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8  <주의 율례를 지키리라>  2011.10.23

종교개혁의 3대 원리는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입니다.

1) 오직 믿음이란, 구원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나 수양이나 적선 따위로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입니다.

2) 오직 은혜란, 구원은 우리가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는 구원 얻을만한 아무런 공로나 자질이나 의로움이 없으나 오직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3) 오직 성경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는 것은 무슨 인간적인 경험이나 탐구의 결과에 의존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성경에는 영생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미래의 영원한 생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지금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을 소유한 자를 말합니다. 오늘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음을 새롭게 하며 나를 변화시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신앙인이 복이 있습니다.  

[시119:1-2]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시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19편의 첫 절은 여호와의 복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향하신 여호와의 뜻이며 계획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죄악을 이기고, 사악한 영을 이기고, 고난과 질병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분의 나라를 누리고 살고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 답입니다. 참 진리 되신 분은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을 알아가는 방편이 성경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복음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실천하여 살면 온갖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들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하고 춤추는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약속과 언약입니다. 단지 위로와 위로부터의 지혜를 넘은 以外的 축복입니다.  '전심으로' 이는 신명기의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간절히 여호와를 찾는 자를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이리 저리 헤매고 있습니다. ◆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등불을 들고 길거리에 다녔다고 합니다. 만약에 오늘날 대낮에 등불을 밝히고 다닌다면 아마 미친 사람이라고 놀릴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진실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늘 이 시대야말로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는 도서관에 무슨 책인지도 모르는 무수한 수만 수백만 권의 책이 있습니다. 기독교서적도 많이 있습니다. 좋은 설교도 인터넷을 통하여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꼭 읽어야 할 책들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지식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쓰레기 같은 지식들도 너무 많아 무엇이 진리인지, 배워야 할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홍수가 나서 물이 바닷물처럼 많지만 마실 수 없는 물인 것과도 같습니다.  

성경처럼 사랑받고 성경처럼 홀대받는 책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면 신성한 책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리스 신화에 불과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흥미를 잃고 읽지 않는 책이 됩니다. 

전심으로 읽고 과연 그러한가? 상고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 바리새인들은 지금으로 치면 종교지도자들이면서도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검사, 판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인정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성경지식은 수박의 껍질과도 같았습니다. 피상적인 지식은 알았으나 근본적인 뜻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악한 일은 물론이고 일체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바늘 한 땀이라도 꿰어서는 안 된다. 실지로 율법을 생명같이 여긴 유대인들은 전쟁이 나도 그 날이 안식일이라면 나가 싸우면 안 된다. 했습니다. 적들은 이것을 알고 일부러 안식일을 택해 침입해오기도 했다. 이런 바리새인들에게  오직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성전에 들어가 먹는다는 것은 그들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가르친 율법은 지키기 힘든, 가혹한, 견디기 힘든, 고통스런 멍에 짐이었습니다. ◇

[막 2:27,28]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율법을 축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하나님의 기쁘심을 얻고 축복을 받아 산다고 하는 것은 서로 별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기쁘심을 얻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늘 방황합니다. 늘 공허합니다. 실패합니다. 자신은 그 이유를 모릅니다. 

참 진리를 얻어야 바른 신앙이 가능해집니다. 제 아무리 기적을 많이 체험하고 성경을 많이 알아도 신앙인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신2:1] 우리가 회정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날 동안 세일산을 두루 행하더니

 

세일 산은 에서의 거주지입니다. 버림받은 에서의 후손이 번창하고 있는 그 지역에서 복 받은 야곱의 후손이 방황하고 있다니! 인생의 가시밭길 돌밭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 그리스도인들이 법을 어기는 짓도 가끔씩 저지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해서 고생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신앙인답지 못하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갑니까? 우리의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편견으로  or 주의 말씀이 나의 살과 피가 되지 못한 연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데 있어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잘못된 것은 고치고 장애가 되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님이 내 안에 운행하실 수가 없습니다.


신학교1학년 때 이렇게 생각한 일이 있습니다. 선교는 무슨 선교 내 나라 안에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많고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해외선교는 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날 추수할 곡식은 많아 희어져 일군을 기다리는데 일군이 적다라는 말씀을 듣고 주님이 관심은 추수할 장소, 희어진 밭으로 가라 하시는 것입니다.》

[요 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배워야 합니다. 참 진리를 구해야 하고 참 진리 앞에 나는 무릎 꿇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시119:3-6] 실로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4 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5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주의 도를 행하게 함은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가능합니다. 인간의 노력과 의지를 초월한 하나님이 전적인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5절> 사람마다 아무리 바빠도 할 일 다 하고 삽니다. 신문 안 보나요? TV 안 보나요? 밥 안 먹나요? 다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바빠서가 아니라,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바빠도 합니다.

근실히 - '신실하게', '끊이지 않고' 여호와의 법은 날마다 주의 깊게 묵상하고 살펴서 그 깨달은 바를 정리해야 하며 그 어떤 상황 가운데서 라도 그 깨달은 바를 신실하게, 지속적으로 행해야 할 것이다. 변치 않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시119: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주의할 때에는 - 계명을 삶의 법칙으로 삼기 위하여 주의 계명을 주의 깊게 묵상하며 계속적으로 의식하고 지킴으로써 되어지는 것입니다.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심리적 만족의 의미도 있고 종말론적 심판의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종종 내 앞에 막막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내 안에 있습니다. 마음에 예수님을 모셨기에 주님은 나를 인도하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워너메이커는 백화점을 창시했고, 소비자가 왕이다. 라는 말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YMCA 운동에 헌신하여 전 세계 곳곳에 청소년회관을 지어 기독청년운동을 일으켰습니다. 1913년 베이징에 YMCA 회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백화점 매상을 높이기 위해 주일에도 문을 열어야 한다는 직원들의 제의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날을 세상의 재물과 바꾸고 싶지않다 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특히 체신부 장관 제의를 받았을 때 주일성수와 주일학교 교사 직분을 수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어 장관직을 수락했다는 간증은 유명합니다. 그는 위싱턴에서 필라델피아로 주말마다 내려가 봉사했다고 합니다. 기자가 어떻게 그리 바쁜데 주일학교를 담당할 수 있나요? 미국의 장관직이 주일학교보다 못한가요? "장관직은 몇 년 하다 말 부업이지만 주일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 동안 해야 할 본업입니다."

워너메이커가 80세가 되던 해 그때 한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회장님은 지난 60년 동안 사업에 크게 성공하셨는데,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어떤 것이었습니까?”그랬더니 그는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했었죠. 2달러 75센트에 가죽 성경 한 권을 샀는데,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10살 때 주일학교 선생님이 단체로 성경을 싸게 구입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신청을 했는데, 가격이 2달러 75센트였습니다. 37센트밖에 없었던 그는 할부로 구입했고, 그후 무려 1년 반 동안 벽돌을 나르면서 모은 돈으로 완불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인생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삶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시 119: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시 119:2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시 119:3  실로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시 119:4  주께서 주의 법도로 命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시 119:5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시 119:8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성도는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의무가 있습니다. 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불의는 버리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배운 말씀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알기는 잘 압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구원의 교리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안다는 것과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ㅇ여기서 주의 법도를 말하기를 '판단'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는 내 판단 분별에 따라 내가 선택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 감동하심에 따라 내안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되고 , 그의 결정하심 판단하심은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어집니다.  내 안에 정직한 마음이 생기고, 내 안에 분별력이 생겨집니다. 나의 죄의 모습이 드러나고 부끄러워지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내 안에 사랑이 싹트고, 새 사람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겸손히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죄 가운데 거할 때에는 무디어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였으나 이제는 '감사하리이다' 이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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