 말입니다. “아이야 일어나라.” 일으키시고 “음식을 먹이라” 명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영적인 것만이 아닌 우리의 육적인 구원에도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죽음에서 살아나게 하시고 혈루 근원만 치유하시는 분이 아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하나님 안에서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서로 함께 살아가는 형제 자매 일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평등의식이라 합니다. 그 반대를 우리는 차별의식이라 합니다
평등의식과 차별의식의 뿌리는 같은 것입니다. 자신이 우월해지고자 했는데 이루지 못하게 되면 열등의식이 되는 것입니다
▲ 이곳 양화진에 묻혀 있는 선교사님들 중에 사무엘 무어 Samuel F. Moore 선교사이다. 1892년 32세의 나이에,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디뎠던 무어 선교사는 당시 서울의 곤당골(현재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에 ‘곤당골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 안에 ‘예수 학당’을 설립해서, 조선인의 교육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예수 학당’에는 ‘봉줄이’라는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봉줄이는 백정 박 씨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 백정에게는 성性만 있었지, 이름은 없었습니다. 매우 천한 계급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무어 선교사는, 봉줄이 아버지 백정 박씨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즉시로 무어 선교사는 백정 박 씨의 집에 찾아가 문병했다. 그리고 동료 의료선교사 에비슨에게 부탁해서, 백정 박 씨를 치료해 줍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당시 고종황제의 주치의였고, 후에 세브란스의대를 설립합니다. 에비슨 선교사의 수차례에 걸친 왕진 끝에, 백정 박 씨는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완쾌된 백정 박씨는 <곤당골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무어 선교사는 그를 환대했다. 그는 후에 ‘박성춘’이런 이름도 무어 선교사로부터 얻었고, 선교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아, 세례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백정 출신의 박성춘 때문에 곤당골교회에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양반 교인들이, 천한 백정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항의였습니다. 양반 교인들은, 무어 선교사에게, 그 백정을 교회에서 내 보낼 것을 요구하면서, 교회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무어 선교사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양반 교인들을 만류했다. 그러나 양반 교인들은 강경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양반 교인들의 대표가 무어 선교사를 찾아왔다. 곤당골교회의 예배당 앞자리에 양반들을 위한 좌석을 별도로 마련해 주고, 백정을 그 뒷자리에 앉힌다면, 다시 교회에 출석하겠노라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무어 선교사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어떤 경우에도 그런 차별적인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그 요청을 거절하자 양반 교인들은, 마침내 곤당골교회와 결별해서 양반들 자신들만 모일 수 있는 홍문동교회를 설립했습니다.
▲ 그 사건으로 인해서, 가장 입장이 난처해진 사람이... 백정 박성춘이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양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백정 박성춘은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무어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서울 시내의 백정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원에 있는 백정들에게까지 찾아가서 ‘백정을 사람대접해 주는 데가 있으니, 그 교회로 나오라’고 전도했다. 그래서 백정들이 ‘곤당골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 그 이후에, 곤당골교회에서 떨어져나간 양반교회, 즉 홍문동교회 교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쳤다. 그들은 회개한 뒤에, 다시 무어 선교사에게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곤당골교회와 홍문동교회가 합쳐져서 1898년에 ‘중앙교회’가 설립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승동교회의 전신) 그 때 중앙교회에 출석하는 1백여 명의 교인들 가운데, 무려 30명이 백정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교회를 가리켜 ‘백정교회’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신분 차별을 철폐한 중앙교회(곤당골교회)
몇 해 후에 백정 박성춘이 그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족이었던 이재형도 그 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왕족, 양반, 백정이 명실상부 예수 그리스도의 한 지체를 이루는 진정한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차별 없는 복음’만을 믿었던, 즉, 예수님은 인간을 절대 차별하지 않는다는 신념만을 굳게 믿었던 무어 선교사의 덕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무어선교사는 당시 조선의 남녀차별, 부인학대 문화를 교정하고자 무지 애썼습니다.
▲ 조선에 노예해방 운동을 펼치다
그 후에 백정출신 박성춘 장로는, 무어 선교사의 지도 아래 조선의 백정들의 신분 해방을 위해, 조정에 수차례 탄원서를 올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땅의 백정들은, 신분해방의 감격을 맛보게 되었습다. 백정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얻어서 -‘민적’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양반처럼 망건과 갓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률적으로 다른 모든 국민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110년 전 조선 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무어 선교사 한 사람이 생각과 마음을 굳게 고쳐먹고 온갖 반대와 위험을 무릅쓴 결과입니다.
이처럼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차별 없는 복음을 증거 했던 무어 선교사는 1906년 장티푸스에 걸려서 46세로 소천 하였습니다. 묘소는 양화진에 안치되었습니다. 무어 선교사가 조선 땅에 첫 발을 내 디딘지 14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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